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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울씨(20)는 학교폭력 피해 경험을 이겨내고, 다른 피해자들의 상담과 학교폭력 실상을 알리는 영상물을 제작하는 '학교폭력예방운동가'다. 지난 25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박한울씨를 만났다.
 박한울씨(20)는 학교폭력 피해 경험을 이겨내고, 다른 피해자들의 상담과 학교폭력 실상을 알리는 영상물을 제작하는 '학교폭력예방운동가'다. 지난 25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박한울씨를 만났다.
ⓒ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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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해도 모자랄 시간에, 별 일도 아닌 것 가지고…."

고등학교 시절, 학교폭력의 고통을 호소하는 박한울(20)씨에게 학교가 내보인 반응은 차가웠다. 박씨의 외침은 대학 진학에만 몰두하는 분위기 속에서 가차없이 외면됐다. 반복되는 가해자들의 폭력보다 학교에서 고립되었다는 외로움이 그를 더 옥죄었다.

박한울씨에게 학교폭력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그를 괴롭혀온 '오래된 상처'다. 학급회장을 맡을 정도로 활발한 성격이었지만, 또래에 비해 체격이 왜소하다는 이유로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됐다. 학용품이나 용돈을 빼앗기는 일은 다반사였고, 교사의 시선 밖에서는 구타가 계속됐다. 박씨의 한 쪽 눈은 당시의 폭력 후유증 때문에 지금도 시력이 크게 떨어져 있다.

중학교에서도 학교폭력의 사슬은 끊어지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가해자 중 일부가 같은 중학교로 배정됐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나서 어린 박한울씨를 보호하고, 가해자와 그 부모로부터 "미안하다"는 사과도 받았지만 잠시 뿐이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갔을 때,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번에는 학교에서조차 박한울씨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학교 측은 오히려 피해자인 박씨에게 "전학을 가지 않겠느냐"는 말까지 했다. 가해자들도 박씨를 향해 '고자질쟁이'라며 구타를 계속했다. 그때의 스트레스로 인해 박씨에게는 '적응장애' 진단이 내려졌다. 한동안 상담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아픈 상처를 안고 있는 그이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 바쁜 스무살을 보내고 있다. 공익광고를 인터넷에 올려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알린다. 자신이 입은 학교폭력의 상처까지 언론 앞에 드러내며, 학교폭력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잃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한달에도 수차례씩 학교폭력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찾아가 상담활동을 벌인다.

올 10월에는 자신과 상담과정 속에서 알게 된 학교 폭력 사례를 바탕으로 제작한 단편영화  <호루라기> 시사회를 열 계획이다. 지난 25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박한울씨를 만났다.

"학교폭력, 밖에라도 알려 도움을 받아야 해요"

"(고등학교 때) 학교도 피해자인 저를 도와주지 않았어요. 폭대위(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도 열렸지만, 오히려 저에게 전학을 가라고 할 정도였죠. 제가 그 친구들(가해자)을 형사고소 할 때까지 학교폭력이 계속됐어요. 언론에 제 이야기가 나오자 모든 것이 달라졌어요. 학교도 태도가 변했죠. '(언론에) 학교 이름은 이야기하지 말아 달라' 이런 식으로요. 그때서야 깨달았죠. 학교폭력을 학교 안에서 해결할 수 없다면, 밖에라도 알려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요."

2011년 12월 19일,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박한울씨에게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박씨는 인터넷 등을 통해 뜻이 맞는 5명의 청소년을 모아 청소년영상제작모임인 'MIC(Make Invent Create)'를 만들었다. 이듬해 1월 1일, MIC는 학교폭력 실상을 알리는 공익광고 '크리미널 스쿨(Criminal School)'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이 광고는 블로그와 언론에 소개되면서 화제가 됐다. 청소년들의 자살이 잇따라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였다. SNS 등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박한울씨는 자신도 학교폭력 피해자임을 드러내며, 이 문제가 학교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고 호소했다. 그는 "다른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저를 보고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떠올렸다.

박한울씨는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을 도와주고자, SNS 등에 연락처를 공개했다. 당장 학교폭력 피해자들의 연락이 쏟아졌다. 그때부터 그는 '학교폭력 피해자'에서 '상담가'이자, '학교폭력예방운동가'로 역할을 바꾸었다.

정부의 '학교폭력 종합대책' 효과 없어

"학교폭력에서 가장 피해자들을 괴롭히는 건 구타나 금품갈취가 아니에요.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외로움, 학교에서 친구가 사라진다는 슬픔이죠. 상담사례 중에는 저처럼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학교 폭력에) 시달려온 아이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아이는 늘 가해자들과 '좋게 해결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친구를 잃고 싶지 않다고요. '학교폭력 종합대책'이요? 제 생각에는 별 효과가 없는 것 같아요."

2012년 2월, 정부는 '학교폭력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핵심은 학생부 기재 등 학교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박한울씨도 처음에는 정부의 대책이 학교폭력 피해자들을 고통에서 구해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박씨는 "오히려 학교폭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학교에서는 학교폭력 발생을 숨기려고만 한다"며 "피해자들을 만나서 상담을 해보면, 대책은 별 의미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부의 대책이 가해학생 수보다 징계 등 조치건수가 초과되는 과중처벌을 낳았을 뿐, 효과는 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처벌 위주의 대책으로 인해, 오히려 피해자에 대한 보호나 치료가 소홀하다는 비판이다(관련기사 : 학교폭력 근절한다했는데, 올 1학기만 1만7천명).

박한울씨는 본격적으로 학교폭력예방운동을 펼치기 위해, MIC를 청소년단체인 <We A wake>로 정비했다. 회원수도 200여 명까지 늘어났다. 해외의 청소년단체와 연대도 시도한다. 올 11월에는 박씨가 직접 일본을 방문해 학교폭력 등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과 만날 예정이다.

단체를 유지하는데 쓸 재정은 회원들과 학교폭력 피해자 가족들의 후원으로 이뤄진다. 박한울씨도 동영상 편집 등 아르바이트를 통해 번 수입을 대부분 쏟아 붓고 있다.

학교폭력예방교육을 위한 단편영화 '호루라기' 제작

단편영화 '호루라기'는 직접적으로 이뤄지는 폭력보다, 학교에서 점차 고립되는 과정에 집중했다. 사진은 '호루라기'의 한 장면.
 단편영화 '호루라기'는 직접적으로 이뤄지는 폭력보다, 학교에서 점차 고립되는 과정에 집중했다. 사진은 '호루라기'의 한 장면.
ⓒ 박한울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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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울씨가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은 학교폭력예방교육 단편영화 '호루라기'는 모든 과정이 재능기부로 제작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은 '호루라기'의 한 장면.
 박한울씨가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은 학교폭력예방교육 단편영화 '호루라기'는 모든 과정이 재능기부로 제작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은 '호루라기'의 한 장면.
ⓒ 박한울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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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비롯한 학교폭력 피해자, 그리고 그 가족들이 모여서 단편영화 '호루라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300여만 원의 후원금만으로 시작했는데, 예산이 부족해서 스태프들이 굶어가면서 영화를 찍었어요. SNS 등을 통해서 200만 원 정도가 더 모여서 그나마 상황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부족해서 제작진들이 영상 공모전 등에서 얻은 상금을 이용하고 있어요."

박한울씨가 연출과 시나리오를 맡은 단편영화 '호루라기'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모두 재능기부로 힘을 보태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연기자를 꿈꾸거나, 영화나 드라마에서 활동 중인 청소년들을 모집했다. 그 중 일부는 학교폭력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다. 박씨는 "본인의 경험과 비슷한 이야기를 연기하니, 괴로움을 느껴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영화에 사용되는 음악이나, 편집 같은 다른 과정들도 마찬가지로 재능기부다.

전체적인 제작환경도 열악하고, 대부분의 제작진이 사춘기 청소년들이라 촬영현장에서 충돌도 잦았다. 하지만 학교폭력을 알리는 데 누구보다도 공감하고 있는 이들인 만큼,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촬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촬영은 주로 경희대학교 용인캠퍼스에서 이뤄졌다.

영화는 우연히 학교폭력 피해자가 자살하는 장면을 목격한 주인공 '소연'이 또 다른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직접적으로 이뤄지는 폭력보다, 학교에서 점차 고립되는 과정에 집중했다. 이는 박한울씨는 물론, 그가 상담한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가장 힘들어했던 부분이다. 박씨는 "후원금을 주는 분들이 학교에서 받는 부당한 대우를 강조하셨다"고 말했다.

현재 영화는 촬영을 모두 마쳤다. 영화진흥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편집 작업을 진행 중이다. 10월 초 대구를 시작으로 부산, 창원, 전주 등을 돌며 시사회를 연다. 이후에는 각 학교와 일반에 무료로 영화를 배포해, 학교폭력예방교육에 쓸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후원자 중에는 이런 사연을 가진 분도 있어요. 학교 폭력때문에 중학교 3학년 아들을 (가슴에) 묻은 아버지가 '아이의 목숨 값'이라며 보험금 일부를 전해주셨어요. 이 영화를 통해서 그런 분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더 이상 울지 마시라고, 슬퍼만 하기보다는 우리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힘쓰자고 말이에요."

박한울씨는 "학교폭력은 모두가 책임감을 가져야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부분의 학교폭력 기사에는 '피해자들이 잘못했으니까, 당하는 거지' 같은 리플들이 달린다"며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그런 반응에 또 한 번 상처를 입는다"고 말했다. 학교 폭력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가 달라져야만, 학교에서 고립되는 피해자들이 바깥으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한울씨는 올해 대입 입시에 다시 도전해 영상학을 전공하고 싶단다. 학교 폭력 문제를 넘어, 여러 사회문제들을 알릴 수 있는 영상물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내년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조명할 수 있는 작품을 기획하고 있다.

"혹시 이 기사를 보게 될 학교폭력 피해자 여러분. 학교 안에 있는 사람들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저처럼 용기를 가지고, 학교 밖으로 도움을 청하세요. 인터넷에서라도 여러분에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정말 도움이 필요하다면,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을 통해서 저에게 연락주세요."


태그:#학교폭력, #박한울, #단편영화 '호루라기', #학교폭력예방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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