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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계천 양편에 자전거도로가 생겨나 도심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서울 청계천 양편에 자전거도로가 생겨나 도심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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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생활이 때로 헛헛하고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을 때면 종종 찾아가는 곳이 있다. 서울 청계천 인근의 시장들이 그곳으로 동대문 평화시장, 황학동 풍물시장, 광장시장, 동묘 벼룩시장 등이 멀지 않은 거리에 서로 이어져 있다. 특히 일요일에 가면 멀리 있는 지방 소읍의 오일장 부럽지 않은 정취와 북적임으로 절로 마음이 훈훈하고 넉넉해진다. 요즘 유행하는 '힐링'의 공간으로 전혀 손색이 없다.  

이외에도 황학동 풍물시장, 을지로 방산시장, 창신동 문구·완구 시장, 청계천변 헌책방 거리 등 개성 있고 특색 있는 시장들도 함께 공존하고 있다.

청계천가의 이곳 명소들에 찾아갈 때는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자가용을 타고 가야 하는데 최근엔 자전거로도 갈 수 있게 되었다는 희소식이다. 청계천변에 자전거 도로가 생겨난 것은 물론 더불어 한강변의 자전거도로와 연결된 것이다. 특히 매월 1, 3주 일요일엔 서울시에서 임시로 마련한 자전거 도로를 따라 청계천의 최상류 광화문까지 달릴 수 있게 되었다(임시 자전거 도로 구간 : 을지로 ~ 광화문 청계천로).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사람들에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서울 시민들에게 휴일 날 자전거 타기란 주로 한강가를 달리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도심 속을 자전거로 여행하는 또 다른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도로 다이어트로 생겨난 청계천변 자전거 도로

한강을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정겨운 살곶이 다리.
 한강을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정겨운 살곶이 다리.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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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를 줄여 만든 '도로 다이어트' 자전거 도로.
 차도를 줄여 만든 '도로 다이어트' 자전거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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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한강 자전거 도로를 달리다가, 조선 시대 가장 길었다는 정겨운 돌다리 살곶이 다리(서울시 성동구 행당동)가 보이면 청계천 하류에 거의 다 온 것이다. 한강을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살곶이 다리는 언제 봐도 역사가 느껴지고 눈길이 머문다. 사적 제160호로 지정되었다가, 2011년 12월 23일 보물 제1738호로 승격되었다. 31개의 한강다리 중 유일한 도보전용 다리로 가장 인간미 있는 다리이기도 하다. 이정표를 따라 자전거 도로는 청계천 하류의 동대문구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청계천변 양쪽에 차도를 줄여 만든 자전거 도로가 하얀색 줄로 그어져 있다. 이런 방식을 '도로 다이어트'라고 하는데 새로 길을 내 자전거 도로를 만들지 않고 기존 차도를 줄여 만든 자전거 도로다. 도로가 크고 차선이 많은 대도시에서 매우 유용한 방법이다. 굳이 큰 예산을 들여 자전거 도로를 만들지 않아도 되는 이런 도로 다이어트 자전거 도로가 도심에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가끔 자가용을 혼자 타고 운전을 하다 보면 종종 이런 상념이 떠오른다. 몸무게가 70킬로그램이 조금 넘는 한 사람을 나르기 위해 매연을 뿜으며 달리는 1톤이 넘는 큰 괴물을 움직이는 게 과연 합당한 일인가! 내가 사는 도시 서울은 출퇴근 때 이런 나 홀로 운전자가 70%를 넘는 곳이다.

북한산에 오르면 수도 서울위로 거무스름하고 뿌연 띠가 더께처럼 덮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세계 상위의 고질적인 대기오염을 실감하는 풍경이다. 그 대부분의 원인은 천만대가 넘는 차량들의 배기가스. 서울의 대기오염 수준은 요즘 흔히 비교하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1개 회원국 가운데에서도 꼴찌다. 이런 현실속에서 서울의 대기오염을 줄일 수 있는 좋은 방안중의 하나가 자전거의 확산이다.

하지만 강변이나 도시 외곽에 아무리 많은 자전거 도로를 만들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레저용 보다는 자전거가 일상적인 교통수단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심 속에 자전거 도로를 확충해야 그 효과를 볼 수 있다. 자전거로 출퇴근도 하고 동네 마트나 도서관에 가기도 하는 등 시민들이 손쉽게 자전거를 탈 수 있을 때 대기오염이 줄어 드는 것은 물론 비로소 그 도시가 살만한 도시라 말할 만하겠다.

서울 시민들의 소중한 자산, 청계천변 시장들

없는 게 없을 것 같은 벼룩시장은 구경만 해도 재미있는 곳이다.
 없는 게 없을 것 같은 벼룩시장은 구경만 해도 재미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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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 아저씨들의 홍대 앞'이라 불리는 동묘 앞 벼룩시장터.
 '중장년 아저씨들의 홍대 앞'이라 불리는 동묘 앞 벼룩시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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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차량들로 가득한 청계천변이지만 자전거 도로 덕분에 자동차들을 신나게 추월하며 달리기도 하고, 때론 왼편의 청계천 풍경을 구경하며 유유자적 천천히 페달을 밟는다. 그러다 사람들로 왁자한 분위기의 공간이 나타나는데 바로 동묘 앞 벼룩시장.

'벼룩이 들끓을 정도로 오래된 물건을 판다'는 의미의 시장답게 온갖 물건들이 넘쳐나 눈길을 끈다. 헌책방, 구제의류, 천 원짜리 CD, 프랑스제 명품 수제품, 화폐도 패물도 국경을 넘나드는 다국적 수집품들, 클래식 카메라까지 없는 것 빼놓고 다 있다.

게다가 싸고 맛있다는 옛날 국밥집, 만물상, 고미술품가게, 오백 원짜리 노점 카페까지··· 잘만 고르면 필요한 물건을 값싸게 흥정하여 살 수 있으니 추억과 보물을 찾아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다. "있어야 할 건 다 있구요, 없을 건 없답니다~" 가수 조영남 아저씨의 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지는 곳이다. 요즘엔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등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이주해 온 외국인들까지 찾아와 사람구경 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분주한 벼룩시장 한쪽에 있는 고즈넉한 분위기의 동묘 공원은 깨끗한 화장실과 함께 나들이 객의 좋은 쉼터가 되어준다. 동묘안의 사당에 있는 중국의 관우 장군상도 눈을 크게 뜨고 몰려든 사람과 장터를 구경하는 것 같다. 어느 왕족의 묘겠거니 여겼던 동묘는 원래 이름이 '동관왕묘(東關王廟)'로 이채롭게도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關羽, ?~219) 장군이
모셔진 사당이다. '관왕(關王)'은 관우 장군을 뜻한단다.

동묘를 짓게 된 건 임진왜란 때 조선과 명나라가 왜군을 물리치게 된 까닭이 관우 장군께 덕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서 인데, 명나라의 왕이 건축 기금과 함께 직접 액자까지 써서 보내왔고 3년간이나 공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동묘와 관련한 오래전의 사연이 써있는 안내 팻말엔 임진왜란과 관련한 약소국의 비애가 담긴 역사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학창시절의 추억과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동대문 헌책방 거리.
 학창시절의 추억과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동대문 헌책방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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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서점, 인터넷 서점에 밀려 동네 서점들처럼 사라진 줄 알았던 헌책방들이 아직도 그 자리에 남아있는 것도 반갑다. 청계천은 화려한 변신을 했지만 이 헌책방 거리는 지금이나 수 십 년 전이나 같은 모습으로 묵묵히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백 여 개가 넘던 헌책방들은 이젠 삼 십 여개가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 왠지 마음 한구석이 짠하고 반갑고 고향에 온 것 같은 향수마저 느껴졌다.

향수를 느끼게 한 이곳 청계천 헌책방을 중학교 때부터 출입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주로 참고서를 구입한다는 이유로 친한 친구와 함께 버스를 타고 일부러 찾았다. 왜 참고서를 사러 굳이 멀리 청계천까지 갔는지 경험 있는 분들은 벌써 눈치 챘을 것이다. 이곳에 오면 새것 같은 헌책들이 절반 이하 가격으로 팔리고 있었고 나는 부모님에게 참고서 구입비로 받은 돈의 절반을 남길 수 있었다. 학기마다 돌아오는 용돈 만들기 행사였지만, 덕분에 학교에서 접하지 못했던 다양한 책들과 요상한(?) 국내외 잡지들을 만날 수 있었던 신세계이기도 했다.

'마약김밥'에 마약 없고 '빈대떡'에 빈대 없다

외국인들이 알면 놀랄 간판들이 흔한 광장시장.
 외국인들이 알면 놀랄 간판들이 흔한 광장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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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엔 동대문 평화시장에서도 큰 야외 장터가 열린다.
 일요일엔 동대문 평화시장에서도 큰 야외 장터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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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평화, 동평화, 광희시장 등이 모여 있는 동대문 평화시장도 일요일엔 야외에 큰 시장이 펼쳐지고 있어 페달을 멈추고 들려보게 된다. "너무 싸서 화가 난다"라고 써있는 재미있는 플래카드처럼 저렴하고 디자인과 질 좋은 의류와 잡화를 '득템'할 수 있다. 모두 평화시장에서 만든 국산품으로 그 흔한 중국산 제품을 볼 수 없는 곳이다. 만 원짜리 신발과 오천 원짜리 청바지가 흔하고, 화투의 그림으로 디자인한 사각팬티 같은 웃음이 나는 기발한 의류들도 많다.

청계천변의 명소 시장 가운데 '광장 시장'도 빼놓을 수 없다. 건너편에 있는 방산시장과 중부시장과 다르게 광장 시장은 마약김밥, 녹두 빈대떡 등 푸짐하고 맛깔난 먹거리로 뜬 곳이다. 외국인들이 알면 놀랄 마약이라는 이름이 크고 자랑스럽게 써있는 '마약김밥' 간판들은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할머니뼈해장국'과 함께 단연코 해외토픽 감이다. 일요일엔 남녀노소, 외국인 관광객까지 찾아와 발 디딜 틈이 없다.

이외에도 황학동 풍물시장, 인테리어 용품이 많은 방산시장, 아이들에게 선물할 때 꼭 들리게 되는 창신동 문구·완구거리 등 발길을 돌리고픈 곳이 많아 광화문 청계천에 도착할 무렵이면 어느 새 하루가 다 간다.

관광안내소가 있는 종로 2가 사거리부터 광화문까지의 청계천변은 아예 차량통제구간이다. 아기를 태운 트레일러를 자전거에 연결해 달리는 아주머니, 아이들이 탄 자전거들이 신나게 오가는 모습이 흐뭇함을 자아낸다.

이렇게 청계천변은 볼거리, 먹거리, 입을 거리로 풍성한 명소들이 많아 자전거로 즐기는 도시 여행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갈 때마다 느끼는 바이지만 내겐 도시 서울의 소중한 자산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살고픈 도시, 가고픈 도시란 화려함과 소박함, 빌딩과 골목, 새것과 헌것이 함께 공존하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서울시 온라인 뉴스에도 송고하였습니다.



태그:#청계천 , #자전거여행 , #도로 다이어트, #동묘 벼룩시장, #동대문 평화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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