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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수송동성당 정문 앞에 걸린 현수막이 22일 저녁의 '불법부정선거 규탄.대통령 사퇴촉구 시국미사'를 알려주고 있다.
▲ 성당 앞 현수막 군산 수송동성당 정문 앞에 걸린 현수막이 22일 저녁의 '불법부정선거 규탄.대통령 사퇴촉구 시국미사'를 알려주고 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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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께 처음으로 공개편지를 드립니다.

요즘 원근 각지에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지난 22일 오후 군산 수송동성당에서 열린 '불법부정선거 규탄·대통령 사퇴 촉구 시국미사'에 참례한 덕분입니다. 방송사들이 이른바 '종북몰이'를 하느라 수없이 미사 장면을 보여주는 TV 화면에 내 얼굴도 비쳤기 때문이지요. 내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들은 거의 지인들이고 또 그 지인들이 전화를 하니, 대개는 격려 전화였습니다. 다행히 예전에 여러 번 경험했던 '전화폭력'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단 한 분, 형님의 전화는 예외였습니다. 참 마음 아프고 난감하고 안타까웠습니다. 통화로는 충분히 얘기할 수 없었기에, 그 난감하고 안타까웠던 마음을 글로 적어보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형님이 읽어보시리라는 것은 기대하지 않습니다. 형님이 제 글을 한 번도 읽어보신 적이 없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내 글을 하나도 읽지 않은 분이, 해서 내 정신세계와 생각의 갈피들을 전혀 모르시는 분이 TV 화면에 비친 내 모습만을 보고 전화를 해서 당신 말만 마구 하시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심정이었습니다. 화도 나고 섭섭하기도 했습니다.

나도 이제 노인 연령에 접어든 나이입니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왔고, 세상 물정을 알만큼은 알고, 인생 희로애락의 갈피들도 대략은 꿰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제게 마치 훈계라도 하는 것처럼 걱정과 질책을 쏟아내시니,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습니다. 

북한을 추종하며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군산 수송동성당 주임 송년홍 신부가 시작기도 후 '불법부정선거 규탄.대통령 사퇴촉구 시국미사'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 미사 시작 군산 수송동성당 주임 송년홍 신부가 시작기도 후 '불법부정선거 규탄.대통령 사퇴촉구 시국미사'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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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은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을 비난하시면서 용공사제니 종북사제니 하며 나라가 금방 망할 것 같이 걱정을 하셨습니다. 이쯤에서 '종북'이라는 말의 의미를 한 번 살펴봅시다. 종북(從北)은 글자 그대로 북한을 추종한다는 것이겠지요. 오늘 이 시대에 북한을 추종하며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북한의 세습독재, 호전적인 습성,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경제상황, 폐쇄적인 사회 따위를 우리가 추종한다고 보십니까? 북한이 일찍이 친일파를 철저히 단죄한 것 한 가지를 빼고는 우리가 추종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근거로 나를 종북이라고 하고, 천주교 신부님들을 종북 사제로 부르십니까?                      

북한을 추종하려는 자들은 따로 있습니다. 현 박근혜 정권은 독재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과거 유신독재 시절로 우리나라를 되돌리려고 별짓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완벽하게 수십 년 전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급기야는 북한의 김일성 우상화처럼 박정희 우상화 작업도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북한의 정치체제와 비슷한 꼴로 만들어가기 위해 안달을 하고 있으니, 저들이 바로 종북세력 아닐까요?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남한의 독재정권이 계속적으로 북한과 적대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것을 이용하여 정치권력을 강화하고 유지하는 것, 그것은 북한의 세습독재정권도 마찬가지이므로, 그것을 일러 적대적 공생관계라고 하는 것이지요.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의 길을 모색하기보다는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하면서 걸핏하면 종북몰이를 하고 종북타령을 해대는 사람들이 바로 종북세력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있기에 현 박근혜 정권은 그야말로 종북정권인 것입니다.

형님은 연평도 포격 사건에 관한 박창신 신부님의 발언에 몹시 흥분을 하셨지요. 형님은  박 신부님의 강론 전문을 보셨습니까? 26분의 전체 강론 중에서 연평도 얘기는 고작 3분이었습니다. 그것도 NLL(서해북방한계선)에 관한 얘기 중에 나온 한 마디였습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그런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얘기한 것이었지요.

형님은 박창신 신부님의 강론 전문을 읽어보지도 않고는, 앞뒤를 다 잘라내고 오로지 연평도 얘기만 싹둑 잘라서 종북몰이에 써먹은 방송들과 수구 족벌언론들의 보도만 보고 그렇게 흥분을 하시니 답답할 뿐입니다. 

'종북사제'를 감옥에 처넣어야 한다구요? 

전주교구 연규영 신부가 '불법부정선거 규탄.대통령 사퇴촉구 시국미사'에서 영성체 후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 성명서 낭독 전주교구 연규영 신부가 '불법부정선거 규탄.대통령 사퇴촉구 시국미사'에서 영성체 후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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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옛날에 그녀의 아버지가 즐겨 사용했던 용어, '용납하지 않겠다'는 말을 단호히 했다지요. 그녀가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검찰이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천주교 사제가 전례 중에 했던 말 한 마디를 가지고 사법처리를 하겠다는 것은 박근혜 정권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겠지요.

형님은 박창신이라는 종북사제를 감옥에 처넣어야 된다고 하셨지요. 저도 형님의 그런 말에 일단 찬동을 했습니다. 저도 검찰이 박근혜 정권의 심부름꾼 노릇을 충실히 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종북정권'의 속성을 세계 만방에 드러내고, 과연 어느 쪽이 종북인지, 종북의 분명한 실체도 이 기회에 규명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창신 신부님도 이미 각오를 하시고, 검찰 소환을 기다리고 계시는 상황이니 말입니다.

형님은 오래 전부터 '종북사제'들을 미워하시면서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지 않으셨지만, 그래도 세례와 견진까지 받으신 신자이시니, 한마디 더하겠습니다. 형님은 천주교 사제들을 만만히 보시는 것 같습니다. 천주교 사제들은 십자가를 지고 처형장으로 끌려가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서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2만여 명 순교자들의 후예들입니다.

물론 천주교 신부들이라고 해서 다 똑같지는 않습니다. 신자들의 존경 속에서 권력도 누리며 제의로만 두껍게 몸을 싸매고 편안히 생활하시는 사제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저 바람 불고 어지러운 거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구현해내는 사제들이 더 많습니다. 그 사제들은 단결력도 강합니다. 박창신 신부님을 소환하고 구속하는 사태로 발전하면 한국교회의 절대 다수 사제들이 한마음으로 뭉치게 되리라는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아울러 그것을 기대합니다.

끝으로 한 마디,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 몸으로 구현해내는 천주교 사제들은 예수님의 제자이고 아들들일 뿐, 결코 '종북 사제'가 아닙니다. 그들을 종북이라 부르는, 천박한 입을 가진 저들이 진짜 종북세력인 것입니다.


태그:#종북세력,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불법부정선거 규탄, #대통령 사퇴 촉구 시국미사, #종국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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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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