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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객전도의 사전적 정의는 '사물의 경중(輕重)이나 완급(緩急), 또는 중요성에 비춘 앞뒤의 차례가 서로 뒤바뀜"으로 되어 있다. 본말전도(本末顚倒) 또는 객반위주(客反爲主) 등의 단어도 비슷한 뜻이다. 오늘 내가 겪은 일들을 생각하니까 이런 어휘들이 떠오른다. 어제 밤 왼쪽 발목이 갑자기 아프기 시작해 밤새 고생을 했다. 화장실도 엉금엉금 기어 갈 정도였고, 왼발을 어떻게 두든 제 자리를 잡지 못해 불편한 상태로 밤을 지새웠다. 전전반측(輾轉反側)의 밤 시간이라고 해야 할 듯.

홀로 된 사람의 신세가 이런 것임을 실감한 밤, 아내가 존재함으로 불편함이 많아 사상(捨象)된다는 사실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아침이 되어서도 발목의 아픔이 사라지지 않았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그냥 고통을 참고 2,3일 견디면 아픔이 사라지겠거니 생각할 즈음 폰이 울렸다. 아내였다. 발목 통증은 어떠냐, 밤새 얼마나 아팠는가, 빨리 챙겨 병원으로 와라 등의 내용이 수화기를 통해 흘러 나왔다. 오늘(5월 15일)이 금요일 스승의 날이니까 내일은 김천역 전도가 있고 그 다음 날이 주일 또 그 다음날엔 라 클레멘자(용서) 공연이 있다. 통증을 빨리 사라지게 해야 할 일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병을 달고 살았다. 아프지 않은 날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병을 부끄러운 것, 남에서 밝혀서는 안 되는 것쯤으로 알고 지내왔다. 아내가 입원 중인데 나까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아내는 제일병원 나는 김천의료원. 만약 내가 발목 통증으로 병원을 간다면 이런 공식에 따라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아픈 사람들끼리도 서로 의지하는 관계가 될 수 있다면서 김천제일병원으로 올 것을 권했다. 몸 낫는 게 중요하지 창피한 것이 무슨 문제냐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내가 젊었을 때만 해도 이런 것으로 병원에 간다는 것은 약간의 사치에 속했다. 고통을 며칠 참으면 스스로 물러갔다. 병고의 자연스런 극복이라고 할까. 어쨌든 아내의 바람대로 김천제일병원을 갔다. 가자마자 로비에 있는 휠췌어 하나를 빌려 이것 신세를 졌다. 한 걸음 옮기기가 아주 힘든 와중에 휠췌어에게 몸을 맡기니 한결 수월해졌다. 환자 옷을 입은 아내가 내려와 보호자가 되어 주었다. 주객전도다. '정형외과 3'이라고 했다. 잘 보기로 지역에 정평이 나 있는 전문의라고 했다. 아픈 부위와 아프게 된 과정과 지금의 상태를 차근차근 보고하듯 말했다. 진단을 하고 난 뒤 의사는 X-Ray에 혹시 뼈에 이상이 있을지 모르니까 MRI까지 찍고 올 것을 권했다. 다 합하면 20만 원 정도의 경비가 소요된다고 했다. 나에게 적은 액수가 아니다.

지금부터의 고민은 나의 몫이다. 예상 밖의 병원비에 아내도 움찔하며 위축되는 모습이 역력했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했다. 아픔의 정도로 봐서 뼈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심줄 내지 신경에 다소 무리가 와서 느끼는 통증이라고 생각했다. 어제 밤보다는 고통이 다소 완화되었다는 것도 뼈와의 상관성을 멀게 했다. 아내와 나는 개인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은 뒤 X-Ray를 찍어보고 뼈에 이상이 발견되면 다시 종합병원으로 와서 깁스를 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없는 자의 지혜라고나 할까. 나는 급히 차를 몰아 평화동 한양정형외과로 향했다.

김천제일병원 후문으로 나와서 경사로를 따라 내려오면 2차선 도로가 나온다. 마음이 급한 관계로 내가 좀 무리하게 운전을 하지 않았나 싶다. 차가 많이 밀려 있는 1차로로 오다가 2차로에 서 있는 시내버스 앞에 승용차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내가 그곳으로 차를 넣는 순간 '쾅!'하는 소리가 났다. 버스 앞 범퍼와 나의 승용차 오른쪽 옆구리가 부딪힌 것이다. 깜박등을 켜 놓고 내리니 버스 운전자도 내려왔다. 내 차는 심하게 상처를 입었지만 버스는 앞 범퍼에 페인트 칠이 벗겨진 정도의 흠결이 발견되었다.

버스 기사가 내 차를 걱정해 주었다. 버스는 대형차이기 때문에 별로 흠이 나지 않았지만 승용차가 많이 우그러져 어떡하냐는 위로의 말을 했다. 내기 끼어들기를 했으니 그런 피해는 감수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에 버스 운전자는 기차 시간에 맞춰 KTX 역사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 연락처를 하나 주고 대한교통 사무소 가서 이야기 해라, 나도 전화 해 놓겠다는 내용의 말을 남기고 버스를 몰고 가 버렸다. 대한교통 사무실에 도착하니 한 사람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어떻게 왔느냐는 물음에 대한교통 버스와 부딪혀 왔다고 했다. 그 사람은 자신의 회사 버스가 내 차에 가해를 가한 줄 알고 지금 담당자가 없다, 연락을 취해 놓았으니 잠시 기다리라, 피해 보상은 내 소관이 아니다 등의 말을 했다. 나는 버스가 내 차를 받은 것이 아니라 내 차가 버스 앞 범퍼와 부딪혔다고 말하고 내가 가해자 격이라고 했다.

한참을 기다렸을까. 담당 과장이 아직도 올 상황이 아니었던지 연락처를 남기고 가면 연락을 주겠다고 해서 나는 명함을 그 직원에게 전달해 주고 왔다. 한양정형외과는 얼마 전까지 아내가 다니던 병원이다. 개인병원이라고 하지만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갖추고 있는 곳, 즉 준 병원급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담당의사는 환자의 사정을 잘 배려해 친절하게 진찰을 해 주었다. 몇 가지를 물어 보더니 비용이 많이 드는 MRI까지는 찍을 필요가 없을 것 같고 X-Ray는 찍어 보자고 했다. 내가 바라던 검진 결과이다. 잠시 후 필름을 보더니 뼈에는 이상이 없지만 관절의 상태가 안 좋다고 알려주었다. 주사를 한 대 맞고 약을 처방받아 나왔다. 약까지 조제하고 집으로 오려니 몸이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졌다. 무조건 귀가해서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수동 굴다리 밑을 지나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상주교회 조양남 목사님 내외가 병문안을 왔다는 것이다. 먼 곳에서 여기까지 온 발걸음이라면 아무리 내가 힘들더라도 아내 병실에 가야 도리일 것 같았다. 김천제일병원으로 급히 차를 돌려 가면서 서부교회 조동환 장로님에게 전화를 넣었다. 조 목사님의 병원 방문을 알리면서 함께 할 시간이 되는지 의향을 떠 본 것이다. 조 목사님과 이미 통화가 된 듯했다. 조 장로님은 20분 뒤 병원에서 보자며 전화를 끊었다. 아내가 입원해 있는 병실 침대에 모여 조양남 목사님의 인도로 우리는 기도를 했다. 박성숙 사모의 쾌유를 비는 내용의 기도였다. 이렇게 세 사람이 함께 만날 시간이 쉽지 않은데, 아내의 병원 입원이 그 만남을 성사시킨 셈이 되었다.

조양남 목사님은 상주성결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우리 지방회에서 섬김의 리더십으로 모범적 목회자 상을 보여주고 있다. 작년에 총회 헌법연구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교단의 문제 해결에도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그가 학부에서 법을 전공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았다. 조동환 장로님은 오랜 교직 생활을 한 분으로 김천 중앙초등학교 교장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분이다. 은퇴하고도 교회 일로 또 사회 봉사로 영일이 없다. 스승의 날 하루 전, 그러니까 5월 14일에도 전에 함께 근무하던 직원들로부터 저녁 식사 대접을 잘 받았다고 한다. 어지러운 시대에 참 스승 상을 그에게서 보게 된다.

황악산 둔덕에 자리한 전통찻집 '자명(紫明)'으로 갔다. 조 장로님은 우리 차를 두고 굳이 자신의 승용차로 가자고 했다. 연세도 많고 또 최근 건강도 좀 좋지 않은 분이 이렇게 섬기려고 하니 몹시 당혹스러웠다. 그래도 할 수 없다. 조 장로님의 차로 전통찻집 자명으로 가서 우리끼리의 정담을 즐겼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라는 야은(冶隱) 선생의 시구처럼, 자명 앞에 버티고 서 있는 저 자연은 오래 유지될 터이지만 이것을 보고 즐길 사람들은  가고 또 올 것이다. 우리도 그렇게 흐르고 있는 세월이라는 배 위에 몸을 의탁하고 있는 처지가 아닌가.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살되 하나님께 순종하며 천성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가고 있는 우리 자신을 모처럼 되돌아 볼 기회를 가졌다.

전통찻집 자명(紫明)에서 대추차를 마신 뒤 나오면서 잔디밭 그네를 타고 기념사진을 찍었다(좌로부터 조양남 목사, 조동환 장로, 이명재 목사)
▲ 전통찻집 '자명(紫明)' 앞 그네를 타고 찍은 기념사진 전통찻집 자명(紫明)에서 대추차를 마신 뒤 나오면서 잔디밭 그네를 타고 기념사진을 찍었다(좌로부터 조양남 목사, 조동환 장로, 이명재 목사)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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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찻집 자명은 대추차 전문이다. 이것 한 잔 마시면 여러 가지 차들이 곁들여 나온다. 값도 저렴하고 주인장의 인정이 찻집에 넘쳐난다. 대추차 등속을 마시면서 저녁 식사 들어갈 곳이 있는지 걱정들을 했다. 저녁은 호박 칼국수로 가기로 의기투합했다. 나는 황간 올갱이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조 목사님이 시간 여유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찻값과 칼국수 값은 오롯이 조 장로님이 부담했다. 장로님의 승용차로 시작해서 찻값과 칼국수 값까지 완불했으니 이런 섬김을 온전한 섬김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은 스승의 날, 우리의 멘토이신 조 장로님을 내가 모시고 대접해야 하는데 거꾸로 일이 진행되어 버렸다. 주객전도이다. 조 장로님은 나와 조 목사님을 가리켜 영적 스승이라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마음에 여유가 있는 분이다.

이래서 오늘은 몇 가지 일로 나에게 주객전도의 날이 되고 말았다. 환자인 아내에게 오히려 보호를 받은 나는 주객전도의 사람이었다. 병원비 아끼려고 개인병원을 찾아가다가 버스와 충돌하여 내가 가해자 신세가 된 것도 주객이 전도된 것 중 하나이다. 또 조동환 장로님을 내가 대접해야 할 스승의 날인데 도리어 조 장로님으로부터 풍성한 대접을 받은 것도 주객전도 현상에 속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여러 모양으로 주와 객이 바뀐 날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날이 너무 자주 있으면 안 될 터. 함께 한 분들께 이 지면을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태그:#주객전도, #병문안, #전통찻집 자명, #조동환 장로, #조양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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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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