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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날 아침, 대문 앞 길 한가운데 흩뿌려진 붉은 얼룩. 애써 불안을 숨기고 음식 쓰레기를 누가 엎었나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길가 화단과 주차된 차 사이에서 발견한 고양이의 주검. 몸이 짓눌려 얼굴로 피가 솟고 안구 하나가 빠진 처참한 모습이었다.

범인은 자동차였을 거다. 아니 정확히 그것을 움직인 사람. 평소에도 좁은 길에서 놀랄 정도로 빨리 달리는 차들 탓에 걱정이 됐다. 사람은 물론 같이 사는 고양이, 이웃집 개, 아직 어려 행동이 굼뜬 길고양이들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진공청소기를 쓸 때 바닥을 잘 보면 그것을 빨리 움직일 수 없다. 불현듯 꿈틀 하는 작은 생명들 때문이다. 하루살이나 개미, 거미 등이 그들이다. 빗자루와 달라서 신중하게 속도를 조절하지 않으면 '아차' 하는 순간에 살생을 한다.  

길을 갈 때도 마찬가지다. 휴대전화에 눈을 두고 걸으면 그것 밖에 못 본다. 하지만 땅을 유심히 살피며 걸으면 자기 삶에 열중한 개미나 말똥구리, 다른 이름 모를 짐승들이 보인다. 함부로 발걸음을 옮겼다간 부지불식간 그들 또한 몰살시키고 만다.    

느리게 보면 많은 게 보인다.
 느리게 보면 많은 게 보인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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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만이 빠름에 중독된다. 자연스러운 빠름이 아닌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빠름이다. 마치 대단한 목적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빨리 가서 하는 일이란 또 빨리 어딘가로 떠나는 것밖에 없다. 삶은 과정이고 그래서 매순간이 목적지인데 아무것도 보지 않고 빨리만 간다.

그러니 사람과 꼭 같이 아름답고 신비하며 눈물처럼 빛나던 고양이를, 하루살이를, 개미를, 거미를, 말똥구리를, 결국은 자신과 닮은 사람까지도 상처 입히거나 죽여 놓고 슬퍼하거나 뉘우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또 빨리 간다.      

저기 설악산에선 어떤 사람들이 케이블카를 매달려 한다. 순식간에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다. 산을 가는 이유는 자연을 보기 위함이고, 자연은 한 발 한 발 닿는 전부가 자연인데, 열에 아홉은 다 건너뛰고 무조건 정상만 가겠단 거다. 그러면서 자연을 해친다.      

결국은 목적을 잃은 빠름이다. 처음부터 목적 따위 없는 빠름이다. 우리 삶을 진귀한 볼거리가 가득한 원형의 화원이라 하자. 기실 그러하다. 그런데 좋은 구경을 하겠다고 그 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열 바퀴, 백 바퀴를 돈들 대체 무엇이 남겠는가?

온종일 햇살 가득 바람 선선한 날 오후, 천천히 걸어 아프게 죽은 고양이의 무덤으로 간다.


태그:#속도전, #빠름빠름, #LTE, #중독,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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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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