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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으로 사는 길> 겉표지
 <선생으로 사는 길> 겉표지
ⓒ 도서출판 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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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첫날 이관희 선생님의 유고작 <선생으로 사는 길>을 읽으며 새벽을 맞았다. 희부윰히 밝아오는 동녘 하늘을 보면서 울컥했다. 부끄러웠다. 아이들 하나하나를 끝까지 놓지 않은 이 선생님을 보며 교사로서 바르게 살아가고 있는지 확신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말하는 순간 자신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한 시대의 교사로 살기 힘든 까닭이다. 교사의 말과 행동이 천금보다 무거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경남 진주에 사는 김다운 학생이 화제가 되고 있다. 얼마 전 김다운 학생은 "나는 꼭두각시가 아니다. 그렇기에 실을 끊겠다"라며 학교를 자퇴했다.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잘 살려면 명문대학 가야 한다기에 공부 열심히 하면서 살아온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스스로 "나 지금 행복해"라고 물었다고 한다. 결론은 '배움 없는 학교를 떠나자'였다고 한다. 45만여 명의 교사가 있다. 그들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이 해마다 5만 명을 넘는다.

모든 교사가 각자 제 몫의 책임을 다했더라도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행동하기보다 말만 앞세우는 교사들이 수많은 '김다운'을 만들어내는 건 아닐까. 그는 아이들 하나하나를 챙겨가며 그들을 끝까지 기다려주었다. 교사로서 부끄럽고 비겁한 나를 돌아보며 내내 잠을 못 이뤘다.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해야 할까. 경쟁과 효율이 지상의 표준이 된 사회와 학교는 눈에 보이는 성과를 요구한다. 아이들과 부모들은 위계 서열화한 학교 시스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시스템은 힘이 세다.

그래서일 것이다. 교사는 마치 두 '극단'의 중간을 오가며 유령처럼 살아가는 존재 같다. 놈 촘스키, 하워드 진과 함께 미국의 비판적인 지성으로 평가받는 교육자 조너선 코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많은 교사들은 마치 지식의 게릴라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학생들의 정신을 일깨우고 호기심을 자극하고 마음을 열기 위해 분투하는 동시에 학교에 남아 있기 위해서도 그 못지않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본질적이고 도전적이고 어쩌면 전복적일 수도 있는 질문을 하기 위해 결연한 의지를 갖고 일한다. 그러나 동시에 가족의 의식주, 건강, 은행융자 같은 것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교사로 산다는 것>, 15~16쪽)

우리 사회가 교사에게 기대하는 건 한둘이 아니다. 인성교육과 입시교육을 동시에 요구한다. 거시적인 교육목표를 우선시해야 하는 당위로서의 교육과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현실 교육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지 말라고 은연중에 강요한다. 그도 교사들의 이런 미묘한 면을 크게 고심한 듯하다.

선생으로 내가 느끼는 가장 힘든 일이, 공부해내기만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고교생들에게 유일한 삶의 낙인 컴퓨터 게임이나 TV 보는 시간의 조금이라도 쪼개어 책 읽고, 운동하고, 정서적인 시간을 마련해보라고 부탁하는 일이다. (300쪽)

이런 일이 쉬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학교의 겉과 속을 고민하고,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라고 회의하는 이 선생님의 모습은, 쥐 눈만큼 작아진 양심이나마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이 땅 모든 양심적인 교사들의 것이리라.

나도 그처럼 사립학교 교사로 살아가고 있다. 입이 있어도 말을 안 하고, 눈이 있어도 제대로 보려 하지 않는 비겁한 교사다. 가끔 이런저런 일로 학교나 재단 측과 부딪칠 때가 있다. 그들은 강고하다. 그들을 제대로 이기지 못하는 나는 동료들과 이런 말을 주고받는다. "치사하고 더럽다. 우리끼리 학교 하나 세우자."

나는 우리 애들 엄마가 기도를 하는데 뭔지 아냐고, 자기 남편에게 학교 하나 세워주는 게 꿈이라고. 너무 심한 꿈이라서 나는 얼마든지 기도하라고 했다고. 아이들과 한마음으로 진짜 사람 만드는 교육하는 아름다운 학교에서 하루라도 살아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입시교육, 미친 교육 버티며 힘겨웠다고, 나머지 교직을 3년을 버틸지 5년까지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145쪽)

그가 제자들이 함께 쓴 생활 노트를 보았다. "3년을 버틸지 5년까지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학교에서, 그래도 아이들 사랑하는 마음으로 깨알같이 써내려간 글씨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먹먹했다. 학교를 세울 수 없으니, 그렇게 자신을 말로 위무하며 비루한 나날을 버텨야 했을 것이다.

나는 작년까지 '어깨동무'라는 이름의 생활 일기 쓰기 활동을 해왔다. 올해는 시간 부족과 폭주하는 업무를 이유로 '포기'한 채 있었다. 물론 귀찮음을 숨기기 위한 핑계일 뿐이다.

그는 "선생은 도(道)를 닦는 수행인이어야 한다"(303쪽)라고 했다. 아이들에게 하루하루 계획표와 일기를 쓰게 하고, 거기에 일일이 답글을 적는 일을 쉬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문장 하나라도 더 써주고 싶어 수업이 비는 공강 시간으로 모자라면 야간 자율학습시간까지 활용했다. "잠시 아이들만 사랑하기로 했던 것"(275쪽)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엔 그 어떤 수사도 없을 것이다.

아이들은 무조건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하는데, 거의 끝까지 아이들은 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 선생은 그래도 그의 말을 듣고 함께해야 한다. 기껏 한두 달 공부 좀 해보려고 하다 실망해버리고 자포자기하는 학생들이 많으므로 선생도 아이가 몇 달, 심하게는 일 년 내내 끝까지 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떠나보내더라도 그를 믿고 기다려야 한다.

선생이란, 1학년 때 뿌린 씨는 2학년 때 혹은 3학년 때, 사실은 학교 졸업하고 나서, 중년이 되어서야 그의 마음 한구석에서 꽃 필 것을 믿어야 한다. (303쪽)

머리 좋은 아이들 말고 다수의 보통 아이들 돌봐주는 것이 선생님들의 책무라고 하신 그의 '절규'가 가슴 시리게 다가왔다. 말썽부리지 않고 조용히 집과 학교를 오가는 대다수 선한 아이들의 마음을 일일이 챙겨야 한다는 말씀일 것이다.

작년 어떤 연수에서 선생님 한 분이 교사를 버스정류장에 빗댄 기억이 난다. 비바람을 맞고 서 있는 정류장을 그려본다. 비바람을 핑계로 그 자리를 떠나는 정류장은 없다. 아이들에 대한 믿음으로 그들을 끝까지 기다리는 교사가 되고 싶다. 아이들을 끝까지 믿고 기다린 이관희 선생님처럼.

덧붙이는 글 | <선생으로 사는 길>(이관희 지음 / 삼인 / 2015. 6. 10. / 371쪽 / 1만 5000원)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선생으로 사는 길

이관희 지음, 삼인(2015)


태그:#<선생으로 사는 길>, #이관희, #삼인출판사, #김다운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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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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