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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필요없는 작가의 말이 필요없는 소설 <1Q84>는 2009년 출간 당시 7초에 한 권씩 팔려나갈 정도로 '신드롬'을 일으킨 작품이다. 작품은 1,2,3권 합쳐 20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소설이긴 하지만, 단숨에 읽어내릴수 있을 만큼 놀라운 흡입력을 발휘한다.

작가는 두 주인공 아오마메와 덴고의 이야기를 한 장씩 교차해 들려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끊임없는 궁금증과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스포츠클럽 강사인 아오마메는 소리없이 '저쪽 세계'로 보내는 것 말고는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인간 말종(가정파괴범, 성폭행범 등)들을 처단하는 킬러이기도 하다. 학원 수학강사인 덴고는 언젠가 자신만의 멋진 소설 출간을 꿈꾸는 작가 지망생이다.

어린 시절 친구인 두 사람은 서로를 강렬하게 사랑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만나지 못하고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간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인해 두 사람은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1Q84년'이라는 전혀 다른 시공간으로 빠져든다. 소설은 현실 세계인지, 가상의 세계인지 경계가 모호한 그 어떤 시공간 '1Q84년'에 벌어지는 숨가쁘고 복잡한 이야기 구조속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1984> : 빅브라더 / <1Q84> : 리틀 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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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Q84> 표지 .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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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1Q84>는 작가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바치는 오마주이기도 하다. 1984년 한 전제주의 국가의 끔찍한 감시 체제와 독재자 '빅 브라더'가 등장하는 조지 오웰의 <1984>. 작가는 <1Q84>에서 빅 브라더 대신 '눈에 보이지도 않고, 실체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그러나 '우리의 발 밑을 서서히 무너뜨리는'(1권, 501쪽) '리틀 피플'이라는 존재를 등장시킴으로써 현대 사회 악의 근원에 대해 이야기 한다.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가 단일하고 명확한 실체가 있는 존재로 설정된 반면(작품에서 빅 브라더는 사회 곳곳에 설치된 텔레스크린을 통해 사람들을 감시하고 거짓 정보를 선전한다), 하루키의 '리틀 피플'은 그 실체가 분명하지 않다.

"그들은 지금까지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왔고 대개의 경우, 어떤 이름으로도 불리지 않았어. 그들은 그저 그곳에 있었어. 리틀 피플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편의상 붙인 이름에 지나지 않아."(2권, 286쪽)

하루키의 1Q84년은 조지 오웰의 예상처럼 선과 악의 구분이 명확한 단순한 세계가 아니다. 하루키가 보기에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선과 악의 구분은 명쾌하지 않다. 선은 악이 되기도 하고 악은 선이 되기도 한다. 리틀 피플은 누구인가? 어디로부터 왔는가? 소설이 끝날 때까지 하루키는 리틀 피플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선도 없고 절대적인 악도 없어." 남자는 말했다. "선악이란 정지하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항상 장소와 입장을 바꿔가는 것이지. 하나의 선이 다음 순간에 악으로 전환할지도 모르는 거야. (중략) 중요한 것은 이리저리 움직이는 선과 악에 대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지.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면 현실적인 모럴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돼. 그래, 균형 그 자체가 선인 게야." (2권, 289쪽)

실제로 하루키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죄를 지은 인간과 죄를 짓지 않은 인간을 구분하는 벽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얇다"며 "체제 안에 반체제가 있고, 반체제 안에 체제가 있다. 이러한 현대 사회의 시스템 전체를 소설로 쓰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물음표' 달린 세상, 무엇이 진짜 세계인가?

<1Q84>에서 'Q'는 물음표(question mark)의 'Q'다. 의문을 안고 있다는 뜻이다. 이 세계에는 두 개의 달이 떠 있다. 1Q84년은 소설 속 인물들이 1984년의 어떤 시점에서 빨려 들어간 새로운 세계이다.

영화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세계는 인공지능 컴퓨터가 만들어낸 가상의 현실과 이것이 거짓임을 깨달은 인간들의 진짜 세계가 대립한다. 가상과 실제는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고, 인간들은 진짜 세상을 되찾기 위해 가상의 현실과 싸운다.

그러나 하루키의 1Q84년은 가상인지 실제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다. 1Q84년과 1984년을 구분하는 것은 하늘에 떠 있는 두 개의 달이다. 오직 1Q84년을 살고 있는 사람만이 이 두 개의 달을 볼 수 있다. 반면 이 달을 볼 수 없는 사람은 그냥 1984년에 머무르고 있다. 설명은 단지 그 뿐이다. 1984년이 진짜 세계인지, 1Q84년이 진짜 세계인지 소설 속 주인공들도 혼란스러워하고 독자들도 혼란스러워한다.

게다가 이 세계에 (혹은 그 세계에) 달이 한 개 밖에 없건, 두 개가 있건 세 개가 있건, 결국 덴고라는 인간은 단 한 사람밖에 없다. 거기에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어디에 있더라도 덴고는 덴고일 뿐이다. 고유의 문제를 안고 있고 고유의 자질을 가진 한 명의 똑같은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 이야기의 포인트는 달에 있는 게 아니다. 나 자신에 있는 것이다. (2권, 585쪽)

아오마메와 덴고는 문득 올려다 본 하늘에 뜬 두 개의 달을 보면서 이 곳이 다른 세계임을 절감하지만, 왜 들어왔는지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느 세계가 진짜인가?' 하는 물음이 아닌 아오마메는 덴고를, 덴고는 아오마메를 '과연 만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절박성이다.

그들에게는 서로를 만날 수 있는 세계가 곧 '진짜 세계'다. 하늘에 달이 두 개라는 사실은 다른 차원으로 빨려 들어간 혼돈의 상징이 아니라 아오마메와 덴고가 서로를 강하게 끌어 당기고 있다는 징표인 것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면 인생에는 구원이 있어. 그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한다 해도. (1권, 408쪽)

세계를 바꿀 만큼 절실한가?

아오마메와 덴고는 친구도 없고 당장 소멸되어 버린다해도 기억해 줄 사람조차 변변치 않은 고독한 존재들이다. 어제와 오늘, 내일의 일상이 쳇바퀴 돌 듯 반복적으로 돌아가는 단조로운 생활이지만, 서로에 대한 처절하리만치 강렬한 절실함이 그들을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었다.

우리가 사는 세계란 '바늘로 찌르면 붉은 피가 나는 곳'(3권, 450쪽)이고 가끔 '맥락이 잡히지 않을 만큼 기묘한 일들이 일어나는 곳'(3권, 643쪽)이기도 하며, '희망은 수가 적고 추상적이지만 시련은 지긋지긋할 만큼 많고 대부분은 구체적'(3권, 56쪽)으로 다가오는 간단치 않은 곳이다. 이것이 '현실 세계'의 실체다.

요점은 모두가 이런 현실에 속해 있지만 누구나 같은 세계를 사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 어떤 절실함, 그것이야말로 내가 속한 세계를 바꿀 수도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무엇에 얼마만큼 절실하며 누구를 갈망하는가.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묻는 질문이다.

덧붙이는 글 |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문학동네 펴냄 / 2009.8.)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1Q84 1 - 4月-6月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문학동네(2009)


태그:#1Q84,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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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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