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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쌍심지 켜고 징계 운운하는 교육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용기 있게 416교과서로 '세월호 참사 계기수업'을 한다는 교사가 있어 찾아갔다.

학교로 가는 길, 벚꽃, 복사꽃, 배꽃 등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4월이 되면 이렇게 꽃들은 만발하건만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은 2년 동안 한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세월호 안에 갇혀 있다.

ㅅ초교 교문 위에 커다랗게 내걸린 펼침막
▲ 416세월호 참사, 우리 모두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ㅅ초교 교문 위에 커다랗게 내걸린 펼침막
ⓒ 김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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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세월호 참사, 우리 모두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ㅅ초교 교문 위에 커다랗게 내걸린 펼침막이 환영인사를 하듯 반갑게 맞아주었다. 솔직히 말하면 계기수업이 과연 정상적으로 이뤄질까 걱정했는데, 현수막을 보니 그런 기우가 사라졌다.

저희가 비록 어려도 알 만큼은 알아요

ㅅ초교 6학년 *반 교실, 수업참관을 위해 뒷문으로 들어갔더니, 우선 게시판에 붙여진 커다란 나무 모양의 손바닥 글들이 눈에 띄었다. 지난 주 창의적체험활동 시간에 학급 아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쓰고 만들었다는 '사랑과 보살핌의 손'이었다. 4.3제주항쟁을 기억하는 의미에서, '국가폭력'을 주제로 자유롭게 글을 써보라 했더니, 4.3항쟁은 물론이고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글을 쓴 아이들도 있었고,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글을 쓴 아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분들께!
힘내십시오. 정부는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진실이 밝혀지면
그것을 반성하게 될 것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도 세월호 참사를 '국가폭력'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 한 학생에게 물어보니, "저희가 비록 어려도 알 만큼은 알아요"라고 답한다. 순간 '우문현답'이라는 한자성어가 떠올랐다.

게시판에 붙여진 커다란 나무모양의 손바닥 글들이 눈에 띄었다.
▲ 사랑과 보살핌의 손 게시판에 붙여진 커다란 나무모양의 손바닥 글들이 눈에 띄었다.
ⓒ 김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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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유가족분들께!
힘내십시오. 정부는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진실이 밝혀지면 
그것을 반성하게 될 것입니다”.
▲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쓴 손바닥글 “세월호 참사 유가족분들께! 힘내십시오. 정부는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진실이 밝혀지면 그것을 반성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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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초교 A 교사의 5교시 국어 수업은 22명의 반 전체 어린이들의 '천개의 바람이 되어' 리코더 합주로 시작됐다. 개나리꽃들이 입을 모아 샛노랗게 소리를 내는 것처럼 교실 전체로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음악이 애잔하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우리도 지난 시간에 세월호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보았지요. 이 노래도 한 명한 명 이름을 부르고 있지요? 왜 이렇게 노래를 만들어 들려주려고 할까요?"

A 교사가 세월호 희생자 이름이 나오는 노래를 들려주고 나서 이렇게 묻자, 아이들이 "잊지 않기 위해서요, 기억하기 위해서요"라고 앞다투어 대답했다.

"노란 리본은 힘든 상황이나 위험한 상황에 부닥친 사람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어졌다"며 A 교사는 노란 리본의 의미와 유래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힘들어도 힘내세요. 지쳐도 포기하면 안돼요

A 교사는 416교과서 32쪽 '어떤 행진' 읽기와, 34~36쪽을 참고로 관련 사진들과 동영상 자료 보여주며 수업을 진행했다. 그는 "당장 진실이 밝혀지진 않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진실을 찾아가는 함께 행동할 때 유가족들은 이런 희망적인 생각을 한다고 해요"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슬픔을 딛고,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유가족에게 여러분은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특히 전국 보도행진을 마친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하고 물었다. 이에 ㄱ어린이는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시원한 물을 줄래요"라고 말했고, ㄴ어린이는 "오래 걷느라 물집이 생겼다고 들었어요. 치료해 주고 싶어요. 그리고 힘들어도 힘내세요. 지쳐도 포기하면 안 돼요"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플래시몹 동영상을 보고, 노래를 함께 부르고 '노랫말 바꾸어 보기' 모둠 활동에서, 학생들이 6개 모둠으로 나눠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머리를 맞대고 얘기를 주고받으며 가사를 바꾸었다.

우리는 진실을 밝힐 것이다. / 희망을 놓지 않을 것이다. /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 우리는 잊지 않을 것이다.

6개 모둠이 차례대로 발표를 했는데, 그 중 3모둠이 발표한 내용이다.

6개 모둠이 차례대로 발표를 했는데, 그 중 3모둠이 발표한 내용
▲ 학생들의 발표 6개 모둠이 차례대로 발표를 했는데, 그 중 3모둠이 발표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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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문제 해결되어 빨리 수학여행을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늘 수업을 통해 무엇을 느꼈느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이렇게 답했다.

"선장 한 사람의 잘못인 줄 알았는데, 이번 수업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됐어요. 돈보다 생명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았고, 구조할 수 있었는데 왜 구조하지 않았을까 의문도 들었어요. 무엇보다 다시는 이런 일 없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이렇게 유익한 수업을 교육부에서는 왜 못하게 할까요?"

"세월호 참사가 저희와 상관 없는 줄 알았어요. 사실 저희가 6학년인데 올해 가기로 했던 수학여행을 못 간다고 해서 정말 속상해요. 세월호 문제도 해결되고 안전문제도 해결되어 빨리 수학여행을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반 전체가 일어나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 거짓을 참을 이길 수 없다 /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노래를 함께 부르며 둥글게 원을 그리는 것으로 수업을 마무리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노래를 함께 부르며 둥글게 원을 그리는 것으로 수업을 마무리했다.
▲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노래를 함께 부르며 둥글게 원을 그리는 것으로 수업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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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판에 글자를 붙이는 학생들
▲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칠판에 글자를 붙이는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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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에 나오자 아까는 미처 보지 못한 "잊지 않겠습니다. 진실... 밝혀져야 합니다" 등의 다양한 그림과 노란 리본들이 눈에 띄였다. 학생들이 미술시간을 이용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작품 하나하나 여간 정성을 들인 것이 아니었다. 어린 학생들의 예쁜 마음들을 읽으며 어른의 한 사람으로 부끄러워졌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학생들이 미술시간을 이용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작품 하나하나 여간 정성을 들인 것이 아니었다.
▲ 구조할 수 있었는데... 학생들이 미술시간을 이용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작품 하나하나 여간 정성을 들인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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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학생들의 예쁜 마음들을 읽으며 어른의 한 사람으로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 잊지 않겠습니다. 진실... 밝혀져야 합니다 어린 학생들의 예쁜 마음들을 읽으며 어른의 한 사람으로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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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교사에게 "왜 세월호 계기수업을 하게 되었나?"라고 묻자 "아이들이 먼저라는 생각에 하게 되었다. 교육부의 압박이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지 않는 한 우리 모두는 늘 대한민국이라는 세월호에 타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교육부가 뜬금없이 독도수업은 하라 하면서 세월호 수업은 안 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감추려는 자가 범인'이라는 말이 연상된다. 칭찬은 못할망정 징계라니..."라고 울분을 토로했다. 

또 "세월호 문제에 아이들도 알아야 할 것은 알아야 하고, 함께 토론하고 공감하고 고민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필요하다. 단순한 추모와 위로에 그치지 말고 교육적인 메시지와 희망적인 내용이 함께 담겼으면 좋겠다. 전국의 많은 선생님들이 세월호 계기수업 또는 교육과정 재구성을 통해 용기있게 동참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경기도 ㅅ초교 A 교사의 416 계기수업지도안
▲ 수업지도안 경기도 ㅅ초교 A 교사의 416 계기수업지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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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내려오는데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 그림이 보였다. 단지 진실을 밝혀 달라, 재발방지 대책을 세월 달라 했을 뿐인데, 왜 우리 사회에서 세월호는 '불편한 진실'이 되었고 세월호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불편한 존재'가 되었을까?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언제쯤 우리는 행복한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이런 상념들이 맴돌았다. 선거도 끝났으니 이제 정부당국과 여야 정치권은 속히 응답해야 할 것이다.

한편, 교육부의 징계 방침에 반발해, 전국 15개 지역 132명의 교사들이 416의 진실을 알리고, 기억하는 계기수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지난 11일 오후 4시 서울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이들에게 세월호의 진실에 직면하도록, 세월호 참사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416교과서로 수업을 하겠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교육희망'에도 유사한 글을 보내겠습니다.



태그:#세월호 계기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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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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