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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정이네가 이사를 간다. 현관 앞에 이사 박스가 쌓이니 이제서야 아정이네가 이사를 간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아정이네가 이사를 간다. 현관 앞에 이사 박스가 쌓이니 이제서야 아정이네가 이사를 간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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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한 살 꼬마 아정이에게 난 아춘이다. 사실 아춘은 아정이를 위해 내가 만들어낸 말이다. 아춘은 아저씨와 삼촌의 합성어이다. 아저씨보다는 가깝고 삼춘(촌)보다는 먼 사이. '오'와 '우'의 중간 발음인 순경음(ᄫ)이 남아 있는 시골에서는 여전히 삼촌을 삼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 살 꼬마 아정이가 날 부르기 편하도록 '아춘'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물론 아정이는 아직 말을 거의 하지 못한다. 그런 아정이가 아춘이 무슨 뜻인지 알 리가 없다. 그래도 가끔 아정이를 만났을 때 "아춘이 어디 있어?"라고 물으면 아정이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본다. 내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어쨌든 서울에서 처음 이사 왔을 때 아정이는 5-6개월 정도 된 갓난아기였다. 그랬던 아정이가 지난 달 돌을 맞았다. 첫 생일을 맞은 아정이는 어느덧 아장아장 걸어 다닐 정도로 자랐다.

며칠 전에는 누군가 현관문을 미세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바람소리인가 하고 무시했는데, 시간이 조금 흐르자 문을 두드리는 미세한 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설마 아정이가?' 하는 생각에 문을 살며시 열어 보았다.

문을 열고 나가 보니 아정이가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서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랬다. 아정이가 혼자 힘으로 첫 마실을 나온 곳이 영광스럽게도 우리 집인 것이다.  

사실 아정이 아빠와 내 아내는 중학교 동창이다. 서울에서 시골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우연히 옆집에 아내의 친구가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솔직히 그때만 해도 친구가 옆집에 살아서 불편하지는 않을지 마음속으로 걱정이 되기도 했다.( 관련 기사 : 6단계의 법칙? 한다리만 건너도 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을 말끔히 씻어준 것도 바로 아정이였다. 옆집에 놀러가서 아정이를 처음 본 순간 녀석에게 첫눈에 반해 버린 것이다. 어쩌면 내가 아정이를 너무 귀여워하는 바람에 오히려 아정이네 식구들이 더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아정이는 기분이 좋으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눈웃음을 치곤 한다. 또 가끔 아가들 특유의 버릇인 손가락 빨기를 시도하기도 하는데, 이런 행동을 할 때마다 내 막내 조카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곤 한다. 그래서일까. 아정이가 친 조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정이는 뭔가에 토라지거나 기분이 나쁘면 앵하고 울음을 터트리기도 하는데 가끔 그 소리가 우리 집까지도 들린다. 이제는 아정이의 울음소리만 듣고도 아정이가 아파서 우는 건지, 아니면 놀다가 토라진 것인지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개인주의자인 내게 아정이가 준 선물

아정이 아빠는 얼마 전부터 세 아이를 키우기에는 집이 좁다며 이사할 집을 구한다고 말했었다. 사실 아정이에게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명의 언니가 있다. 아정이 엄마와 아빠 그리고 언니 둘과 아정이, 이렇게 다섯 식구가 살기에 지금 사는 집은 다소 좁다. 

아정이가 좀 더 넓고 쾌적한 집으로 이사를 간다고 생각하면 기쁜 일이다. 하지만 아정이를 자주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서운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인지 며칠째 마음이 뒤숭숭하다. 살아오는 동안 수없이 많은 이별을 경험했음에도 여전히 헤어짐은 낯설고 또 적응이 어렵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정이는 내게 몇 가지 선물을 준 듯하다. 아정이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이웃에 대해 도통 관심이 없는 개인주의자였다. 아정이를 알게 되면서 나는 아주 오랜만에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기의 미소에는 알 수 없는 어떤 힘이라도 있는 것일까. 아정이가 눈웃음을 지어 보일 때 마다 나는 마음이 한 없이 평화로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옆집 아정이네는 이삿짐을 싸고 있다. 아정이네가 이사를 가고 나면 한동안 그 빈자리를 느끼며 쓸쓸할 것 같다.


태그:#아정이네 , #김아정 , #아춘이, #아저씨, #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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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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