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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모 초등학교 앞에 학부모들이 북적인다. 잘 모르는 사람은 무슨 졸업식이나 입합식이라도 있는 줄 알겠으나, 사실 학부모 참관수업이 있는 날이다. 병설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전 학년 참관수업이 있다 보니 학부모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필자도 유치원과 초등학교 2학년에 자녀들이 다니다 보니 점심시간 짬을 내어 학교로 향했다.

우리 어릴 적 국민학교 시절에는 부모님들이 학교에 오는 날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기억하기에도 입학식이나 운동회 등이 거의 전부인 듯하다. 그 외 부모님이 학교에 가는 날은 자녀가 말썽을 일으켜 '불려가는' 정도였던 것 같다. 참관수업이 있다면 그건 학교에 장학사님이 왔을 때였을 것이다. 학교 전체가 분주히 대청소를 하고 미리 담임선생님에 의해 연출된 수업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한 학교 교실을 이제는 학부모가 되어 다시 밟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과거에 비해 교실이라는 공간이 선생님과 학생들만의 고유영역이 아니라, 학부모들에게 개방된 공간이 된 것이 처음에는 어색하면서도 내심 반가웠다. 참관수업의 목적도 학교와 가정의 상호작용이라는 측면에서 학부모들에게도 긍정적인 면이 많이 있음을 참여한 학부모들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참관수업이 시작되고 필자도 어느 정도 우려했던 데로 불편한 상황들이 연출되었다. 20명 조금 넘는 정원에 학부모들이 다 참석한다면 좋았겠지만, 부득이 부모님이 오지 못한 아이들이 불안해하더니 이내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선생님은 애써 달래주었지만, 참관수업 끝까지 그 아이들 표정이 시무룩했다. 부모님이 오지 못한 아이들의 스트레스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제각각 "우리 엄마야", "우리 아빠야" 하며 자랑질을 하고 함께 놀이도 하는데, 이 아이들은 그저 다른 부모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만 봐야 했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여러 아이를 챙기다보니 "oo야 너희 부모님 못 오셨니?" 하며 물어볼 때면 그 아이들은 두 번 상처를 받는 것 같았다. 참관수업은 20분 정도로 짧았지만, 그 아이들에게는 그 20분이 2시간보다도 더 길었으리라. 필자는 딸내미를 옆에 두고 그 옆자리에 부모님이 오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아이와 함께 대화도 하며 놀아주었다. 관심을 주니 금방 표정이 좋아졌다.

초등학교 2학년 교실로 올라가 보았다. 초등학교 2학년 교실은 유치원보다는 한결 아이들이 의젓했고 부모님이 온 것으로 막 자랑질을 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자신이 발표하는 모습을 부모님이 와서 봐주는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의 모습은 대조적이었다. 선생님께 물어보니, 고학년이 될수록 참관수업에 대한 스트레스는 줄지만, 저학년일수록 부모님 참석여부에 민감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충분히 공감이 되는 부분이었다.

참관수업을 마치고 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학교 시설과 교육 환경은 분명 과거에 비해 선진화되어 있었다. 교실마다 설치된 시청각 시설들과 아이들의 키에 맞추어진 화장실, 무엇보다 학생들을 존대하는 선생들의 말투와 수업태도 등은 우리가 어렸을 적보다 훨씬 더 아동들 인권이 향상되었다는 점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러나 한부모아동 내지는 조부모에 의해 길러지는 아동 등, 이러한 소수에 대한 배려는 아직 성숙치 못한 모습이었다. 이러한 아이들은 6학년이 지나기까지 매년 있는 참관수업의 스트레스를 견뎌야 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지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박탈감과 무관심은 자칫 예민한 시기에 탈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나름 '내가 학교 선생님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며 몇 가지 대안을 떠올려 보았다. 생업이라든지 어떠한 피치 못할 환경에 의해 부득이 오지 못하는 부모님들은 미리 영상편지를 받아서 틀어준다거나, 간단한 편지글을 받아 읽어주고 상황을 설명해주고 아이를 위로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하는 수업시간도 꼭 자기 부모와만 하기보다는 아이들팀과 학부모팀 이런 식으로 나누어 부모님이 오지 않았어도 상대적 박탈감을 덜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작은 배려이겠지만, 모든 아이들에게 고루 행복감을 주게 될 것이다.

참관수업의 가장 큰 효과가 학교와 가정의 상호작용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가정의 환경이 일부 결핍된 아동들이 학교에서도 똑같은 박탈감을 맛보도록 해서는 안 되며, 학교의 보다 섬세한 배려로 고루 행복감을 맛보도록 해주어야 할 것이다. 참관수업이 일부 참석한 부모들의 욕구만 충족시켜주는 소위 '보여주기식'의 수업이 된다면 과거 장학사가 오는 참관수업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학교와 교육청측에 세심한 보완과 대책을 요구한다.  

덧붙이는 글 | 대전인권사무소 제3기 인권기자 송재웅



태그:#참관수업, #장학사, #대전인권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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