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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는 엊그제 장맛비가 기상청 예보보다 훨씬 많이 내렸습니다. 태풍급은 아니라도 그와 맞먹는 바람도 세차게 불어 닥쳤습니다.
비온 다음날 아침, 아내와 함께 텃밭에 나왔습니다.

사흘 전 세찬 비바람에 고추밭이 폭격을 맞은 듯 쓰러졌습니다.
 사흘 전 세찬 비바람에 고추밭이 폭격을 맞은 듯 쓰러졌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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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고추밭이 폭격을 맞았네."
"간밤에 폭우가 억수로 쏟아지더니만 기어코..."

아내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습니다.

"한쪽으로 쏠리고 축 처져있는데, 뿌리가 흔들려서 잘 자랄 수 있을까?"
"이 정도 가지고는 괜찮을 거야!"

고춧대가 큰 비바람에 요리저리 휩쓸리고 쓰러졌습니다. 아내 말마따나 마치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고추말목 쪽으로 몰려서 쓰러진 게 많습니다. 말목에 세 차례나 줄로 고춧대를 유인해준지라 부러진 것은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일으켜 세우고 끈으로 중간 중간 붙잡아주면 꼿꼿이 다시 설 수 있을 거야. 한 사나흘 두고 보자고!"

그간 애써 가꾼 것을 생각하면 고춧대가 쓰러져 혹여 잘못될까 걱정하는 아내를 안심시켰습니다.

아름답게 핀 고추꽃. 요즘 한참 많이 피어납니다.
 아름답게 핀 고추꽃. 요즘 한참 많이 피어납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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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렁주렁 매달려있는 풋고추. 붉어지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풋고추. 붉어지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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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추밭에 자라고 있는 피망. 제법 굵어졌습니다. 우리 고추밭에는 일반 고추외에 청양고추, 꽈리고추, 오이고추 등도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 고추밭에 자라고 있는 피망. 제법 굵어졌습니다. 우리 고추밭에는 일반 고추외에 청양고추, 꽈리고추, 오이고추 등도 자라고 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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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고추 자라는 게 놀라울 정도입니다. 가지도 여러 갈래로 뻗고, 꽃도 엄청 많이 피어납니다. 꽃이 진 자리에 달린 아기고추는 어느새 굵어졌습니다. 주렁주렁 달린 것도 숱합니다.

고추말둑에 띄운 줄 사이 사이 쓰러진 고춧대를 세워 묶어주는 데 사용한 금속끈. 단단히 붙잡아 줄 수 있었습니다.
 고추말둑에 띄운 줄 사이 사이 쓰러진 고춧대를 세워 묶어주는 데 사용한 금속끈. 단단히 붙잡아 줄 수 있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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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지 고춧대를 일으켜 세워 금속끈으로 묶어주었습니다.
 쓰러지 고춧대를 일으켜 세워 금속끈으로 묶어주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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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심스레 쓰러진 고춧대를 일으켰습니다. 그리고선 붙잡아 준 줄 사이 사이에 작은 금속끈으로 묶어줍니다. 축 처지고 한쪽으로 쏠린 고춧대가 어느 정도 바로 섰습니다.

자연의 놀라운 복원력

장마전선이 남부지방으로 내려간 사흘 후, 내 예측이 들어맞았습니다. 손을 조금 보태서 추슬러 준 고추밭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것처럼 제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고추밭을 둘러본 아내가 놀라 묻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당신 손이 마술 손인가?"
"이 사람, 무슨 소리! 내 손이 마술을 부린 게 아니고, 자연의 놀라운 복원능력인 거지!"
"당신도 고맙고, 알아서 잘 자라는 자연도 고맙고!"

손을 보고 난 사흘 후, 완전히 제모습을 되찾은 우리 고추밭. 언제 쓰러졌나 싶을 정도입니다.
 손을 보고 난 사흘 후, 완전히 제모습을 되찾은 우리 고추밭. 언제 쓰러졌나 싶을 정도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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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을 하느라 농사는 나몰라라 하는 아내가 오늘따라 농사꾼처럼 이야기합니다.

"태풍이 올라온다던데, 고춧대 또 묶어 줘야하는 거 아녀요?"
"그렇지 않아도 묶어줄 참이네요!"

태풍에 큰 비가 온다하여 다시 네 번째로 줄을 띄었습니다.
 태풍에 큰 비가 온다하여 다시 네 번째로 줄을 띄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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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춧대가 내 배꼽만큼 키가 자랐습니다. 나는 고추끈을 찾아 고춧대를 묶습니다. 벌써 네 번째로 묶는 것입니다. 붙잡아 맨 고추밭이 이발을 한 것처럼 단정해 보입니다. 이제 어지간한 비바람에는 견딜 듯싶습니다. 일하고 난 뒤 이마에 흘린 땀이 참 소중합니다.

아내가 기분 좋은 말을 꺼냅니다.

"냉장고에 막걸리 있으니 풋고추 된장에 막걸리 한 잔 하시구려!"

아내가 따라주는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이 기가 막힙니다. 풋고추가 매콤하게 맛이 들었습니다. 막걸리 안주로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먹는 맛, 모르는 사람은 모릅니다.



태그:#고추밭, #풋고추, #자연의 복원력, #장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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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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