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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0일 오후 8시 14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3·1혁명 100주년을 맞는 2019년, 100년 역사의 시간을 되짚어 보고 새로운 100년을 설계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시민단체의 역사순례 기행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다.

지난 4월 6일(토) '동학실천시민행동'과 '천안역사문화연구회'는 동학 3·1'혁명'의 길인 세성산(동학농민혁명 격전지)에서 아우내(3.1혁명 발상지)까지, 역사의 시간을 되감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안내를 맡은 천안역사문화연구회 이용길 회장은 "천안에는 근현대사의 큰 물줄기를 이루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과 1919년 3·1혁명 등 되짚어볼 역사 현장인 세성산 전적지와 아우내혁명 유적지가 자리하고 있다. 천안 시민들은 매달 10킬로미터 구간의 '동학3.1 혁명의 길'을 걸으며 '세상의 참 주인이 누구인가를 알라'며 만세를 부른 그날의 뜨거운 가슴을 느끼고 체험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지나간 역사는 단순히 박제된 과거의 단편이 아니다. 역사는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의 시간을 이어가며 새로운 발전과 진화를 거듭해가는 역동성을 지녔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이유일 것이다.

동학실천시민행동의 이요상 공동대표의 말이다.

"올레길, 둘레길, 성지 순례길 등 다양한 길이 있는데 역사의 발자취를 더듬어 가는 '역사순례길'은 체계화되어 있지 않다. 2019년 3. 1혁명 100주년을 맞아 동학실천시민행동은 전국의 동학농민혁명지, 독립운동지 등을 탐방하면서 전국의 역사순례길을 네크워크화 하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3월 서대문 형무소 등 서울 역사 순례를 시작으로 4월은 천안에서 역사 순례를 시작한다. 5월에는 정읍과 남원의 동학관련 유적을 돌아볼 계획이다. 앞으로 계속 이어지는 역사순례길에 관심을 가져달라."
  
1884년 세성산에서 동학교도가 친일진압군에 학살당한다.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위령비
▲ 세성산 희생자 위령비 1884년 세성산에서 동학교도가 친일진압군에 학살당한다.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위령비
ⓒ 심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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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성산 전적지는 천안동학농민혁명 유적지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1984년 9월 18일 해월 최시형은 동학교도들에게 총기포령을 내린다. 이에 목천, 천안, 전의 등지에서 모여든 1500여 명의 동학농민군은 여우고개 아래 주둔하며 한양 진군의 교두보를 확보했다.

그해 10월 21일 친일진압군 이두황 부대는 한양 진군의 교두보를 확보한 동학교도를 공격한다. 김복용 장군, 이희인 대접주가 이끈 동학농민군은 세성산을 끝까지 방어하며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하지만 수많은 동학군이 패배해 목숨을 잃고, 겨우 살아남은 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숨어 살아야만 했다. 세성산에는 당시 목숨을 잃은 동학농민군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천안의 천안동학농민혁명 유적지로 어디를 살펴보면 좋을까? 세성산 전적지를 시작으로 동경대전 간행터, 동학농민군 학살지, 최초 집결지인 적성산, 동학교도들의 주요 회합 장소였다는 복구정, 대접주 이희인의 집터 등을 차근차근 둘러보면 좋다.
 
동경대전을 간행한 터로 추정되는 곳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 동경대전 간행터 동경대전을 간행한 터로 추정되는 곳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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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특별히 주목할 곳은 동경대전 간행터다. 동경대전은 천도교의 경전이다. 개인이 소장한 목천판 동경대전은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판본이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1883년 동경대전 목천판을 1000부 간행한 곳으로 알려진 동면 죽계리 구개마을에는 아무런 자취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간행터를 제공한 김은경 접주의 이름이 지적도에 남아 있고 김은경의 집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을 중심으로 그 일대에서 목판본 동경대전이 간행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장소라는데 아무런 흔적이나 표지석이 없어 일반인은 찾기 힘들다.

'천안의 만세운동' 하면 아우내 장터와 유관순 열사가 떠오른다. 유관순 열사의 생가터가 있던 매봉산 일대는 유관순 열사 적으로 지정되어 기념관과 생가지가 조성되어 있다. 기념관 벽에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벌이다 옥사하거나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들 이름이 함께 새겨져 있다.

천안역사문화연구회 송길용 연구실장은 1919년 만세 운동시에 6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우내 장터에 모일 수 있었던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아우내 만세 운동에는 유관순 열사만이 아니라 김구응 열사 일가, 동학교도들, 지역에서 터를 잡고 살던 농민과 학생들의 조직된 활약이 있었다. 유관순 열사 한 사람이 너무 부각되는 바람에, 이런 사실이 너무 낮게 평가되거나 가려져 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지역 역사학자들은 아우내 장터에 수많은 사람이 결집할 수 있었던 것은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이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성공회 병천교회, 매봉교회, 동학의 접주들을 중심으로 한 동학농민들, 진명학교를 비롯한 학생과 교사들의 활약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그들은 태극기를 그리고 만세집회를 조직하고 연락본부의 역할을 하며 만세운동을 주도했다고 한다.
 
아우내혁명 독립만세기념공원에는 그날을 그려볼 수 있는 다양한 조형물이 마련되어 있다.
▲ 아우내혁명 독립만세운동기념공원 아우내혁명 독립만세기념공원에는 그날을 그려볼 수 있는 다양한 조형물이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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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내 장터 입구에는 아우내혁명 독립만세기념공원이 조성돼 있어 그날의 함성 현장을 느껴볼 수 있다. 당시 아우내 장터 입구에 헌병주재소가 있어 더 많은 학살 피해를 입었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아우내혁명 독립만세기념공원에는 그날을 그려볼 수 있는 다양한 조형물이 마련되어 있다. 이용길 천안역사문화연구회 회장은 "잘보고 기억하고 알려달라. 대부분의 조형물이 친일 작가의 손으로 만들어져 친일 행적을 일삼았던 이의 모습이나 후손들이 만세조각상에 함께 들어 있다.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역사순례팀은 세성산을 시작으로 유관순 열사 사당, 3·1혁명 기념비, 3·1 만세공원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이동녕 선생 생가터에서 임시정부 헌장을  낭독하며 자주평화통일의 의지를 새겼다.
▲ 이동녕 선생 생가터  이동녕 선생 생가터에서 임시정부 헌장을 낭독하며 자주평화통일의 의지를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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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의 마지막 여정은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초대 의장을 역임하며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이동녕 선생 생가지다. 이동녕 선생 생가는 독립기념관이 건너다 보이는 목천읍 동리 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기념관은 상설 개방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이동녕 선생 생가에서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낭독하는 시간이 있었다. 임시헌장을 낭독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아직도 자주독립과 평화통일을 이루지 못한 우리의 현실을 떠올렸다. 우린 어떤 자취를 남겨야 할까.
 
대한민국임시헌장
[시행 1919. 4.11 임시정부법령 제 1호 1919. 4.11. 제정]

신인일치로 중외협응하야 한성에 기의한지 삼십유일에 평화적 독립을 삼백여주에 광복하고 국민의 신임으로 완전히 다시 조직한 임시정부는 항구완전한 자주독립의 복리로 아자손려민에 세전키 위하여 임시의정원의 결의로 임시헌장을 선포하노라

선서문
존경하고 경애하는 아이천만 동포 국민이여, 민국 원년 삼월일이 아 대한민족이 독립선언함으로부터 남과 여와 노와 소와 모든 계급과 모든 종파를 물론하고 일치하고 단결하야 동양의 독일인 일본의 비인도적 폭행하에 극히 공명하게 극히 인욕하게  아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갈망하는 사와 정의와 인도를 애호하는 국민성을 표현한지라. 금에 세계의 동종이 흡연히 아 집중하였도다. 차시를 당하야 본정부일전국민의 위임을 수하야 조직되었나니 본정부일전국민으로 더불어 전심코 육력하야 임시헌법과 국제도덕의 명하는바를 준수하야 국토 광복과 방기확고의 대사명을 과하기를 자에 선언하노라. 국민동포이여 분기할지어다. 우리의 유하는 일복의 혈이 자손만대의 자유와 복락의 가이요 인의 국의 건설의 귀한 기초이니라. 우리의 인도일마침내 일본의 야만을 교화할지요. 우리의 정의일마침내 일본의 폭력을 승할지니 동포여 기하야 최후의 일인까지 투쟁할지어디.

정강
1. 민족평등 국가평등 급 인류평등의 대의를 선전함.
2. 외국인의 생명재산을 보호함.
3. 일체 정치범을 특사함.
4. 외국에 대한 권리의무는 민국정부와 체결하는 종약에 일의함.
5. 절대독립을 서도함.
6. 임시정부의 법령을 우월하는 자는 적으로 인함.

제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제 2조 대한민국은 임시정부가 임시의정원의 결의에 의하여 차를 통치함.
제 3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급 빈부의 계급이 무하고 일체 평등함.
제 4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신교 언론 저작 출판 결사 집회 신서 주소 이전 신체 급 소유의 자유를 향유함.
제 5조 대한민국의 인민으로 공민 자격이 유한 자는 선거권 급 피선권이 유함.
제 6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교육 납세 급 병역의 의무가 유함.
제 7조 대한민국은 신의 의사에 의하여 건국한 정신을 세계에 발휘하여 진하야 인류의 문화 급 평화에 공헌하기 위하야 국제연맹에 가입함.
제 8조 대한민국은 구황실을 우대함.
제 9조 생명형 신체형 급 공창제를 전폐함.
제 10조 임시정부는 국토회복후 만일개년내에 국회를 소집함.
부칙 <임시정부법령 제1호 1919.4.11.>

100년 전 뜨거운 가슴으로 혁명의 깃발을 높이들었던 이들의 숨결을 따라 역사의 시간을 되새김질하는 것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까.

역사란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이다. 과거의 시간을 되감아 그날을 되짚어 보는 것은 현재의 역사를 바로 세우고 미래의 역사를 바르게 이어나가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단순한 길 걷기가 아니라 역사를 성찰하는 발걸음이 더 많이 이어져야 하는 이유다.
 
돌아 본 곳 : 여우고개→장군바위→희생자위령비→진곡사→세성교→김구응 열사 유택→유관순 열사 사당→매봉산→3.1혁명기념비→성공회 병천교회→3.1만세공원-이동녕생가지

태그:#세성산, #아우내, #동학에서 3.1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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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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