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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버지는 시암(샘)도 파고,
미영(목화)베도 짜고
못 하는 게 없었단다.
만능 재주꾼이었지.
마을 궂은 일은 도맡아 했고..."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준, 들려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숙모님이시다. 구수하게 전해 주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같이 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다. 실타래처럼 풀리기 시작한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아버지는 6.25 남북전쟁 4년 후인 1954년에 돌아가셨다. 세 살 때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숙모님은 나를 볼 때마다 아버지와 어머니 이야기를 해 주시곤 했다. 

지난 4월 29일 고향 숙모님을 찾았다. 아흔이 넘으셨다. 생각에 잠긴 듯, 누구를 기다리는 듯 먼 허공을 바라보고 계셨다.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한다. 

정이 많으셨다. 누구에게나 덕담을 해 주셨다. 칭찬이나 배려에 인색한 시대다. 누구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안부를 묻고 조그만 일에도 관심을 보였다. 
진달래꽃아 네 꽃 진다고 서러워 마라
춘삼월이 돌아오면 잎도 피고 꽃도 핀다.
나는 나비 피는 꽃은
시절만 만나서 피는구나
동자야 술 부어라
마시렴자
안주 봐라

가는 동무 오는 동무
때가 되어도 아니 온다.
잎은 피어서 춘산이요
꽃은 피어서 화산이라
단풍 들어서 황산이요 
눈도 나리면 백산이라 
동자야 술 부어라
마시렴자
안주 봐라


꽃이야 곱기는 곱단다 마는
가지가 높아서 못 꺾겠네
꽃이야 꺾든지 못 꺾든지
그 꽃 이름이라도 짓고 가세
꺾고 가면 단장화요
못 꺾고 가면 무정화라
춘하추동 사시절에

동자야 
술 부어라 마시렴자 
안주 봐라

몇 년 전 숙모님이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다. 뇌 수술이 끝난 뒤라 머리를 붕대로 싸매고 계셨다. 노래를 불러달라고 말씀드렸더니 사계절 민요를 불러주셨다. 계속되는 노랫소리, 흥에 겨운 듯, 슬픔이 깃든 듯...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진다.

밭을 매거나 화전놀이를 하면서 불렀을 그런 노래다. 힘들 때, 슬플 때, 즐거울 때, 행복할 때 부르는 노래였겠지만 어딘지 쓸쓸하고 한이 맺힌 듯 호소력이 있다. 은은하게 다가온다.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니 안 놈은 잘 있냐?" 귓전에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덧붙이는 글 | 구전으로 계승되는 민요인듯 합니다. 아흔살이 넘으신 노인이 끝까지 기억하시고 불러주셨습니다. 가사를 보존하고 싶은 생각에 쓴 글입니다.


태그:#천암리, #민요, #농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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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삶의 의욕을 찾습니다. 산과 환경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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