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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선 크레인으로 양육되고 있는 밍크고래. 작살 흔적이 없는 혼획된 고래는 경매에 부쳐진다.
 어선 크레인으로 양육되고 있는 밍크고래. 작살 흔적이 없는 혼획된 고래는 경매에 부쳐진다.
ⓒ 울진해양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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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들어간 언론 보도를 받아볼 수 있게 키워드 알림을 해두면, 카드 거래 내역을 알리는 문자보다 고래 시체 가격을 더 자주 받아볼 수 있다. 한국 언론은 죽은 고래 시체가 얼마에, 또 얼마에, 그리고 또 얼마에 거래됐다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죽은 고래 시체에 영수증을 찍어대는 꼴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우리는 인간의 죽음마저 감정이 아닌 숫자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증권시장에 주가 오르내리듯, 증가세와 하락세를 알리는 빨갛고 파란 화살표가 매 시각 부지런하게도 업데이트된다. 하루 5000명 사망, 역대 최대 사망자 수 기록, 건조한 숫자 앞에서 우리는 서로의 죽음에도 무뎌져 간다.

놀랍지 않게도, 코로나19 훨씬 이전부터 인간은 다른 종의 죽음에는 지독히도 무뎠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로 1000만 마리 살처분, 수질 오염으로 물살이 1100여kg 폐사. 펄떡펄떡 피를 쥐어짜내던 1000만개의 심장이 멈추고, 자유롭게 춤추던 유선형의 힘 있는 움직임이 멈춘 거다.

그 학살 앞에, 우리는 최소한의 애도를 표했어야 했다. '살처분', '폐사' 같이 없는 말을 지어낼 게 아니라, 인간의 욕심에 죽어나간 생명에 비통함을 표했어야 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학살 아래 펼쳐진 사건의 '진짜 면모'를 낱낱이 드러내야 했다. 그게 언론이 좋아하고 또 잘하는, 해야 하는 일 아닌가. 그런데 그렇지 못했고, 신문기사의 1면은 박쥐와 천산갑을 코로나19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기사가 뒤덮였다.

죽음에 로또 당첨이란 말을 붙이는 이들

여기, 죽음을 숫자로 진열하다 못해 그 죽음에 '로또 당첨'이라는 말을 붙이는 경우도 있다. 바로 고래 혼획이다. 고래 혼획은 다른 물살이를 잡기 위해 설치해둔 그물에 고래가 우연히 걸리면서 의도하지 않게 고래를 잡게 되는 걸 뜻한다. 원래 고래 사냥과 거래는 불법인데, 이렇게 우연히 고래가 잡히면 합법적으로 돈을 받고 거래할 수 있게 된다. 언론은 이를 축하하기로 하듯, 고래의 죽음에 '로또'라는 이름을 붙였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나라는 '선진국'답게 고래사냥이 불법이다. 전 세계적으로 IWC(국제포경위원회) 회원국은 1986년부터 고래잡이를 금지하고 있는데, 그에 따른 것이다. 2014년 일본은 홀로 협약을 탈퇴하고 고래잡이를 강행하겠다고 나섰다가 각 나라 정부 혹은 환경단체로부터 있는 없는 욕은 모두 먹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우리나라는 조용히, 열심히, 우연히 고래를 잡고 있다. 2014년 기준 10개 국가에서 우연히 잡힌 고래 수는 평균 19마리인데, 우리나라에서만 무려 1835마리가 잡혔다. 약 96배가 넘는 수다. 말도 안 되는 '우연'이다. 

우연을 빙자한 고래 사냥보다 끔찍한 것은 이를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다. 국내 언론 상당수는 고래류의 의도적 혼획을 방조하는 법의 허점을 비판하기는커녕 '바다의 로또'라는 표현을 쓰면서 유통가격을 기재하고 있다. "언론은 시민을 위해 존재하며, 시민의 신뢰는 언론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한국기자협회가 내놓은 언론윤리헌장 첫 줄이다. 그래서 더 끔찍하고 기이하다. 고래의 죽음에 가격만 읊어대는 행태가 말이다.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지킬 수 있다. 헌법 제34조 1항.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이를 위해 국민은 '알 권리'를 보장 받는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에서만 거듭 반복되는 고래의 우연한 죽음이 '인간다운 생활'을 파괴하고 존엄과 가치, 행복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이에 대해서도 정확한 사실을 알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가격 따위가 아니라 말이다.

한국 언론과 기자들을 위한 정보 두 가지

고래의 죽음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인간다운 생활과 존엄'에 어떤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까? 국제사회는 왜 '국제포경위원회'까지 만들며 고래를 보호하려고 했을까? 이 모든 게 너무 어려워 고래 시체 가격만 보도한 것일까봐, 한국 언론과 기자분들을 위해 아래 '정보'를 준비했다. 딱 두 가지다. 어렵지도 않으니 부디 잘 살펴보길 바란다.

첫째, 고래 없이는 인간도 없다. 지구에 살아있는 동물 중 가장 큰 동물인 고래는, 그 덩치만큼이나 생태계에서 존재감이 크다. 고래의 배설물은 지구 산소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는 식물성 플랑크톤의 주요 영양분이 된다. 고래는 해수면과 심해를 오가는 펌프 역할을 하면서 해수를 아래위로 섞어주고, 그 과정에서 대기 중의 탄소를 상당량 해저로 흡수해가는 등 지구온난화의 조절에도 기여한다.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가 폭우와 폭염, 산불, 해일 등의 모습으로 인간의 삶에 얼마나 파괴하였는지는 이제 말하지 않아도 세계 곳곳에서 몸소 겪고 있다.

둘째, 고래를 바다에서 건져내는 것은 어마어마한 경제적 손해다. 언론이 앞으로도 고래의 시체에 영수증을 매길 거라면, 제대로 매겨야 한다는 뜻이다. 고래 1마리당 가지고 있는 경제 효과는 약 24억 원(IMF 보고서)에 달한다. 고래는 죽어서도 바다 위, 심해, 해안가 생물들의 중요한 먹이가 된다. 특히 바다 깊이 가라앉은 고래 사체는 50~75여 년 동안 심해 생태계에 결정적인 영양분을 제공한다.

혈세가 허투루 쓰이지 않길 바라는 시민이자 유권자라면, 경제·생태적 손실을 초래하는 고래 혼획에는 눈 감으면서 수십억 원을 '환경 보호'의 명목으로 추가 편성하는 정부의 이중적인 행태를 비판할 이유가 충분하다. 생명의 경이로움과 눈 마주치는 것, 그를 지켜내는 것의 중요성은 백번 강조해도 모자랄 것이 없고 말이다.

여전히 해소하지 못한 한 가지 의문이 있다. 그물에 엉켜 시체로 떠오르는 끔찍한 '우연'이 왜 자꾸 한반도 해안에서 거듭되는 것인지. 다른 나라에 비해 96배 많은 고래가 우연히 잡히는 것인지 말이다. 고래를 붙잡고 묻고 싶지만, 축 처진 채 그물에 딸려 올라온 고래는 답이 없다.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몰살을 눈 감는 정부, '사고' 같은 '사건'의 이면을 낱낱이 보도하지 않는 언론, 나아가 고래 시체 가격에 '로또'라는 이름까지 붙여대며 우연한 죽음을 부추기는 언론은 어쩌면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지 않을까.

태그:#시셰퍼드코리아, #고래고시, #고래 혼획, #혼획, #밍크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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