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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한국 사회에서 가장 첨예한 노동 문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공공기관과 중소기업, 법적 노동자와 여기 포괄되지 않는 '일하는 사람'으로 나뉘는 노동시장 분절과 불평등이다. 고용상 지위와 무관하게 누구나 일하는 사람으로서 존엄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보편적 인권의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의 단결과 연대를 저해한다는 측면에서도 '일하는 모든 사람의 노동권 보장'과 불평등 완화는 중요한 과제다.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건강 문제도 마찬가지다.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갖춰야 할 사업주의 노동법적 책임을 물을 곳 없는 '일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연대하여 권리를 주장해야 할 노동자들의 협상력은 더욱 낮아지는 최근의 상황은 노동자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노동안전보건 불평등 확대로도 이어진다. 그래서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의 주요 방향은 "노동 건강의 불평등 완화"다.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위한 구체적 비전

이를 위해 먼저 구체적인 위험의 외주화 방지 전략이 필요하다. 노무 제공으로 이익을 누리는 자가 그러한 이익에 상응하는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는 형평의 원칙은 구의역과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망한 이후 계속 얘기해오던 바다.

이를 위해 산업안전보건법 상의 원청 책임이 일부 강화되고, 중대재해처벌법에서도 '도급, 용역, 위탁 등을 시행'할 때도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여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강은미 의원실에 따르면, 2021년 1~10월 중대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566명이며 이 중 전체 사망자의 37%인 210명이 하청노동자로, 외주화로 인한 노동자 사망이 계속되고 있다.

같은 일도 외주화되면 더 위험해질 수 있다. 산재예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관리시스템의 구축인데 원·하청 구조는 안전관리시스템을 분절화시켜 체계 구축의 출발부터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상시지속업무 정규직화가 선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법제화되고, 비정규직을 양산해 온 파견법을 폐지하는 등의 강력한 전환이 노동자 건강에도 중요한 이유다.
 
2021.9 부산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차별없는 적용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선전을 하고 있다.
 2021.9 부산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차별없는 적용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선전을 하고 있다.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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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사업장의 노동자 안전보건 관리 책임에 예외를 두는 법제도 역시 작은 사업장으로 업무를 이전했을 때 노동자들이 더 위험해지는 배경이 된다. 기업들은 규제를 회피하려 일부러 사업장을 쪼개는 꼼수를 쓰기도 한다.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고,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 안전관리자, 보건관리자,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등 산업안전보건법 상의 안전보건관리 체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소규모 영세 사업체의 부담을 이유로 들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 없이 수십 년 동안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은 안전과 건강의 사각지대에 놓여 왔다.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소규모 사업장에도 전면 적용하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재정적, 인적, 기술적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위험의 외주화의 다른 버전이 기존의 고용관계로 포괄되지 않는 특수고용직과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들이다. 직고용된 택배노동자만 근골격계질환에 걸리고 과로사하는 것이 아니며, 직고용된 노동자들만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건강검진, 위험성평가,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직장 내 괴롭힘 방지조치 등 수많은 안전보건조치에서 '고용관계 바깥의 일하는 사람들'은 배제되어 있다.

현재 특정 업종의 일부 특수고용노동자에게만 적용되는 안전보건상의 의무-권리 관계는 '위장된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넓은 범위의 특수고용노동자로 확대돼야 한다. 이재명 후보는 특수고용·플랫폼노동·프리랜서와 같은 모든 일하는 사람을 포괄적으로 보호하는 '일하는 사람 권리보장 기본법'을 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법이 일부러 고용관계를 회피하려는 사용자들에게 악용되지 않기 위해서는, '위장된 자영업자'인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 '근로자'로서의 권리를 확대 적용하는 것이 먼저다.

끝내 직접적인 '고용관계'에 편입되지 않는 경우에도, 타인의 노동력을 사용하여 이윤을 얻는 자들에게 최소한의 안전보건상의 의무와 사회적 책임이 적절히 부과되어야 한다. 원청, 발주자, 가맹사업 본부, 플랫폼 기업, 생활물류서비스 사업자에게 관리감독과 관련한 포괄적 의무를 부여할 수 있다. 가맹점이나 플랫폼 기업이 서비스의 질과 영업시간을 관리하고, 정교한 알고리즘으로 업무를 부과하듯이 일하는 사람의 노동안전도 관리할 수 있고 관리해야 한다. 위험부담금 부과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 불평등 해소와 함께

노동시간 단축에서도 역시 불평등은 중요한 고리다. '노동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지 못하는 대선이라는 평가 속에서, 그나마 노동시간과 관련된 정책 혹은 후보의 발언은 여러 차례 여론의 관심을 받았다.

평균 노동시간이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연간 200시간 이상 길게 일하고 있는 나라에서, 노동시간 단축이 기후위기와 탄소 배출의 대안으로까지 얘기되는 시점에 나온 윤석열 후보의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거나, "연평균 주 52시간을 맞추"는 탄력근로제 확대에 대한 의지 표명은 시대착오적이다.

주 40시간 노동제를 규정한 근로기준법 하에서도 주당 68시간까지 노동이 가능하던 시대를 지나, 겨우 주당 노동시간이 최대 52시간으로 제한됐는데, 대신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이 6개월까지 증가되었다. 노동자의 몸은 고무줄이 아니다. 이렇게 불규칙한 노동시간은 한국사회에서 일터가 오로지 생산량과 이윤을 추구할 뿐, 일하는 사람의 건강이나 삶은 관심 밖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40시간 노동제의 정착이 중요한 과제다.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는 재검토가 필요하고, 현재 근로기준법에 전혀 담기지 않은 야간노동 제한(심야노동 가능 업종/직종 제한 혹은 야간노동 포함 시 최대 노동시간 단축 등), 노동시간 규정 적용 제외나 특례 업종 축소, 하루 노동시간 제한 등 법적 개선 과제가 있다. 불법적으로 악용되는 포괄임금제 폐지 등 행정적 조치도 필요하다.

그러나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제기하고, 민주당 이재명 후보도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겠다는 주 4일제나 4.5일제가 지금 시기 노동시간 단축의 핵심 과제로 보이지는 않는다. 근로기준법이 개정된다 하더라도 그 적용을 받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나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등에게는 주 4일제가 먼 얘기가 될 수 있다.

주 40시간인 표준노동시간보다 단시간 노동의 비율이 더 빠르게 늘어, 주 15시간 미만 노동하는 초단시간 노동자가 150만명을 상회하는 현 상황에서는 주4일제보다는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 적용이나 최저임금의 획기적 인상이 실질적인 장시간 노동을 막고, 노동시간 불평등을 완화시키기 위해 더 시급한 공약일 수 있다.

취약노동자 보호는 두텁게

이런 기반 위에 이주노동자, 여성노동자, 고령노동자 등 전통적인 안전보건 취약 노동자에 대한 보호 정책이 덧붙여져야 한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공약에서 공정한 노동시장을 말하면서도 여성노동자, 이주노동자와 같은 구체적인 불평등과 격차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은 지금 얘기되는 '공정'이 어디를 향하는지를 보여준다.

농축산업 이주노동자가 컨테이너, 비닐하우스 등 기본적인 휴식과 안전, 위생이 보장되지 않는 '살 수 없는 공간'에 거주하면서, 장시간 저임금 노동을 수행하다 목숨을 잃는 일이 계속되어 왔다.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기숙사 가이드라인 제정과 숙식비 징수지침 폐지는 시급한 과제다. 체류상태와 산업재해를 치료받을 권리는 무관하다면서도, 산재 피해자의 체류 상태를 근로복지공단이나 보건소 등 공무원이 출입국관리소에 통보하도록 되어 있어 이주노동자들이 산재 신청을 기피하게 된다.

이주노동자의 알 권리와 치료받을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이주노동자 뿐 아니라 농축산업인 누구나 산업안전보건의 취약 지대에 있음을 고려하여 '농업 맞춤형' 산업안전보건 관리 체계를 제도화하고 농축산업의 고립된 사업장의 안전보건 감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동반되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는 여전히 성별 직종 분리가 뚜렷하고, 남성과 여성 노동자는 서로 다른 안전보건 위험에 노출된다. 그러나 이런 성별 차이를 고려한 노동안전보건 정책은 요원하다.

태아 산재 관련 산재법 후속 개정, 인공 임신 중절에 따른 유산 휴가 배제 조항 개정 등 성인지적인 안전보건 법령 개정, 성인지적인 위험성 평가 및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등 성인지적 예방 정책 실행, 민간 돌봄 서비스 영역 여성 중고령 노동자 등 여성노동자를 고려한 산업재해 통계 점검과 이를 반영한 예방 정책 수립으로부터 변화를 꾀해야 한다. 더불어 질병판정위원 등 노동안전보건 체계 내 성별 균형 제고도 고민해야 한다.

대통령 선거에 내놓는 요구안은, 사실은 일하는 사람들인 우리가, 집단으로서 함께 할 일을 다시 짚어보는 것이다. 일상의 노동자 정치가 살아나야, 대선에서도 노동 정책이 뜨겁게 토론될 것이다. 평등해야 건강하다. 일터의 불평등을 함께 줄여 나가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노보연 상임활동가이자 직업환경의학전문의인 최민님이 작성하셨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일터> 3월호에도 게시됩니다.


태그:#대통령_선거, #노동안전보건_불평등, #노동시간_불평등, #소규모_사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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