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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다. '산재사망이 기업에 의한 살인'이며, '더이상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 어느 누구도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국민 대중의 아래로부터의 목소리가 국회의 담장을 넘어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먹고 살려면 다치고, 병들고, 죽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일터에서 단 한 명의 희생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의식의 진전이 반영된 결과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급속한 성장에 비해, 일터의 안전·보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뒤처져 있었다. 그럼에도 더디지만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은 변해왔고, 제도 변화를 이끌어냈다.

지금, 2022년 대선을 맞는 우리는 '중대재해처벌법 너머'를 상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당시부터 현재까지, 찬반 진영 모두 '예방이 우선'이라고 강조해왔다. 이제는 예방의 순기능을 정착시키기 위한 안전·보건 정책의 방향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이를 위해 이번 대선에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건강'이 선언을 넘어, 일터에서 권리로서 정착되고, 실제로 작동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또한 예방이 무너진 결과로 얻게 된 재해의 결과에 합당한 보장체계를 구축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한 핵심적인 요구를 정리했다.

기업의 안전·보건 정보에 대한 알권리 보장!

업종이나 직종에 따라 나타나는 양상이 다를 뿐 어느 일터에나 유해·위험 요인이 있다. 기업은 노동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위험 요인이 일하는 사람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 훼손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를 위해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은 안전보건교육이고, 일하는 사람이 유해·위험 요인에 대해 '알 권리'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가령, 취급하는 화학물질의 정보를 담은 MSDS(물질안전보건자료)를 사업장에 '비치·게시'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일하는 사람이 '알게 하여야 한다'는 수준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사업장에서 실시되는 안전·보건교육을 내실화하는 것에 그쳐서도 안 된다. 우리 사회가 한 발짝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민 대중의 안전·보건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확대해 가야 한다.

지난 10여년간 삼성반도체 백혈병으로 알려진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반올림'의 헌신적인 투쟁은 유해화학물질의 치명적인 위험을 세상에 알렸다. 이를 계기로 영업비밀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고 했던 삼성전자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공개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도 이끌어냈다. 그러나 여전히 누더기 작업환경측정보고서만 세상에 공개되고 있다.

특히 2019년 삼성보호법으로 불린 '산업기술보호법'에 이어, 2022년 1월 11일 '국가첨단전략산업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해 알 권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상황이다. 이 법은 특정 기술 및 산업이 국가첨단전략기술로 선정되면, 적법한 절차를 통해 정보를 입수하고 생명과 안전을 위한 활동 등을 위해 사업장 관련 정보를 공개하더라도 공개자들을 처벌 가능하도록 했으며, 산업기술보호법보다 처벌 수위도 높였다.

하지만 우리는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건강이 보장되지 않으면, 그 피해가 공장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공장 담벼락 바깥의 주민과 생태, 지역사회를 위협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일하는 사람의 생명과 안전에 필수적인 정보는 그 어떤 명분으로든 은폐되어서는 안 된다. 수많은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얻은 교훈이 기업의 이윤에 밀려 뒷전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이유이다.

마찬가지로 알 권리 차원에서 '중대재해 조사 보고서'도 대중에게 공개되어야 한다. 매일 같이 일터에서 누군가가 목숨을 잃고 있는 현실에서, 동료시민인 누군가가 왜 희생되었는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 공개되어야 한다. '예방은 사고에서 배운다'는 안전보건의 상식과 같은 말이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중대재해라는 결과에 대한 조사를 행정력을 동원하여 실시한 이후 '수사자료'라는 명목으로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예방의 기초자료가 되어야 할 공공행정의 조사결과물이 비공개 상태에 머물러 본래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조사결과가 공개되어야, 조사에 미흡함은 없었는지, 대책은 무엇인지, 개선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알 수 있고, 그 이행의 결과를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노동자뿐 아니라 지역 노동자와 시민사회가 함께 감시하고 점검해 나갈 수 있다.

또한 기본적인 안전·보건 알 권리 차원의 진전은 일하는 사람뿐 아니라, 사회구성원 전체를 향해 확대되어야 한다. 우선 이주노동자, 청소년, 플랫폼 노동자 등 취약노동자 대상의 교육을 의무화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노동공약으로 '학교 교육에 노동인권 과정을 반영'하겠다고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보다 구체화 할 필요가 있다.

노동안전보건교육을 의무화하여 정규교과과정에 포함하는 것이 그 시작이 될 수 있다. 또한 일하는 사람뿐 아니라, 안전보건교육을 실시할 의무를 지는 사업주, 경영책임자, 지자체장, 공공기관의 장에 대한 안전보건교육도 의무화하여 실시할 필요가 있다. 예방의 기틀이 될 안전보건경영방침 수립은 보호와 예방의 필요성에 대한 책임자들의 절박한 인식 전환이 선행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참여권 확대를 통한 작업중지 권한을!

크고 작은 노동재해에 대한 대응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예방의 가장 적극적인 조치 중 하나가 바로 위험 상황에서 업무를 거부, 회피하거나, 대피하는 것(작업중지권 행사)이다. 위험을 거부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일터에서 이 본능은 억눌리거나 제약을 당하고 있다.

2019년 1월, 28년만의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이 있은 후 고용노동부가 앞장서 개정의 핵심사항으로 홍보한 것이,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이 이전에 비해 명확해졌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개별 노동자의 판단으로 작업중지를 행사하기는 어려운 조건이다. 사업주와 노동자가 결코 대등한 관계가 아닌 상황에서, 개별 노동자는 작업중지 행사에 따른 불이익을 우려해 위험을 거부하거나, 멈출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안전보건공단에서 발행한 노동자 작업중지권 카드뉴스
 안전보건공단에서 발행한 노동자 작업중지권 카드뉴스
ⓒ 안전보건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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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례로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된 이후 작년 들어 일부 대형건설사나 공공기관 등이 노동자 작업중지권 행사를 보장하고, 권장하는 협약식이 줄을 이었다. 법문에 작업중지권이 명확해졌다고 해서 실제 작업중지 행사가 가능한 게 아닌 현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따라서 개별 노동자뿐 아니라 노동조합 차원에서 집단적으로 작업중지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보장해야 한다. 근로자대표나 명예산업안전감독관에게 작업중지권 행사의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캠프에서는 노동공약의 하나로 '폭염, 혹한과 같은 산재 발생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작업을 중지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 기후로 나타나는 이례적인 폭염, 혹한 시기에 정부가 실시해 온 작업중지 권고나 지침을 법제화하겠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도 아닐뿐더러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일터에서 작업중지를 해야 할 상황이 특정한 기상상황에만 국한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재해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예방의 기능으로서 작업중지가 단행될 수 있으려면, '산안법에 명시된 안전·보건 조치가 갖추어지지 않았을 때'와 같은 형태로 법문을 손봐야 한다. 현행 산안법의 '급박한 위험'과 같은 모호함은 거둬내고,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실질적인 접근이 가능하도록 과감한 진전이 필요하다.

또한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에 대한 작업중지가 '중대재해가 발생한 작업', '동일 작업' 작업에 한정돼 있어, 누군가 죽은 곳에서 또 죽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총체적인 안전보건관리 부실의 결과가 단적으로 드러난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고용노동부 장관의 작업중지 범위를 '전면 작업중지'로 확대하는 한편, 재해조사와 현장개선까지 이어지는 대안 마련의 전 과정에 노동자 참여가 필수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일터를 가장 잘 아는 '현장의 전문가'인 노동자가 재해 예방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권리로서 산재보험, 사회보장 제도 강화!

일터에서 산재예방체계가 무너진 결과로 발생한 노동재해는 노동자의 몸과 정신에 상흔을 남긴다. 따라서 일터에서 얻은 질병과 사고에 대한 치료와 보상을 위해 마련된 산재보험은 시혜가 아닌, 사회구성원에 대해 져야 할 마땅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설계된 제도이다.

그러나 사회보험으로써 산재보험이 '본래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하는 문제제기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본인부담이 높을 수밖에 없는 비급여의 증대, 평균임금 70%에 그치는 휴업급여 보장성은 재해노동자가 요양기간 중 마음 놓고 치료받을 수 없는 또 다른 제약이 되고 있다. 일부 대기업 등에서 휴업급여를 100% 보장하는 경우가 있어, 산재보험의 낮은 보장성은 치료받을 권리의 불평등으로도 이어진다.

이와 함께 산재신청 후 요양 승인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문제, 노동자 스스로 입증을 해야 하는 어려움으로 인해 여전히 산재보험은 진입장벽이 높은 넘어야 할 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산재보험의 포괄 대상을 확대하고, 보장성을 높이고, 진입장벽은 낮추는 방향으로 개혁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그나마 상병수당 제도가 올해 7월부터 시범 도입을 예정하고 있지만, 전면 적용까지는 아직 상당 시일이 필요하다. 당장 일하는 사람이 아프고, 다쳤을 때 산재보험 이외에 기댈 곳이 마땅치 않았던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회보장 제도 설계가 사회구성원들의 합의를 통해 구축되어야 할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노보연 상임활동가 손진우님이 작성하셨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일터> 3월호에도 게시됩니다.


태그:#알_권리, #대통령_선거, #작업중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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