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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두 작가는 작품을 통해 거대한 손이 반복해서 움직이며 소셜미디어의 피드를 넘기는 듯한 행동으로 쏟아지는 정보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을 표현했다.(안양예술공원에 설치)
▲ <신성한 욕망> 마리 멍크, 스티네 데예 코펜하겐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두 작가는 작품을 통해 거대한 손이 반복해서 움직이며 소셜미디어의 피드를 넘기는 듯한 행동으로 쏟아지는 정보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을 표현했다.(안양예술공원에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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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는 안양에서 3년마다 열리는 국내 유일의 공공예술 축제이다. 시민이 일상 속에서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도시 자체를 하나의 갤러리로 만들어가는 프로젝트로 올해 7회째에 이른다. 

APAP7의 주제는 '7구역, 당신의 상상공간'으로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던 옛 농림축산검역본부의 실내에 미디어아트, 퍼포먼스 아트, 커뮤니티 아트 등 다수의 작품이 전시되었고 야외에도 두 작품이 설치되었다.

안양예술공원에서 이전 APAP 작품들을 보아왔던 안양시민으로서 이번엔 어떤 주제로 열리는지 궁금하였다. 더군다나 이 건물은 60년이 넘은 오래된 건물이어서 복고 감성을 느끼기 좋고 실내이니 편리한 관람이 기대되었다.

관람의 시작은 은행나무와 보자기라운지 
 
스페인 건축가 이자스쿤 친치야는 보자기와 노리개로 내용물을 정성스럽게 담는 한국 전통 포장 문화를 차용하여 의자와 램프를 은행나무에 설치하였다.
▲ <보자기 라운지> 이자스쿤 친치야 스페인 건축가 이자스쿤 친치야는 보자기와 노리개로 내용물을 정성스럽게 담는 한국 전통 포장 문화를 차용하여 의자와 램프를 은행나무에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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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로 들어가기 전에 키 큰 은행나무 한그루가 보자기에 둘러싸인 타이어만 한 튜브를 동그랗게 매달고 서 있었다. 튜브마다 전등이 켜지고 나무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놓여있어 놀이동산에 사람이 탑승하면 돌아가는 놀이기구를 연상시켰다.

바닥에도 한 번 더 튜브가 은행나무를 향해 비스듬히 둘러져 있는데 이것은 앉아서 놀이기구를 타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편안한 소파처럼 생겼다. 스페인 출신 건축가 이자스쿤 친치야의 <보자기 라운지>이다. '상상7구역'이니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동심 가득한 재미있는 조형물을 많이 만들어 놓았을 것이라 예상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전시장 첫 작품은 현실의 절단
 
책이 놓인 서가 바닥과 천장 곳곳에는 오래된 상형 문자들이 부적처럼 쓰여 있고 <시의 탑>에 시집이 꽂혀 있다.
▲ <북 만달라> 함돈균 책이 놓인 서가 바닥과 천장 곳곳에는 오래된 상형 문자들이 부적처럼 쓰여 있고 <시의 탑>에 시집이 꽂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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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전시장의 시작은 예상과 달리 150권의 책이 진열된 방이었다. 이 작품은 함돈균 작가의 <북 만달라>로 처음 읽게 되는 글귀가 의미심장하다.

"독서의 시간은 독자의 현실을 시간적으로 절단한다. (중략) 평소 당신이 지닌 익숙한 생각을 판단 중지 시키는 중립적 사물들과 당신을 마주 세운다."

책이 놓인 서가 바닥과 천장 곳곳에는 오래된 상형 문자들이 부적처럼 쓰여 있고 <시의 탑>이라고 시집이 꽂혀 있는 탑을 보고 있으니 마법책들이 꽂혀 있는 듯하다. 그중 한편의 시를 읽으면 해리포터의 영화에서 처럼 마법이 시작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간병과 고령화, 돌봄 문제에 접근
   
 '자신을 돌보는 대상'을 점토를 이용해서 토템으로 만들어 보는 작업을 하게 하였다. 완성된 토템 작품과 과정을 담은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 <유경과 이난> 송유경, 이이난  '자신을 돌보는 대상'을 점토를 이용해서 토템으로 만들어 보는 작업을 하게 하였다. 완성된 토템 작품과 과정을 담은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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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공간으로 이동하니 간병인의 모습을 담은 미디어 작품이 설치되어 있었다. 알레시아 네오는 <땅과 하늘사이>를 통해 다른 사람을 보살펴야 한다는 직업의식에 충실하다 보니 스스로를 돌보는 일에는 소홀한 간병인들에게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다양한 자세를 취하게 했다.

이어서 송유경과 이이난 작가는 장애인복지관의 원생들에게 '자신을 돌보는 대상'을 점토를 이용해서 토템으로 만들어 보는 작업을 하게 하였다. 완성된 토템은 우주의 행성이나 벌과 꽃, 과일 등 다양했고 작품과 과정을 담은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이쯤에서 '돌봄'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데 상상공간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안혜경 작가는 작가의 어머니와 지인들, 여행 중 만났던 노인들의 이야기가 간략하게 적힌 초상화를 그려 영상과 함께 전시하였다. 대개 80세 이상인 분들의 추억담과 소박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화가의 여행 가방>이라는 프로젝트의 일부로 자신의 어머니와 이전에 만났던 노인분들의 자화상과 짧은 이야기를 전시하였다.
▲ <그녀의 소녀> 안혜경 <화가의 여행 가방>이라는 프로젝트의 일부로 자신의 어머니와 이전에 만났던 노인분들의 자화상과 짧은 이야기를 전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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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제7구역에 돌봄이라는 무거운 주제가 불쑥 잘못 끼어든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불현듯 스쳤다.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적인 문제가 이렇게 작품을 통해서 부드럽게 전달되니 힘든 일이라는 느낌보다 애틋한 마음이 생겼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주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일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

상상 속에서 열쇠를 찾아보자
 
중국 작가인 리촨의 작품, 전시장 벽면에 무수하게 많은 철제 열쇠가 매달려 있고 그 밑의 벽면에 드로잉으로 자물쇠나 열쇠 구멍이 그려져 있다.
▲ <시공간 균열> 리촨 중국 작가인 리촨의 작품, 전시장 벽면에 무수하게 많은 철제 열쇠가 매달려 있고 그 밑의 벽면에 드로잉으로 자물쇠나 열쇠 구멍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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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리촨의 방으로 안내된다. <시공간 균열>이라는 작품은 전시장 벽면에 무수하게 많은 철제 열쇠가 매달려 있고 그 밑의 벽면에 드로잉으로 자물쇠나 열쇠 구멍이 그려져 있다. 지금은 편리한 디지털도어록을 쓰는 시대지만 예전에는 열쇠에 대한 추억이 많다. 

어릴적 학교에 간 사이 부모님이 외출하실 때에는 항아리 밑에 열쇠를 넣어두었는데 그곳은 우리 가족만 아는 비밀 장소였고 꺼낼 때에도 누가 보는 사람이 없는지 주변을 항상 둘러본 후 얼른 꺼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자연스럽게 나는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던 '과거의 시간 속의 나'를 보게 되었다.

일회성의 현실 반영
 
풍선 같은 번쩍이는 일회용 비닐과 플라스틱 연통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실제 호흡하는 것처럼 바람이 들어갔다 나왔다 했다. 거대한 도시 괴물을 연상시킨다.
▲ <크리처> 이병찬 풍선 같은 번쩍이는 일회용 비닐과 플라스틱 연통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실제 호흡하는 것처럼 바람이 들어갔다 나왔다 했다. 거대한 도시 괴물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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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으로 올라가 만난 이병찬 작가의 <크리처>는 풍선 같은 번쩍이는 비닐과 플라스틱 연통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실제 호흡하는 것처럼 바람이 들어갔다 나왔다 했다. 거대한 도시 괴물을 보는 듯했고 모두 일회용품으로 만들어졌다는 데에 주목했다.

도시의 삶이란 화려하게 시작되지만 아주 쉽게 잊히기도 하는 일회성으로 유지되는 생태계 같기도 했다. 거대한 도시 괴물 바로 밑에는 동그란 볼록 거울이 여러 개 놓여 있고 그 안에 나의 모습을 비춰보니 조명과 번쩍이는 비닐 덕분에 파티의 한 장면같은 착각이 들었다. 묘하게 날카로운 작품이었다.

AI가 정답은 아니야
 
 AI에게 질문을 하면 엉뚱한 오답을 말한다. 한 관람객이 질문을 하고 있는 모습
▲ <괴짜 과학자의 실험실> 긱블  AI에게 질문을 하면 엉뚱한 오답을 말한다. 한 관람객이 질문을 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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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아주 인기라는 긱블의 작품을 보았다. <괴짜과학자 실험실>에는 한쪽 눈만 뜨고 혀를 내밀고 있는 아주 커다란 얼굴이 있다. 스티븐잡스를 닮은 AI는 온통 오답만 말한다.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노래 알려줘"라고 말하니 미세먼지 줄이는 법을 알려준다. 엉뚱한 AI에게 화가 나기보다는 안심이 되는 이유는 외모로 봐서는 내 미래까지 모든 사람 앞에서 거침없이 말할 것처럼 영험하고 냉정해 보여서 긴장했었기 때문이다.

미래의 열쇠는 무엇일까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전시 공간을 마치 생명체가 살고 있는 듯한 몽환적인 상상 풍경으로 변주한다.
▲ <인간+사랑+빛> 이성근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전시 공간을 마치 생명체가 살고 있는 듯한 몽환적인 상상 풍경으로 변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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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전시를 보기 위해 복도를 지나며 어쩌면 우리가 걱정하며 매달리고 몰입하고 있는 현실은 일회성이고 정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밀려나지 않기 위해 힘주어 버티고 있던 긴장이 멈추고 현실이 해체되는 듯했다. 

이성근 작가의 <인간+사랑+빛>을 감상하며 사랑하는 마음과 인연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았다. 은은한 빛을 받고 있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알의 형상은 내가 품은 희망으로 보이고 고치모양의 철망들이 그려내는 기다란 그림자는 무수히 지나가는 감정들처럼 보였다. 이곳은 마치 해변가 모래사장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조정호 작가의 <동행>은 홀로그램으로 우주의 빛이 지구가 되고 달이 되고 둘이 서로를 만나고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가상현실을 실감나고 신비롭게 표현해 실제로 우주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지구와 달처럼 상호 공존하는 존재이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한쪽의 가치에 치우치지 않게 살아야 함을 영상을 통해 전하는 듯하였다. 

이밖에도 많은 작품들이 신비롭고 아름답게 전시되어있어 마음을 여는 열쇠처럼 느껴졌다. 

전시장을 나서며 

전시장을 나서며 나는 다시 보자기 라운지에 섰다. 보자기는 예전에 선물을 포장할 때 썼는데 왜 보자기를 이곳에 감싸놓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상상의 열쇠를 보자기에 잘 담아 집으로 향했다. 시간과 공간을 가르며 상상과 현실이 섞여 마법 같은 '안양APAP7, 제7구역'에서 당신의 상상공간을 펼쳐보시길 바란다.

총 24개국 48팀, 88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번 APAP7은 위에 소개된 작품 외에도 다양한 작품이 안양예술공원과 (구)농림축산검역본부에 전시되어 있다. 오는 11월 2일까지 오전 10부터 오후 6시 사이에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다양한 체험행사와 실감나는 온라인 전시도 진행된다. 

월요일과 추석 당일은 휴관이고 도슨트투어(10:30, 11:30 ,13:30 ,14:30 ,15:30)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작가의 브런치에 실릴 수 있습니다.


태그:#제 7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APAP7, #안양농림축산검역본부, #안양예술공원, #공공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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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아름답고 재미난 이야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오고가며 마주치는 풍경들을 사진에 담으며 꽃화분처럼 바라보는 작가이자 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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