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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에게 인사하는 김용하 재정계산위원장 너머로 노동·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국민운동(연금행동) 관계자들이 규탄 피켓을 들고 있다
 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에게 인사하는 김용하 재정계산위원장 너머로 노동·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국민운동(연금행동) 관계자들이 규탄 피켓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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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국민연금을 민영화하려는 건 아니죠?" 윤석열 정부에서 연금개혁을 한다고 하니, 한 지인이 물었다. 한국의 연금개혁 역사에서 국민연금을 없애고, 삼성생명과 같은 민간보험으로 대체하는 극단적인 방식의 민영화는 공식적으로 다뤄진 적이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곱씹어볼 게 많다.

연금 민영화의 핵심 중 하나는 적립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국민연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이미 983조(시장가)에 가까운 국민연금기금이 적립돼 있다. 2040년엔 최고 1755억까지 쌓일 것으로 전망된다. GDP의 43.9%(경상가 기준)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다. 게다가 기금의 99.9%가 금융 부문에 투자되고 있다. 특히 해외주식과 대체투자 비중이 빠르게 늘어가고 있다. 위탁운영사에게 지급한 수수료만 2021년 한해 2조 3424억이나 된다. 금융자본 입장에서도 굳이 연금 민영화를 제기할 동기부여가 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앞으로의 상황은 다르다. 국민연금기금은 인구구조 변화 등으로 급격하게 소진될 예정이다. 국민연금이 일종의 저축이고 미충당부채이며, 기금규모를 금융투자, 자본성장과 맞닿아 생각하는 입장에선 민감할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국민연금 개혁을 둘러싼 접근이나 해법에도 금융자본의 욕망이 함께 투영되고 있다. 막대한 적립 기금 유지와 이에 대한 지배력 강화, 그리고 사적연금 활성화가 그것이다.

기금소진, 누구의 위기인가

지난 5차 재정추계 전망에 따르면, 2041년부터 수입보다 지출이 늘어나게 되고, 2055년이 되면 기금이 소진된다. 재정계산위원회는 향후 70년 재정전망의 시야 내에서(2093년) 기금이 소진되지 않는 것을 재정목표로 삼고, 보험료 인상과 수급연령 상향을 조합한 시나리오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소위 '더 내고, 더 늦게 받는' 방안이다.

간단히 해석하면 이렇다. 70년 장기재정전망을 해보니, 기금이 소진되지 않도록 하려면 현재 9%의 보험료를 17.9%까지 한꺼번에 2배 가까이 올려야 한다(2025년 인상 기준). 본인들도 무리라고 생각해서인지, 보험료는 12%, 15%, 18% 중에서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것으로 낮췄다. 대신,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나이를 68세까지 조정하고, 기금투자 수익률을 상향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다양한 조합 중에서 재정계산위원회가 유력하게 제시하는 것은 보험료율 15% 인상, 수급연령 68세 상향, 기금투자수익률 1% 상향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되면, 국민연금기금은 꾸준히 늘어나 2082년 최대 적립 규모가 무려 8797조 원까지 쌓이게 된다. GDP의 89.3%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물론, 국민연금기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급격한 고령화에 대비한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금소진이 곧 제도 파산을 의미하지 않는다. 보험료로 미리 적립한 기금만으로 노후소득을 감당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 이렇게 막대한 기금을 적립하는 국가는 완전 민영화를 했던 칠레 외에, 일본, 스웨덴, 캐나다, 미국 등 손에 꼽는다.

심지어 이들 국가 역시 적립금 규모가 GDP의 30%를 넘지 않는다. 막대한 적립금을 쌓아둘수록 재정이 안정적이라는 식의 무리한 접근과 해법이 오히려 제도의 목적이나 수용성마저 잠식할 뿐 아니라, 자산가치 하락 등 부정적 효과를 야기할 수 있다.

국민연금기금에 대한 금융자본의 지배력 강화

기금 투자 수익률을 1% 상향하겠다는 재정 방안 역시 사실상 재계와 금융자본의 끈질긴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투자수익률을 강조하는 주장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이번 5차 재정계산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인 재정 대안의 지위를 차지했다. 투자수익률을 올리겠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 비중을 더욱 높이겠다는 말이기도 하다. GDP의 거의 90% 가까이 쌓이다가 막대한 금액을 현금화해야 하는 극심한 변동성 위험뿐 아니라, 운용이나 관리 자체의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투자수익률을 핑계 삼아, 국민연금기금에 대한 자본과 금융업계의 영향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미 지난 3월, 책임투자나 주주권 행사 등을 심의하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 가입자단체 추천 비중을 6명에서 3명으로 줄였다. 대신 그만큼 금융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단체들의 추천 비중을 늘렸다.

더 나아가 이번 재정계산위원회에서는 투자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가입자단체 대표가 참여하는 기금운용위원회를 금융전문가로 재편하고, 정부로부터 독립된 전문 운용기관을 신설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는 윤석열 정부 출범에 맞춰 경총이 제시한 민원이자, "국민연금 수익률 높일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3월 6일)는 윤석열 대통령의 화답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국민연금 축소 = 다층연금 체계 강화 = 사적연금 활성화

막대한 적립 기금을 유지하고 이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과 함께, 금융자본의 이해가 맞닿는 지점은 바로 사적연금 활성화다. 사회보험과 민간보험은 반비례 관계다. 국민연금 보장성 약화는 곧 사적연금의 수요 확대로 이어진다.

5차 재정계산위원회는 소득대체율 상향을 배제했다. 이는 2007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20%p 삭감했던 것과 지난 4차 재정계산위원회의 '더 내고, 덜 받고, 더 늦게 받는' 복수안의 연장선에 있다. 이번에는 '덜 받는' 방안이 포함되진 않았지만, 민간보험 바라보듯 국민연금이 구조적으로 심각한 재정 불균형이라고 진단하는 한 시간문제다.

재정안정론자들의 '소득대체율 현행 유지'는 소득대체율 상향 주장에 대한 수동적 대응이자, 국면적 입장일 뿐이다. 소득대체율 삭감은 '재정 균형'을 위해 언제든 동원될 수 있는 카드다. 이미 소득대체율을 30%까지 더 낮추거나, 기대수명 증가에 따라 연금 급여가 자동으로 삭감되는 자동안정장치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기도 하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향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을 통해 노후 소득보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다층연금체계다. 90년대 국민연금과 같은 부과방식 공적연금을 공격하면서 국제금융기구들이 내건 대안이기도 하다. '미래세대 부담', '소득 역진적', '재정수지 불균형' 등 동원하는 낡은 논리도 판박이다. 마치 중층적인 두터운 보장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실제 국제금융기구들의 적립방식 사적연금을 중심으로 하는 전략은 실패했다. 연금의 다층화는 곧 노후에 대한 계층화로 이어진다. 제도 자체의 특성과 한계상, 국민연금의 역할을 대체할 순 없다.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에 대한 막연하고 과도한 기대는 국민연금의 소득보장 강화를 막기 위한 명분용일 뿐이다.

'명목 소득대체율 상향'을 막기 위해 '실질 소득대체율 상향'과 대립시키는 주장도 황당하지만, 이번 5차 재정계산위원회에서 소득보장 방안으로 제시한 ▲크레딧 개선 및 사전지원방식으로 변경(첫째 아이부터 12개월, 군복무 전 기간) ▲보험료 지원 확대 ▲특수형태근로자의 사업장 가입 확대 ▲유족·장애연금 지급률 60%로 확대 등은 이미 지난 3차와 4차에서도 필요하다고 제시됐으나 10년 넘게 방치해 왔던 의제들이다. 이번에도 구색 맞추기용에 그치지 않을까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공포 마케팅과 선동의 연금정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부추겨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 한국연금학회장은 지난 2021년 6월 한 학술대회 발표 자료에서 국민연금을 다단계 금융 사기인 폰지게임에 빗댔다. 한국연금학회는 민간보험사와 자산운용사가 기관 회원으로 대거 포진해 있고, 323개 자산운용사를 회원사로 둔 금융투자협회의 금융투자교육원에 사무국을 두고 있다. 김용하 위원장을 포함해 역대 3명의 한국연금학회장이 이번 재정계산위원회에 참여했다. '90년대생은 국민연금 못 받는다'라고 주장한 한국경제연구원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산하 기관이다. '위기', '파산', '시한부', '줄도산' 등 자극적인 선동들이 연일 경제일간지와 보수언론에 오르내리며 국민연금 개악을 부추기고 있다.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과 불안한 노후의 빈틈으로 사적연금 시장 규모는 약 664조 원(21년 기준)까지 쌓이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정부는 사적연금 시장을 활성화하겠다며 올해 사적연금에 대한 세제 혜택을 확대했다. 연금저축상품 등 사적연금 가입자는 전년도 대비 16.7%가 증가했는데, 특히 20대는 36만 7천 명에서 62만 3천 명으로 증가했다(금융감독원 2022년). 한국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23년 7월) 만 18세~39세 청년이 국민연금은 미래세대에 불리한 제도라고 응답했고, 지금까지 낸 돈 돌려받고 탈퇴하고 싶다는 응답도 52%를 차지했다(한국리서치 23년 7월).

제도적 금융화, 정치적 민영화

"공무원도, 기초연금 수급자도 아닌 프랑스인은 무조건 연금저축에 가입해야 한다. 그래야 생애주기 동안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할 것이다". 얼마 전 프랑스 연금개혁 과정에서 한 민간보험사(스코르) 임원이 했던 말이다. 프랑스 연금개혁 논쟁 역시 수급연령 2세 상향을 둘러싸고 벌어졌지만,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보면 전통적인 부과방식 공적연금에서 적립방식 사적연금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는 금융화 과정이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국민연금을 탈퇴하자는 목소리가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자본의 이익에 우리의 노후를 맡길 것인가. 이대로 각자도생의 사회로 갈 것인가. 한국의 연금개혁 논쟁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셈이며, 이번 연금개혁에 따라 우리의 노후가 달라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이재훈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이 작성했습니다.


태그:#국민연금, #참여연대, #연금정치, #연금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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