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일(현지 시각) 독일월드컵 프랑스전에서 동점골을 넣은 한국의 박지성 선수가 환호하고 있다.
ⓒ AP 연합뉴스

프랑스 진영에서 설기현이 오른쪽 측면 돌파를 시도한다. 수비수를 제치고 골문을 향해 길게 크로스를 한다. 조재진이 기다렸다는 듯 골문 옆에서 헤딩을 한다. 공이 박지성의 오른발에 닿는다. 순간 나는 온몸에 전율을 느낀다. 아~. 이어지는 귀를 째는 함성.

"골인!"

후반 36분만이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동점골이 나왔다. 럭키 세븐, 백넘버 7번의 박지성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길길이 날뛰며 소리를 질렀다. 아내가 놀라서 거실로 뛰어나온다. 나는 아내를 얼싸안았다. 아내도 눈치를 챘는지 나와 함께 소리를 지른다. 나는 창밖을 본다. 이미 어둠은 걷혀 있었다. 아침 햇살이 눈부셨다.

나는 어제 일부러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좀 더 맑은 정신으로 프랑스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자꾸만 악몽을 꾸었다. 한국이 프랑스에 0-2로 지는 꿈이었다. 일어나니 새벽 3시 50분이었다. 텔레비전을 켰다. 의전행사가 끝나고 프랑스 킥으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출발이 산뜻하다. 한국 선수들의 대인방어가 좋다. 전반 3분 프랑스의 코너킥이다. 이운재가 펀칭으로 잘 막아낸다. 프랑스의 파상공세는 계속된다. 한국은 어떻게든 초반실점을 막아야한다. 김동진이 한국 진영에서 길게 볼을 걷어낸다. 프랑스는 빠른 공 돌림으로 한국 수비수를 교란한다.

윌토르가 앙리에게 스루 패스를 한다. 앙리의 움직임이 민첩하다. 한국 수비수가 당황한다. 김동진, 김영철, 최진철이 앙리를 놓친다. 순간 앙리의 슛이 터지고, 골인. 전반 9분만이었다. 이후 한국선수들의 플레이는 무기력하기만 했다. 이호와 김동진이 11분과 29분에 연속 경고를 받는다.

차범근 해설위원은 사람을 잘 막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프랑스에 절대 주눅 들지 말라는 말까지 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 한국 선수들이 내세울 수 있는 건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뿐이다. 기술로는 도저히 프랑스를 이길 수 없다. 불굴의 투혼으로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 선수들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마치 동네축구를 보는 것 같다. 공격은 실종됐고 수비하기에 급급하다. 전반 32분에는 또 한 번의 실점 위기를 맞기도 했다. 비에라의 헤딩슛을 이운재가 가까스로 손바닥으로 막아낸 것이다.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전반 내내 한국은 프랑스에 끌려 다녔다. 기록이 이를 잘 말해준다. 한국은 슈팅수에서 절대적으로 밀렸다. 프랑스가 9개인 반면 한국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코너킥도 프랑스가 3개, 한국이 1개였다. 부끄러웠다. 아니 자존심까지 상했다.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나는 한국식 플레이를 기대했다. 질 때 지더라도 최선을 다하라고 했다. 제발 몸을 움츠리지 말고 과감하게 맞서 싸우라고 주문했다. 선수는 항상 움직여야한다. 어떻게든 찬스를 만들어야 한다.

0-1이란 스코어는 양팀 모두에 부담을 주는 수치다. 한국은 한 골 더 먹으면 싸울 의지를 상실하고 만다. 반면에 프랑스가 한 골 먹으면 굉장한 심리적 부담을 느낀다.

다행히 후반 들어 한국의 플레이가 살아난다. 특히 이영표의 활약이 눈부시다. 후반 9분에 이천수의 프리킥을 김동진이 헤딩슛을 한다. 약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프랑스의 날카로움이 떨어진다. 역시 노쇠한 프랑스다. 체력에 부담을 느낀다.

후반 27분에 이천수가 빠지고 안정환이 들어간다. 막연하지만 어떤 희망 같은 게 보인다. 역전 동점골에 대한 기대가 스멀스멀 꿈틀거린다. 차범근 해설위원의 말처럼 축구의 묘미는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데 있다. 프랑스가 결코 넘지 못할 산은 아니다. 얼마든지 프랑스를 제압할 수 있다.

시간이 갈수록 한국의 플레이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투지 넘치는 경기가 계속된다. 마침내 후반 35분에 극적인 순간이 펼쳐진다. 설기현이 오른쪽 측면에서 길게 크로스하고 조재진의 머리에 닿은 공이 문전에 떨어지고 박지성이 가볍게 밀어 넣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동점골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한국은 프랑스와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외신들은 일제히 '한국의 영웅적인 무승부'라고 긴급 타전했다. 그러나 내용면에서는 썩 좋은 경기가 아니었다. 전반전은 내내 고전했고 후반전도 세련된 플레이를 펼치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식 플레이가 살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보다 한 수 아래인 개인기를 한국은 체력과 조직력으로 극복했다. 이제 한국은 스위스와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어려운 경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체력과 조직력을 극대화한다면 얼마든지 승산은 있다.

오늘(19일) 한국은 16강을 향한 8부 능선을 넘었다. 나는 한국의 투혼을 계속해서 보고 싶다. 늙은 수탉 프랑스의 기를 꺾은 것처럼 스위스의 젊은 패기도 잠재웠으면 좋겠다. 나는 16강이 아닌 8강도 보고 싶다. 대~한민국, 아자!
2006-06-19 08:04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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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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