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스위스와의 경기를 보지 않았다. 자기만 보면 한국이 진다는 것이다. 아내가 일어나자마자 내게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졌소."

나는 힘없이 말했다.

한국은 스위스에 패했다. 오프사이드 때문이라고 했다. 후반 32분이었다. 부심은 오프사이드를 알리는 깃발을 들었다. 부심의 깃발을 보고 한국 선수들은 동작을 멈추었다. 그러나 경기는 그대로 진행되었다. 스위스 선수의 슈팅에 이운재가 황급히 움직였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골!

나는 먹다 만 맥주 깡통을 찌그러트렸다. 우지직 소리가 났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깡통을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럴 수는 없다. 심판은 공정해야 한다. 심판은 선수들이 스포츠맨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한다. 그런데 심판이 경기를 흐트려놓고 말았다.

나는 경기 직전 모습을 떠올린다. 스위스 국가연주에 이어 우리 애국가가 연주된다. 선수들이 모두 가슴에 손을 얹었다. 선수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운재가 눈을 감고 중얼거린다. 승리를 염원하는 주문 같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내 가슴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전반전이 시작되었다. 스위스 골이다. 예상대로 경기는 치열하다. 한국수비가 불안하다. 번번이 스위스 공격에 수비가 뚫린다. 나는 경기를 보면서 수시로 채널을 돌린다. KBS1에서는 프랑스-토고 전을 중계하고 있다. 다행히 양 팀은 아직 0-0이다.

나는 다시 한국 경기로 채널을 돌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하필 그때 골이 터지고 만다. 전반 23분, 스위스의 센데로스가 헤딩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한국이 반격에 나서지만 여의치 않다. 스위스의 촘촘한 수비에 번번이 걸린다.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나는 한국 선수들의 선전을 기대했다. 얼마든지 만회골을 뽑아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할까? 가슴이 떨린다. 마치 내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느낌이다. 그럴수록 내 손가락은 빨라지기 시작한다. 프랑스-토고 전으로 자꾸만 채널을 돌린다.

토고가 프랑스에 승리하거나 비기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후반 10분, 안타깝게도 선취골이 터졌다. 프랑스의 비에라다.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럴수록 더욱 열심히 토고를 응원했다. 그러나 모두 헛된 일이었다. 후반 16분, 앙리가 추가골을 터뜨렸다.

나는 다시 한국 경기에 집중했다. 후반 30분을 넘어서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은 종료 15분을 남기고 무서운 집중력을 보였다. 펄펄 나는 체력으로 역전의 명승부를 연출했다. 나도 간절하게 역전을 기대했다. 그런데 그렇지를 못했다.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한국의 골은 나오지 않았다.

만일 오프사이드 논란이 없었다면 경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필경 우리 선수들이 투혼을 발휘했을 것이다. 어쩌면 역전을 이끌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억울한 경기였다. 하지만 어찌할 것인가. 이미 경기는 끝났다.

한국은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한국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토고 전에서 감격의 역전승을 거두었다. 월드컵 원정경기 사상 첫 승이었다. 강호 프랑스와는 1-1로 비겼다. 감독과 선수들이 쏟아낸 피와 땀과 눈물의 결과였다.

한국축구는 이번 월드컵에서 선전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더욱 노력하면 세계 축구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믿음으로 2010년 월드컵을 기다릴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은 아프다. 쓰리다. 나는 멍하니 베란다 밖을 쳐다보았다. '나도 어지간히 축구를 좋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보,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아내가 나를 위로한다. 나는 식탁에 앉았다.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유리잔에 소주를 따랐다. 냅다 들이켰다. 그래도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어디 나뿐이겠는가. 한국 사람이라면 모두 나처럼 슬퍼할 것이다. 그래도 잊지 말아야겠다. 감독과 선수들에게 고생했다는 말만은 꼭 해줘야겠다.

"아드보카트 감독님 그리고 선수들,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나는 당신들이 자랑스럽습니다."
2006-06-24 12:56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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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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