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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르키즈의 유목민 전통가옥 앞에서 공연을 하는 악사들과 춤꾼즐
ⓒ 김영조
키르키즈스탄, 나는 그곳이 어딘지도 몰랐다.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은 많이 들어봤지만 카자흐스탄과 나란히 있다는 키르키즈스탄은 어떤 나라일까?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키즈스탄, 모두 “스탄‘이 뒤에 붙었다. “스탄”은 “~의 땅”이란 뜻이다. 바꿔 말하면 키르키즈스탄은 ’키르키즈 사람들의 땅‘이란 뜻일 게다. 키르기즈의 어원은 "40의 민족" 또는 "40인의 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정식 나라 이름은 “키르기즈공화국(KYRGYZ REPUBLIC)”으로 서울은 인구 60만의 비쉬켁(Bishkek)이며, 중앙아시아대륙의 중앙부에 있다.

이 나라 땅넓이는 한반도보다 조금 작은 19만 8천 제곱킬로미터인데 땅의 대부분은 천산산맥과 그 지맥인 아라타우산맥으로 이루어진 산악국가이며, 전체 80% 이상이 해발 1500미터 이상으로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전체 인구는 500여 만 명이며, 80여개의 다민족 국가인데 몽고반점이 있을 정도로 우리와 많이 닮은 키르기즈인이 64.9%로 대다수이고 , 러시아인, 우즈벡인, 우크라이나인에 이어 2만 5천여 명의 고려인이 5번째를 점하고 있다. 이렇게 다민족 국가가 된 것은 비단길(실크로드)의 길목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 때문일 것이라고들 말한다.

▲ 카자흐스탄과 키르키즈스탄 사이의 국경(긴 시간의 입국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 김영조
공용어는 키르기즈어와 러시아어이며, 종교는 회교(75%)와 러시아정교(20%)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키르키즈스탄의 화폐는 솜(Som)인데 1솜 현재 환율은 24.39원(5월 19일 현재)이다.

비쉬켁과 서울의 시차는 3시간으로 현재 키르키즈스탄 주재 대사관이나 영사관은 없으며, 한-키르키즈스탄 친선협회의 노력으로 오는 7월 이전에 개설할 예정이다. 키르키즈스탄의 한국공관으로는 2001년 개원한 비쉬켁 한국어교육원이 유일하다. 그래서 방문자들은 카자흐스탄 대사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4월 30일 늦은 4시 30분 에어아스타나 항공편으로 인천공항을 출발했다. 3시간 45분 만에 알마티 공항에 내린 우리는 주 카자흐스탄 김일수 대사의 영접을 받았다. 키르키즈스탄은 현재 직항편이 없어 카자흐스탄 알마티 공항에 내려 다시 비쉬켁편으로 갈아타거나 육로로 국경을 넘어야 한다. 우리는 다시 4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육로로 이동한다.

국경에서 우리에겐 장시간의 입국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소련이 무너져 독립하기 전까지 사회주의 국가였고, 그에 익숙해진 공무원들은 아직도 자기 할 일 다고, 구경할 것 다하면서 일은 한다던데 역시나 입국절차는 인내의 긴 시간이다. 한 일행이 사진을 찍자 삭제할 것을 요구하고 확인까지 한다.

국경을 통과한 30여분 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호텔(hotel Ak-Keme)로 들어가 잠을 잔 뒤 아침에 아침밥을 먹기 위해 호텔 식당에 내려갔다. 식당엔 뷔페식으로 차려진 갖가지 음식이 있다. 빵 종류만 20여 가지, 고기 15가지, 콘 플레이트 5가지, 과일과 건과일 20가지, 커피 등 음료수 10 여 가지기 준비돼 있다. 입맛이 까다로운 나 같은 사람에게도 무리가 없는 차림이다.

▲ 청각장애아들의 고아원 방문(박찬석 협회장이 대형냉장고를 기증했다./위, 고아들의 전통춤 공연)
ⓒ 김영조
비쉬켁에서의 첫날 아침 우리는 특별한 방문으로 키르키즈의 시작을 열었다. 그것은 350명의 청각장애 어린이를 수용하고 있다는 고아원(Школа-интернат глухих детей) 방문이다. 보통 다른 나라의 친선사절단이나 산업시찰 등도 흔히 골프 등 호화 외유를 즐겨 말썽이 일곤 했던 것에 비하면 참 의미있는 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아원에 들어가자 많은 청각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관계자들이 반갑게 맞았다. 이곳에 한-키르키즈스탄 친선협회는 대형 냉장고 두 대를 선물했다. 모자라는 시설의 고아원에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며 고아원장이 인사말을 했다. 일행은 시설을 들러보고, 청각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전통공연을 본 뒤 자리를 떴다.

이후 식당에 가서 키르키즈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처음 수프가 나왔는데 쌀, 고기, 채소 따위가 들어있는 음식으로 이름은 하르초(Харчо)라나? 또 샤슬릭(Шашлык)이란 이름의 양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따위로 만든 꼬치구이도 있었고, 면으로 되어 스파게티와 비슷한 라그만(Лагман)이란 음식도 나왔다.

▲ 카르키즈의 음식들(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하르초, 양고기 찌개, 양고기의 일종으로 가운데 노란색은 비게덩어리, 라그만)
ⓒ 김영조
우리의 볶음밥이랑 비슷하게 생긴 요리는 플로브(Плов)란다. 하지만, 키르기즈의 주식은 빵인데 그 중 하나는 리뼈쉬카(Лепешка)란 이름의 동그란 모양의 빵이다. 입이 까다로운 나로서는 외국 여행에서 식사가 걱정스러운 것인데 키르키즈의 식사는 거부감이 들지 않는 정도로 먹을 만한 음식이었다. 일행들은 대부분 입맛에 맞는다는 평가를 한다.

식사 뒤 국립공원인 ‘알라아르차(Ала-Арча)‘ 협곡으로 이동했다. 가는 도중 끝없이 펼쳐진 가로수 사이로 멀리 설산이 보인다. 그런데 가깝게 보이던 설산은 가면 갈수록 점점 멀어지니 이게 무슨 조화인가? 길가엔 잘 가꾸어진 골프장처럼 풀밭으로 이루어진 끝없는 작은 산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곳엔 말, 양, 소들을 방목하고 있다.

버스로 길을 다니면서 느낀 것은 카자흐스탄에 비하면 아직 개발이 안 되었다는 점이다. 카자흐스탄은 포장이 깨끗이 된 반면 국경을 넘으면 바로 도로 곳곳이 패여 있고, 도심지를 빼고는 차선도 없다. 개발이 안 됐다는 것은 한국 기업이 투자하기에 좋을 수도 있다고들 말한다. 길에는 화려하게 그려진 광고판과 펼침막들이 널려 있다.

어쩌다 소떼들이 길을 건너면 다 건널 때까지 차들은 기다린다. 길가에 소녀들이나 아이들이 횡단보도가 없는 길을 건너기 위해 서있거나 차를 얻어 타기 위해 손을 흔든다. 우리나라의 국도에서 보는 것처럼 여기도 길가 곳곳에 과일을 파는 노점도 보인다. 키르키즈의 길에 돋보이는 것은 차도와 인도 사이에 폭이 10미터 정도의 녹지공간이 있다. 땅이 넓어 가능했겠지만 환경과 안전을 생각하는 마음일 것이다.

▲ 알라아르차 협곡으로 가면서 내내 보였던 설산(처음엔 가깝게 보였던 설산이 무슨 조화인지 다가가면 갈수록 달아나고 있다.)
ⓒ 김영조
‘알라아르차’ 협곡에 가 산장식 호텔에 여장을 푼 뒤 전통공연을 한다는 유르타에 가기 위해 나지막한 산길을 걷는다.

이 여행에 현지인 전문 사진사가 따라붙었는데 그의 사진기는 디지털 카메라 중 고가에 속하는 캐논 이오에스(EOS)-1이다. 그는 내가 가진 보급형 기기 350-디(D)를 보고 좋은 카메라라며 엄지를 내민다. 마음을 통하고 싶은 그의 마음이리라. 그는 길가에 검은 양 한 마리가 있는 것을 보고 자신도 찍고 나도 사진을 찍어 준다.

한참을 올라가니 유목민들의 전통가옥 ‘유르타’가 있다. 그 앞에서 전통식으로 양을 잡는다고 한다. 회교식 절차를 가진 다음 여행사 안내원인 한 청년이 단도로 양의 목을 단숨에 찔러 피를 받는다. 나는 한참을 그 전통문화를 사진을 찍으려 여념이 없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말타기에 빠져 있다.

양을 잡는 의식이 끝난 뒤 국립국어원 이상규 원장님, 박찬석 국회의원님과 함께 나지막한 곳까지 오른다. 여러 가지 얘기에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가다가 갑자기 한 아리따운 여성이 내 팔을 붙든다. 옷이 독특하고 예쁘다며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 박의원님은 내게 키르키즈 아가씨에게 찍혔다며 놀려댄다. 우리의 한복은 역시 외국인에게 더 인정받는 모양이다.

▲ 유르타 안에서의 전통공연(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남자가수의 노래, 전통춤, 관악기 연주, 코무즈 등 현악기와 타악기 연주)
ⓒ 김영조
유르타 안에서 키르키즈스탄 전통 음악과 춤을 구경한다. 처음보는 생소한 듯한 문화에 잠시 머뭇거리다 그 곳에 빠져든다. 역시 순수한 전통예술은 언어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통하는 것인가 보다. 5인조 악단 '캄바르칸(Камбаркан)'이 연주하고 노래하는 음악은 애조 띤 느낌과 함께 청아한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코무즈(комуз)라고 하는 3현으로 되어 있는 기타와 비스한 악기와 관악기, 타악기도 같이 연주한다.

여악사가 노래를 감칠맛 나게 불러 인기를 한몸에 얻는다. 잠시 뒤 체격이 당당한 남자 가수가 등장하는데 파파로티의 성량과 음색으로 전통민요와 이탈리아 가곡 ‘오솔레미오’를 불러 기립박수를 받았다. 전통춤은 약간은 인도풍을 느낄 수 있고, 또 한편으로 아랍의 냄새가 풍긴다. 우리는 조금 전에 회교 의식을 치르고 잡은 양고기를 다양하게 맛본다.

다음날 우리는 우라늄공장을 방문했으며, 키르키즈 수상 면담, 외무장관 만남이 있었고, 비쉬켁인문대학교와 국립국어원 사이에 세종대학 협약식이 있었다. 이날 저녁 국립국어원이 주최하는 만찬이 있었는데 이 자리엔 비쉬켁인문대학교 무사에프 압딜다 총장과 동양학부장, 한국어교육원 조영식 원장 등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무사에프 압딜다 총장은 키르키즈의 풍습대로 물잔에 여러 가지 음식을 넣어 노래를 부르지 못하면 먹어야 한다는 ‘노래잔’ 벌칙을 내놔 많은 이들이 벌칙을 받지 않으려 노래를 주고받았는데 여기서도 역시 애잔한 키르키즈의 민요를 들을 수 있었다. 얼굴과 생각이 비슷한 탓인지 참석자들은 그 자리에서 진한 우정을 느꼈다고들 말한다.

▲ 알라아르차 협곡(한참을 낮으막하게 이어져 있는데 침엽수의 나무도 듬성듬성하여 비가 많지 않은 건조지대임을 느끼게 한다. 뒤에는 설산도 보인다)
ⓒ 김영조
참석자 중엔 수상 면담할 때 안내를 맡았던 내무부 공무원도 참석하여 내 옆 자리에 앉았다. 토막 영어로 대화를 했지만 현지 전문 사진가와의 대화처럼 어느 정도 말이 통한다. 내가 영어를 못하지만 서로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어 소통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다. 김치를 먹느냐는 나의 물음에 그는 물론 김치를 먹으며, 비빔밥을 무척 좋아한다고 말한다.

빡빡한 일정을 끝낸 우리는 5월 4일 카자흐스탄으로 이동했다. 들어갈 땐 밤이어서 보지 못했던 길옆에는 목초가 뒤덮인 끝없는 구릉지가 보이고, 길은 일직선으로 지평선까지 뻗어 있다. 한 일행은 그대로 골프를 치면 골프장으로 둔갑하겠다고 말한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도착하여 한국식당에서 주 카자흐스탄 김일수 대사와 함께 식사를 한다. 식사 뒤 알마티 상가를 돌아보았다. 가다가 한 일행이 용변을 봐야겠다며, 한 커피숍으로 들어간다. 말이 통하지 않아 곤혹스럽다. 용변을 본 다음 미안하다며 커피를 주문하니 텐게(tenge:카자흐스탄 화폐) 외에는 받지 않는다며 옥신각신하다가 사장과 통화한 다음에야 겨우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 카자흐스탄 알마티 거리 풍경(코리안 레스토랑에는 카자흐인들이 한국음식을 먹고 있는데 한국 소주도 보였다/위, 거리엔 엘지의 화려한 광고판이 버티고 있다)
ⓒ 김영조
서울의 인사동과 비슷한 길거리가 있다고 해서 돌아다녀 보았지만 인사동보다는 대학로와 약간 닮았고, 그것도 대학로의 활기에는 미치지 못했다. 경찰로 보이는 제복을 입은 사람이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한다. 일반 길거리가 무슨 촬영금지 구역인가? 몇 가지 전통상품을 샀지만 나는 키르키즈와 카자흐스탄의 민속을 살필 수 있는 시장과 천혜의 관광지라는 이식쿨호수를 보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쉬웠다.

아직 발전을 하지 못한 키르키즈엔 지난 한 해 동안 중국, 일본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투자를 했다는데 키르키즈 사람들은 이들 나라들이 제국주의라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국은 같은 몽고반점의 나라이고, 다른 나라를 침략할 걱정이 없는 나라라며, 많은 투자를 기대하고 있었다. 또 현지 고려인들이 국회의원 등 고위직에 많이 진출하여 인정을 받고 있는 점도 좋은 점수를 받는 요인이었다.

키르키즈엔 아름답고 따뜻한 문화가 있었다. 그리고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어서 방문하기에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감으면 아직도 키르키즈스탄의 풍경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또 언제 가볼 것인지?

도움 : 김진아 / 경희대 대학원 마케팅 전공 석사 과정, 키르키즈 출신 고려인 3세이며, 재외동포 재단 장학생으로 한국에 유학 중, 이번 여행에 안내와 통역을 맡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대자보, 다음, 문화저널21, 수도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키르키즈스탄, #한-키르키즈스탄 친선협회, #중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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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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