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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상봉 가는 길
ⓒ 김동주
5월 24일 새벽 4시 30분, 나는 소리 죽여 쌀을 씻고 있었다. 어느새 남편이 부엌으로 나와서 도시락 반찬을 만들었다. 배낭에 준비물을 다 챙기고 났는데도 짬이 났다. 약속 장소까지 데려다주겠다는 남편은 아이 곁으로 가서 눕더니 그새 잠들었다. 소리가 나지 않게 집 현관문을 닫았는데 스스로 잠기는 디지털 자물쇠 소리는 컸다.

군산에서 이희복 선생님 부부, 류용희 선생님, 나이가 믿기지 않는 '활력 사모님'이랑 6시에 출발했다. 남원 의료원에서 아침 8시에 당직이 끝나는 동주 선생님을 기다렸다가 거창으로 갔다. 거창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거창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산 중에는 비계산, 의상봉 종주 코스가 있다. 이 산들은 수도지맥의 일부이며 우리가 오를 산이다.

비계산(높이 1126m)은 능선이 날카롭게 사방으로 뻗어서 한 눈에 봐도 급경사인 걸 알 수 있다. 거창과 합천에 걸쳐 있는데 산세가 닭이 날개를 벌리고 날아가는 것처럼 보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내가 통닭집 사장님 같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인지, 닭 날개가 어디쯤이라고 단박에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닭이 담장에서 뛰어내릴 때 얼마나 오두방정을 떠는지는 알고 있다. 날개가 없는 고양이도 사뿐사뿐 내려앉는데 닭은 푸덕푸덕 내려앉는다. 나는 비계산을 오를 때 딱 닭 신세였다. 급경사로만 2시간 가까이 올라가는 동안 다리는 있으나 걷는 기능은 퇴화한 듯 했다. 같이 온 선생님들은 가끔씩 저 편에서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 비계산
ⓒ 배지영
뒤처져서 혼자 걷는 산도 좋았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볕은 반짝반짝 거렸다. 땅을 밟는 감촉도 좋았다. 원래 일기예보에서는 비와 천둥, 돌풍이 동반한다고 했다. 그러나 전국의 부처님들은 절집을 찾는 불자들이 비에 젖어 눅눅해할까 봐 자연의 흐름에 맞서고 계시는 것 같았다. '부처님 오신 날'에는 배짱을 부려도 괜찮은 모양이었다.

산을 오르는 처음 1시간 정도는 굉장히 힘들었다. 그 때는 마음에 기대서 가야 한다. 그러면 숨어 있던 어떤 힘이 일어난다. 나는 달라진다. 물 한 모금, 감겨오는 바람 한 줌도 기쁘게 생각할 줄 아는 마법이 찾아온다. 정수기에서 찬물 더운물이 쏟아지는 산 아래 집에 살면서 투덜대던 나는 작아지다가 사라진다.

▲ "레디, 액션!", 일부러 찍은 연출 사진이다.
ⓒ 김동주
비계산 꼭대기에 오르니 같이 온 선생님들은 "레디, 액션!" 하며 영화를 찍고 있었다. 우리는 광어회를 얼음에 재워서 스티로폼 박스에 가져왔다. 배낭에 들어가지 않는 사각형의 짐짝을 옮기는 방법은 지게가 가장 알맞지만 구할 수 없어서 배낭 위에 얹어서 왔다. 한 사람씩 광어회가 든 짐을 짊어지고, 그 뒤에 '지나가는 사람 1과 2'까지 정해서 사진으로 남겼다.

어떤 사람들과는 몇 년을 만나도 거리를 유지하며 편리한 관계로 지낸다. 그러나 나는 하는 일도 전혀 다르고, 나이도 여섯에서 열다섯 많은 선생님들 앞에서 망가진 적도 많다. 어금니에 임플란트를 하느라 술을 먹지 못해서 '비인기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까분다. 사람은 누구와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본성이 드러나기도 하고, 움츠러들기도 한다.

▲ 산꼭대기에서 광어회를 먹는 감격을 누렸다고 모두 즐거워했다.
ⓒ 배지영
선생님들은 자연산 광어회를 감탄하며 먹었다. 내가 생선회 맛을 모르는 것처럼, 선생님들을 몰랐다면, 지리산은 성삼재에서 천왕봉이 전부인 줄 알았을 것이다. 지리산 골골의 수많은 암자, 280mm 폭우가 쏟아진 날의 강원도 두타산, 밤새 차를 달려 사량도 지리망산 가는 배 위에서 본 일출도 내 것은 아니었을 터였다.

밥을 먹고 나서야 산이 제대로 보였다. 산세는 지리산과 설악산을 합쳐놓은 듯 했다. 그러나 하늘은 우리가 밥 먹을 때까지 기다려줬다는 듯 내려앉기 시작했다. 비계산에서 의상봉 가는 길은 설악산에 가까웠다. 돌, 굴, 바람, 너덜이 많다고 알려진 대로 암봉과 암벽이 많았다. 밧줄도 지겹게 탔다. 그게 싫어서 꾀를 내어 암벽을 타다가 하마터면 일 날 뻔했다.

ⓒ 배지영

ⓒ 배지영
원효 스님이 창건했다는 고선사로 내려왔다. 원효 스님은 지역을 가리지 않고, 나라 곳곳에 숱한 흔적을 남겨놓으셨다. 그 옛날, 길도 나지 않고, 특별한 교통수단도 발달하지 않았던 때에 천년이 넘어도 사라지지 않는 흔적을 남기고 다닌 스님은 축지법을 썼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리고 내가 아는 어떤 사람도 축지법을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주 선생님은 귀신처럼 발소리도 없이 산에 오른다. 마라톤을 할 때도 처음부터 풀코스를 달렸다. 그렇게 서너 번 달리고는 바로 춘천마라톤에서 풀코스를 3시간 3분에 완주했다. 갑자기 배가 아파 화장실에 들르지 않았다면 3시간 안에 들어왔을 것이다. 지금도 당직이 끝나는 아침 8시면, 지리산 골골을 다닌다. 축지법 신공을 쌓는 중인 것 같다.
 
내가 아는 축지법은 강물을 건너거나 산을 오를 때에 쓴다. 동주 선생님 축지법도 현대인에 걸맞게 개량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고견사에서 택시를 불러 타고 주차해놓은 차를 가지러 갔다. 비는 우리가 아침에 타고 온 차를 기다리는 동안 더 거세졌다. 우리나라 기상청의 체면을 지켜주기 위해서 폭우로 변했다.

▲ 사람은 누구와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서 본성이 드러나기도 가려지기도 한다. 사진 왼쪽부터 활력 사모님, 이화재, 이희복, 류용희, 김동주.
ⓒ 배지영

덧붙이는 글 | 5월 24일에 다녀왔습니다.


태그:#비계산, #의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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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소년의 레시피』 『남편의 레시피』 『범인은 바로 책이야』 『나는 진정한 열 살』 『내 꿈은 조퇴』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 『환상의 동네서점』 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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