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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드디어 지난 5월 26~27일에 걸쳐 다녀온 경북 의성 나들이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경북 8경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춘산면 빙계리에 있는 '빙계계곡'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산운마을을 지나 얼마나 달렸을까? 벌써 점심때가 되었는지 배가 몹시 고팠어요. 빙계계곡에 가서 점심을 먹을 생각으로 부지런히 발판을 밟았어요. 가는 길에 어김없이 오르막을 만나고 또 내리막을 신나게 내려가고 하다 보니, 어느새 빙계리에 닿았어요. 막상 마을에 들어서니, 생각보다 퍽 작은 곳이에요.

 

그래도 둘레에선 꽤 이름난 곳이니만큼 장사하는 사람도 많고, 상점도 여러 개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구멍가게와 밥집만 두어 군데 있어요. 여느 시골마을과 그리 다르지 않았어요.빙계리에 들어서자마자 마을 앞으로 내가 흐르는데 여기가 바로 '빙계계곡'이에요. 밥을 먹고 올라갈까 하다가 '예까지 왔는데, 저 위에도 밥집이 따로 있겠지'하며 구경을 다한 뒤에 먹기로 했지요.들머리에 표 파는 곳이 있는데, 안내 글을 보니 7~8월 두 달은 입장료를 받더군요. 아마 여름철에는 시원한 곳을 찾아오는 사람이 많은 가 봐요.

 

우리는 다행히(?) 한 달 앞서 왔으니 돈을 내지 않고도 멋진 구경을 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골짜기 안에는 한 식구로 보이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앉아 있어요. 조금 더 올라가니 골짜기 가운데에 크고 작은 바위들이 꽤 많아요. 날이 워낙 가물어서 물이 많지는 않았지만 여름 장마가 지나가고 나면 참으로 멋지겠구나 싶었답니다. 그늘에 앉아서 바위 사이로 콸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면 무더운 한여름 더위도 저절로 가실듯해요.

 

우와! 신기하다. 찬 바람이 쌩쌩~

 

크고 희한하게 생긴 바위를 구경하면서 올라가는데, 남편이 뒤따라오지 않아 돌아보니 내려오라고 손짓을 해요. 무슨 일인가 싶어 내려갔더니,"이리 와봐, 여기 서봐.""응? 왜? 거기 뭐가 있는데…."

 

그저 군데군데 바위가 있고 나무와 잡풀뿐인데 뭐가 남다른 게 있다고 그러지? 하면서 잠자코 가리키는 곳에 가서 섰어요.

 

"엥? 뭐야? 여기 왜 이렇게 시원해?""시원하지. 거기 손대 봐."

 

나는 놀라서 바위틈에 가만히 손을 내밀었어요.

 

"우와! 여기 뭔데 이렇게 찬 바람이 나와?"

 

희한했어요. 둘레와 다를 바 없는데 바위틈에서 시원한 바람이 나와요.

 

"여기가 얼음골 같은 곳인 가봐.""아, 그렇구나! 한여름에도 들어가면 얼음처럼 시원하다고 하던데, 여기도 그런 곳인가 봐. 우와 신기하다."

 

그렇지 않아도 자전거를 타면서 왔기에 꽤 후텁지근했는데 잠깐 사이에 땀도 식고 몸이 시원했어요.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여기뿐 아니라 올라가는 내내 크든 작든 바위틈만 있으면 어김없이 시원한 바람이 나와요.

 

"여기 한여름에 오면 진짜 시원하겠다. 이 앞에 자리 깔고 앉아 있으면 더위는 하나도 모르고 지내겠는걸!"

 

이젠 길 왼쪽만 보고 가요. 아까처럼 또 놓칠까 봐 매우 눈여겨보면서 갔어요.바로 이 산은 '빙산'이라고 하는데, 여름엔 얼음이 얼고 겨울엔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곳이래요. 또 이 산을 감돌아 흐르는 내를 '빙계'라고 하고요. 여기 빙산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 소개할게요. 춘원 이광수 선생이 쓴 소설 <원효대사>에 나오는 한 대목인데요. 안내판에 짧게 소개해놓기도 했어요.

 

"아바아(여보)!" 하고 부르니, 마치 큰 쇠북소리 같더라

 

빙산은 해골바가지에 괸 물을 마신 뒤, '모든 것은 내 마음먹기에 달렸다' 하는 깨달음을 얻은 원효대사가 기도한 곳이기도 합니다.

 

신라 무열왕의 둘째 딸인 요석공주가 지아비인 원효대사를 찾으러 젖먹이 아들 '설총'을 데리고 이 마을(빙계리)까지 왔대요. 그때가 바로 음력 유월 보름인 '유두'가 막 지나간 때인 무더운 여름날이었어요.마을 어귀에서 남편인 원효대사가 있는 곳을 물었더니, 빙산사 '빙혈' 속에 웬 기도하는 스님이 있다고 일러주었어요. 그러면서,"빙혈을 지나면 찬바람이 쌩쌩 불어나오는 풍혈이 있는데 얼마나 깊은지는 아는 사람이 없소. 그 끝이 저승까지 닿았다고도 하지요" 하고 말해주었어요.요석공주는 좁은 굴속을 더듬거리며 기어들어갔는데, 차츰 추워지고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어요. 얼마를 더 들어가 굴이 넓어지자 크게 소리쳐 남편을 불렀어요."아바아(여보)!" 하고 부르니, 굴속이 웅 하고 울리는데 마치 큰 쇠북이 울릴 때 나는 소리와 같았대요.

 

이 이야기에 따르면, 이곳 '빙계계곡'은 먼 옛날 아주 큰 동굴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큰 지진이 나는 바람에 동굴이 무너지면서 지금처럼 바람구멍(풍혈), 얼음구멍(빙혈)이 좁아졌다고 하네요.

 

이윽고 골짜기를 따라 끄트머리에 닿으니, 빙혈과 풍혈을 따로 볼 수 있어요. 풍혈은 바위틈에 있는 바람구멍 앞에 따로 돌로 쌓아 만든 곳인데, 마침 그 안에서 청년 서너 사람이 큰 소리로 웃으면서 시원하다고 해요.바로 앞에 있는 '빙혈'에 들어갔어요. 안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얼음 창고에 들어온 것처럼 온몸에 서늘함이 감돌아요. 캄캄해서 안을 자세히 볼 수 없어 사진기 불빛을 터뜨리며 보니, 벽 안쪽에 물방울이 방울방울 맺혀있어요. 만져보니 매우 차가워요.여기 빙혈과 풍혈은 평균 온도가 여름엔 영하 4도, 겨울엔 영상 3도래요. 그러니 아무 때나 찾아와도 좋겠지요.

 

빙산사 절터에 아픔으로 남아...

 

빙혈 앞에는 오층 석탑이 있어요. 본디 여기는 통일신라 때, '빙산사'라는 절터라고 합니다. 그런데 조선 태종6년(1406)에 왕명으로 이 절을 없앴다고 해요. 지금은 절터라는 걸 알 수 있는 흔적만 남아 있는데, 이 탑도 아마 그때 많이 부서졌을 거라 여겨져요. 그래서인지 겉으로 봐도 모서리가 모나고 깨진 흔적이 보여요.

 

석탑 모양이 빙계계곡에 오기에 앞서 보았던 '탑리오층석탑(국보77호)'과 매우 닮았는데, 아마 좋은 본보기가 되어 이런 모양으로 비슷하게 만들었나 봐요. 지금 '빙산사터 오층석탑'은 지난 1973년에 모두 해체하고 다시 복원했는데, 그때에 3층 지붕 돌 속에서 '금동사리장치'를 찾아내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옛날에 감실 안에는 금동불상이 하나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에 왜군이 훔쳐가고 받침대(대좌)만 남아있어 빙혈 앞에 보존하고 있어요.

 

빙계계곡 둘레를 모두 돌아보고 밥집을 찾다가 또다시 발길을 멈추었어요.우리가 아주 좋아하는 풍경인데요. 아니 좋아한다기보다 보면 가슴이 먹먹해져요. 빙혈을 벗어나 돌아 나오는 길에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돌담길을 끼고 빈집이 하나 있어요. 보기에도 허름하고 너무 낡아서 곧 쓰러질 듯 보이는 이 집 때문에 가슴이 뭉클했답니다.

 

의성 나들이를 모두 마치고 시원한 빙계 골짜기에서 맛난 닭백숙으로 배를 채운 뒤, 서둘러 구미로 자전거를 굴렸어요. 이틀 동안 자전거로 다니면서, 안동까지 들러 뜻밖에 권정생 선생님 사시던 집에도 가보고, 천년 역사를 지닌 고운사를 거쳐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사촌마을과 산운마을도 둘러보았지요.또, 탑리역에 들러 어릴 적 기억을 되찾아준 '통표'도 구경하고, 의성 작은 나라 조문국의 경덕왕릉에서 귀한 역사도 배웠습니다. 오늘 소개한 빙계계곡까지 쭉 돌아봤어요.

 

이틀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의성 곳곳에 숨어있는 아름다운 풍경과 소중한 우리 문화재를 돌아보며 다시 한 번 깨달았어요. 차츰 사라져가는 옛 풍경이 몹시 안타깝고, 우리 둘레에 이렇듯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무척 많이 있다는 거예요.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왠지 자꾸만 멀리 있는 곳을 찾는 사람이 많아요. 그것도 모자라 이젠 먼 나라까지 갈 생각을 해요. 하지만, 가까운 곳에도 볼거리, 배울만한 얘깃거리가 무척 많이 있다는 거예요. 또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우리 스스로 잘 보존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지금까지 자전거 타고 둘러본 의성 나들이 얘기를 들어주셔서 무척 고맙고요. 앞으로도 우리 부부가 다니면서 찾아내는 얘깃거리에 귀 기울여 주시길 부탁할게요. 자전거 나들이는 쭉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한빛이 꾸리는'우리 말' 살려쓰는 이야기가 담긴 하늘 그리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태그:#의성, #빙계계곡, #원효대사, #요석공주, #빙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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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자전거는 자전車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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