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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호롱불이 흐릿흐릿한 게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애유."

불기운이 아까와는 사뭇 달리 세질 못 해서 잔바람이라도 문틈으로 들어올 양이면 금세 꺼질 것만 같았기에 저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석유가 들어있던 대두병(大斗甁 = 한 되들이 병)을 살펴보았으나 어느새 소진된 석유는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은 터였기에 저는 조바심이 더했지요. 그러나 할머니께선 그깟 걸 가지고 뭘 소란이냐는 투로 누우신 채로 눈도 뜨지 않으시곤 타박을 하셨습니다.

"어여(어서) 일루 와서 자도록 혀(해)."

초저녁 잠이 많으신 할머니야 그렇다손 쳐도 저는 당시 국민(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관계로 학교서 내준 숙제까지 하려면 한참동안이나 호롱불이 필요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석유 좀 사 오면 안 될까유?"

그 때는 집에서 쓰는 호롱불과 주방용 곤로에 사용할 석유(등유)를 사자면 동네에 하나뿐인
석유집으로 쪼르르 달려가 됫박으로 퍼서 파는 석유를 사다 써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할머니의 대답은 일전 석유가 떨어졌을 때와 대동소이했지요.

"시방(지금) 돈이 워딨냐(어디 있냐)!"

하는 수 없어 저는 잠시 후 제 풀에 못 이겨 스르르 불길이 꺼진 호롱불의 어둠에 포로가 되어 오지 않는 잠을 애써 청하곤 했습니다.

제가 국민학교 저학년까지는 방이 달랑 하나뿐인 초가집의 누옥(漏屋)에서 할머니와 단 둘이 살았습니다. 가난했으므로 밤엔 호롱불로 밤을 밝히면서 말입니다. 그러다가 제가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에 저희집에도 오매불망했던 전깃불이 들어왔지요. 어두침침하기 짝이 없는 호롱불 아래서만 살다가 밝은 전기가 방안을 훤히 밝히자 당시의 제 기분은 마치 심봉사가 눈을 뜨곤 대명천지를 처음으로 보는 것과도 같은 그런 느낌이었지요!

하지만 전깃불이란 것도 어제(4일)같이 부시불식간의 폭우과 낙뢰 등이 요란법석일 때면 반드시(!) 전정이 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어제부터 전국에 게릴라처럼 쏟아진 폭우와 낙뢰 등이 많은 피해를 남겼습니다.

그 중의 하나로 오늘 아침부터는 인터넷도 먹통이더군요. 밤새 번개와 천둥소리가 천하를 호령했음을 기억하면서 그나마 전깃불이 안 나갔음을 자위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나저제나 인터넷이 복구되길 기다렸지요.

헌데 낙뢰피해가 그 얼마나 광범위했던지 인터넷의 복구는 저녁나절이 되어서야 겨우 숨통이 트였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루 종일 잠을 자고 일어나 배를 채우고 또 잠을 자는, 인간돼지(人豚)에 다름없는 무위도식(無爲徒食)의 게으름을 맘껏 누렸지요. 그러면서 겨우 하루동안의 인터넷 불통에도 이리 불편하거늘 인터넷은커녕 전깃불조차도 없어 호롱불 아래서 책을 읽고 장작을 패서 밥을 지어먹어야 했던 지난 시절은 과연 어찌 살았던가 싶어 새삼스럽게 과거가 호롱불의 아릿한 그림자처럼 다가왔습니다.

하여간 '삼희성'(三喜聲)이란 게 있습니다. 이는 '세 가지의 듣기 좋은 소리'란 의미인데 다듬이 소리와 글 읽는 소리, 그리고 아기의 우는 소리가 포함됩니다. 비록 지독히도 가난했으며 어두침침한 호롱불이었으되 그 결에서 이 손자의 뜯어진 옷을 바느질로 꿰매시고 다듬이질 하셨던 할머니가 오늘따라 사무치게 그리운 건 비단 우락부락한 날씨의 영향만은 아니겠지요?

덧붙이는 글 | 국정브리핑에도 송고했습니다


태그:#호롱불, #석유, #인터넷, #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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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초경서반]&[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 ▣ 月刊 [청풍] 편집위원 ▣ 대전시청 명예기자 ▣ [중도일보] 칼럼니스트 ▣ 한국해외문화협회 감사 / ▣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 수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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