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인도 사회에서 청소부라고 하면 사회에서 가장 낮은 천민계급에 속한다. 이들은 불촉천민이긴 하지만 청소부는 이 사회에서 언제나 큰일을 한다. 만일 청소부가 없다면 거리는 잠시도 깨끗할 날이 없을 것이다. (중략) 그래서 인도에서는 청소부를 '마하타르'라고 부른다. 산스크리트어로 마하타르(mahatar)는 위대한 사람을 가리키는 마하트(mahat)의 최고 높임말이다. 실제로 이들은 매우 위대한 존재이다."('성자가 된 청소부'의 일부)

 

송양섭(70·서울 노원구)씨는 암 환자 전문병원인 '한국원자력의학원'(구 원자력병원)에서 햇수로 6년째 일하는 최고령 청소부다. 암 투병과 치료의 최전선인 이 병원에서 그는 쓰레기만을 치우는 청소부가 아니라 인생길 막바지의 아름다움을 몸소 보여주는 인생 선배다.

 

오전 5시 40분가량 병원에 도착,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그는 연구동과 병동을 오가며 간밤에 쌓인 쓰레기를 수거한다. 암 투병으로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환자들이 많기에 피와 고름이 밴 쓰레기가 적지 않지만 싫은 내색을 하거나 얼굴 찌푸리는 일은 결코 없다.

 

환자들의 환경을 깨끗하게 하는 일을 월급까지 받으며 하고 있으니 감사할 뿐이다. 칠순 나이에 일을 할 수 있도록 건강을 허락받은 것도 그렇다. 그의 손을 거쳐 병동이 깨끗해지면 환자들의 마음도 환해진다. 그를 기뻐하며 반기는 병원 관계자와 환자, 가족들로 인해 토요일과 일요일도 마다하지 않고 병원으로 향한다.

 

그는 기도한다. 암 투병으로 고통을 겪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완치(完治)의 기쁨을 달라고…. 그 또한 마흔 무렵에 사경(死境)을 헤맨 적이 있기에 죽음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안다.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머리숱이 거의 없는 자식 혹은 손자 같은 환자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육신을 바꾸어줄 수 있다면 바꾸어주고 싶다.

 

여러 해 동안 그를 지켜본 최승이(45· 여· 수간호사)씨는 봉사하듯이 일하는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한다. "직원은 물론 환자와 보호자를 배려하는 모습에서 단순한 청소부가 아니라 인생을 가르치는 어른 같다는 생각을 한다"면서 "청소라는 궂은일을 기쁜 표정으로 하시는 그 모습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말한다.

 

정년퇴직 후 청소부로 제2의 인생 출발

 

그는 경기도 남양주의 한 사립중고등학교 서무과(행정실)에서 근무하다 지난 1998년 정년퇴직했다. 퇴임 후 잠시 다른 일을 하다 선택한 일자리가 원자력병원의 청소부다. 땀 흘려 일하되 남들이 꺼리는 일을 하면서 욕되지 않게 여생을 보낸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았다.

 

장로이기도 한 그는 교회나 일터에서 묵묵한 편이다. 조용한 웃음과 낮은 목소리의 칠순 청소부. 병원 직원들은 그를 여느 청소부들과는 달리 대한다. 그의 전직경력과 교회 직분을 알게 된 직원들은 예의를 갖추기도 한다. 하지만 청소부의 위치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

 

이 병원은 지난 2005년 그의 성실성을 높이 사 표창장을 수여했다. 병원 정규직원이 아닌 용역업체 비정규직원, 특히 청소부에게 표창장을 수여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병원 측은 밝혔다.

 

이 병원 시설관리팀 임정묵(49)씨는 "병원의 궂은일을 내 일처럼 하시는 어른의 모습에서 어떤 경건함마저 느낄 때가 있다"면서 "묵묵히 책임을 다하는 것이 너무 고마워 용역업체 직원임에도 표창장 상신을 하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고희 잔칫날에 시신기증 의사 밝힌 송양섭 장로

 

9월 8일은 송양섭(하름교회 장로)씨의 조촐한 고희(古稀) 잔칫날이었다. 이날도 병원에 어김없이 출근해 소임을 다한 뒤 잔치 시간에 맞춘 그는 자녀와 친지, 교인 등 100여명의 참석자들에게 시신기증 의사를 밝혔다. 고희 기념으로 수건만 선물한 것이 아니라 생명 나눔의 본을 선물한 것이다.

 

그는 일 년 전,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큰 풍파 없이 살아온 칠십 평생, 곱게 늙어가는 아내는 여전히 화사하고, 2남2녀의 자녀들은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고, 재롱 부리는 손주들은 건강하게 잘 자란다. 이 세상으로부터 받은 게 너무 많다. 하지만 돌려줄 재산도 지식도 없음에 허전했다.

 

그래서 몸을 나누며 떠나고 싶었다. 3개월 전 아내와 가족들에게 시신기증 의사를 밝혔고, 평생 반려자이자 신앙의 동역자인 아내 이애순(65· 권사)씨는 흔쾌히 동의했다. 하지만 자녀들은 아버지의 결정에 약간 당황했다.

 

막내아들 송대진(35·회사원)씨는 "꼭 그렇게 하셔야 하겠느냐고 반문했지만 아버님은 옳다고 결정하면 결코 번복하지 않으시는 분"이라며 "이제 아버님의 뜻을 존중해 사후처리 절차 등을 파악하고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듯 막내아들이 내심 반대했지만 '아버지의 눈이 좋은셔서 어떤 분이 받을지 몰라도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고 동의했다고 송양섭씨는 귀띔했다.

 

그는 30여 년 전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 학교 근무 도중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병원에 실려 간 뒤에도 출혈이 계속되는 등 사경을 헤매자 병원 측은 장례를 준비하라고 했다. 아내 이씨는 "병원에서 장례를 준비하라고 했지만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는 않았다"면서 "하늘의 도움으로 잘 살았으니 인생을 잘 마치고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표시했다.

 

그는 새벽마다 기도한다.

 

'언제 하늘이 부를지 알 수 없으니 마음 정결히 하며 욕된 것이 있었다면 용서를 구하고, 이 세상에 누를 끼친 것이 있다면 애써서 갚고 가야겠다. 하느님이 주신 몸을 소중하게 잘 사용했으니 이제 돌려드려야겠다. 죽으면 끝나는 육신, 재로 버리지 않아야겠구나! 각막은 시각장애인에게, 살은 화상 환자에게, 뼈는 필요한 환자에게 나누어주도록 해다오.'

 

인생 장막(帳幕)이 걷히는 날, 청소부였던 그는 진정한 '마하타르'로 불릴지도 모른다.

 

 

"늙은 나도 죽으면 쓸만한 것이 있을까?"

 

지난 2일 예배 드리고 나오는데 송양섭 장로가 구석으로 데리고 가더니 조용하게 물었다. 인생을 정리하고 있다는 송 장로는 보람 있는 죽음으로 인생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뜻을 넌지시 전했다.

 

"참 귀한 결정을 하셨네요. 현 상태로서는 두 사람에게 각막을 주실 수 있고, 뼈도 기증하신다면 사고를 당한 환자들이 장애의 고통을 겪지 않도록 도우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의학 연구용으로 시신기증을 하실 수도 있고요."

 

송 장로는 다행이라는 듯 만면에 웃음을 가득 지었다.

 

요즘 어르신들이 죽음 준비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늙은 나도 다른 사람을 위해 장기나 조직 기증이 가능한지?'에 대해 매우 궁금하게 여기고 있다. 대개 65세 정도까지 각막기증이 가능하다고 알고 있지만, 안과의사에 의하면 80세 정도가 되어도 각막을 기증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엔 2만 여명의 시각장애인이 각막기증을 그야말로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각막기증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결국 외국에서 각막을 수입해 일부 시각장애인들에게 광명을 되찾아주는 부끄러운 각막조직 수입국이다.

 

한 사람이 각막기증을 하면 두 사람이 어둠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육신을 화장해 버리고 가기보다 마지막 귀한 선물로 나누고 간다면 시각장애인의 고통은 거기서 끝날 수 있다. 각막기증은 시신에 손상이 없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각막기증에 적극 동참해주었으면 좋겠다.

 

또한 뼈나 피부, 혈관, 심장판막 등의 조직을 기증할 수 있다. 뼈는 나이 제한이 없다. 전염성 질환만 없다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기증할 수 있다. 교통사고나 암 등으로 다리나 팔을 절단해야 하는 환자가 뼈를 이식받으면 장애에서 벗어날 수 있다.

 

피부기증이 활발한 미국에서는 화상환자 발생 시 즉시 피부를 이식해 줄 수 있어 화상환자 사망률은 5% 미만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화상환자의 45%가량이 사망하고 있는 실정이다. 식약청에 따르면 지난해 6만 건 이상의 조직이식 가운데 국내 자체 조달은 6%에 불과했고 나머지 94%는 수입에 의존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직기증자의 장례식은 조직을 적출하고 시신을 원상태로 복원한 후 발인 이전에 가족에게 인도해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한다. 또한 훌륭한 의료진을 양성하기 위한 의학연구용으로 시신을 기증할 수 있다. 이때 약 6개월에서 2년 사이에 연구가 끝난 후 화장하여 가족에게 분골을 돌려드리거나 대학 해부학교실 납골당에 모시게 된다.

 

글 = 최승주(대한인체조직은행 홍보위원)


태그:#시신기증, #새벽기도, #청소부, #마하타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