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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말로써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다. 만물영장(萬物靈長)인 이유가 바로 말하는 것에 있다 할 것이다.

 

말만큼 오묘한 것도 없다. 말은 인간이 음성표현문자로써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나타내는 활동적 매개체이다.
 

말은 입을 통해 표현된다. 나오기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일단 내뱉어진 말은 그야말로 수많은 역사를 만들고, 사건을 만드는가 하면 자신을 죽이고 살리기도 한다. 소포클레스는 “재산을 모으거나 잃는 것은 한 마디의 말로 충분하다”고 했다.

 

인간은 말로써 생활하고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처럼 말은 꼭 필요하고,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말로써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이다.

 

차라리 말을 하지 않으면 별문제가 되지 않을 것을 한마디 말로 화(禍)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설화(舌禍)가 바로 이런 경우이다. 혀로써 화를 불러들이는 경우이다.
 

말은 그냥 내뱉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생각이 담겨야 하고, 말해야 할 때 비로소 입을 열어야 한다. “놓아버린 말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호라티우스)고 했고, “때는 흘러 없어지지만, 한번 튀어나온 말은 영구히 뒤에 남는다”(L.N.톨스토이)고도 했다.
 

오늘날 우리는 말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제대로 된 말을 얻어듣기란 쉽지 않다. 그저 지껄이는 말들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때일수록 말을 아끼고, 다듬어야 한다.
 

J.오스틴은 ‘지(知)와 정(情)’에서 “말수가 적으면 더욱 좋다”고까지 했다. B.프랭클린 역시 “현명한 사람에게는 한 마디 말로 족하다. 말은 많지만 그 이상 필요가 없다”고 했다.
 

사실 말할 시간에, 그것보다는 생각하고 일하는 것이 훨씬 낫다. 진정 필요한 말은 정리된 한 마디면 된다. 나머지는 사설(邪說)이고, 쓸데없는 말들이다.

 

노자(老子)는 “아는 자는 오히려 말이 없고, 말하는 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자이다”고 했다. 장자(莊子) 역시 “큰 말씀은 말을 않는다”고 했다.
 

말을 하고 싶을 때 참고 기다려라. 그러면 상대방이 보이게 된다. 말은 한번 터지고 나면 그야말로 봇물 같아서 그것을 막고 중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속에 자신의 많은 것을 잃게 되고, 결국은 그 말로 후회하게 된다.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많은 말을 하다 보면 자신이 책임지지도 못할 말들까지 하게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실제로 직장생활을 하거나, 밖에서 누구와 만날 때 말로 인해 곤란을 겪거나, 등줄기에 땀방울이 맺힐 때가 적지 않다. 자칫 한 마디의 실수로 그동안의 모든 것을 잃는다고 생각해 보라.

 

듣는 연습이 돼 있지 않으면 말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듣는 실력이 말하는 기술보다 더 중요하다. 말하는 데는 인내가 필요하지 않지만, 상대의 말을 듣는 데는 상당한 인내와 지혜가 필요하다.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면 그 상대는 반드시 자기 편이 된다. 그러나 내 말만 해 버리면 그 상대방은 어느덧 나와는 멀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남을 사귀고, 끌어들이려면 상대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야 한다.

 

입은 하나이지만 귀는 두 개라는 사실을 잘 깨달아야 한다. 이는 두 개를 들어 잘 생각하고 새긴 후 그 다음에 비로소 하나만 이야기하라는 의미이다.
 

장사를 잘하는 사람은 결코 먼저 자신의 속을 내보이지 않는다. 상대의 주머니에 얼마가 들어 있는지를 스스로가 말하게 한 다음에야 비로소 가격흥정에 나선다. 돈을 잘 버는 점쟁이 역시 찾아간 손님에게 먼저 말을 건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힘 있는 사람은 말이 적다.  상대의 말을 다 들은 후 한마디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만 해도 모든 사람들이 그렇구나 하고 알아듣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말을 함에 있어 특히 주의할 것은 남의 말을 하거나, 뒷말을 하는 경우이다. 또 말을 바꾸는 말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직장인의 경우, 퇴근 무렵의 선술집 안주는 대개 세 가지로 통일된다. 상사에 대한 험담과 회사에 대한 불만, 그리고 자신의 부하직원에 대한 불평이다. 그렇게 힘든 직장을 어떻게 다니는지 모르겠다할 정도로 이들 세 가지 안주를 씹는 데 열중이다.

 

문제는 이런 안주가 어느 한날만의 것이 아니고, 매일같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 큰 고통은 자신도 바로 그런 안주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조심할 것은, 분명히 자신을 포함하여 단 두 명이 있는 자리에서 한 말인데도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그 말이 다른 상대방에게 전달돼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이것은 절대비밀이야. 당신하고 나하고만 알고 있어야 해!”하고 다짐한 말일수록 전달속도가 더욱 빠르다는 사실이다. 술자리에서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말도 믿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자신도 잘 모르고 하기 때문이다.  
 

상황파악을 못하고 끼어드는 말도 조심해야 한다. 자신의 인격과 양식을 한꺼번에 무너뜨리게 된다. 품위 없는 말보다 더한 흠결이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말이다. 이럴 때는 정말 말이 아니라 독약이다.

 

H.필딩은 “남에게, 또 남의 일에 대해서 말을 삼가라”고 경계했다. 뒷말을 즐기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에게 그 화살이 돌아오게 돼 있다.

 

자신이 뒷말을 했을 때는 한순간의 즐거움이었지만, 그 말이 되돌아올 때는 자신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독약(毒藥)이 돼 있게 마련이다.

 

없는 말을 지어내는 것도 죄악이지만, 한번 내뱉은 말을 그건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해명하는 말도 궁색하기는 마찬가지다. 한번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구축하기란 그 일을 아예 처음부터 하는 것보다 더욱 어렵다.

 

해야 할 말을 하지 않는 것도 병이다. 할 때는 분명히, 그리고 또렷이 자신의 생각과 뜻을 전달해야 한다. 말로써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다. 사랑과 칭찬의 말은 얼마든지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한 부서의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드는 일은 아주 쉽다. 누군가가 험상궂은 얼굴로 말문을 꽉 닫고 있으면 된다. 특히 윗사람이 그럴 경우에는 그 부서는 한순간에 얼음장이 되게 마련이다.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은 채 서로의 눈치만 살피게 마련이다. 숨통이 막힐 정도의 긴장감이 나돌기도 할 것이며, 폭발 직전의 분위기도 연출될 것이다.
 

비리(非理)를 보고 참는 것도 비겁한 일이다. 부정한 일에 대해 입을 다무는 것도 초라한 일이다. 진실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

 

“마음에 품고 있던 말을 해버리면 무거웠던 가슴도 가벼워진다”고 J.C.F.실러는 갈파했다. 하지만 그런 일도 되도록이면 한번으로 끝내야 하고, 자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말을 자꾸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그 말의 노예가 되기 때문이다.
 

말에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특히 지도자의 말은 추상(秋霜) 같은 위엄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 부모나 선생의 권위가 없어진 것은 그들의 말에 위엄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말로만 그치고 행동이 뒤따르지 못할 때 그 말은 권위를 잃게 되고, 그 말을 내뱉은 사람의 품위마저 상실하게 된다.
 

정리하면, 말은 되도록이면 아끼는 것이 최선이다. 다만 꼭 해야 할 경우에는 상대의 말을 듣고 난 다음 상황을 봐가며, 가장 짧게 하는 것이다.

 

그것도 남을 비방하거나 힐난하지 않고, 자신의 진실을 담아 진솔하게 말해야 한다. 죽은 자에게는 말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말을 잘못하여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아들과 딸 그리고 직장의 후배들에게 던지는 삶의 메시지입니다.


태그:#힘, #말, #권력, #설화,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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