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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식 학급은 언제부터

서당은 무학년제로 운영되었다. 그러므로 복식 학급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복식 학급이 등장한 것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한창이던 1934년이었다. 복식 학급으로 이루어졌던 교육 기관의 명칭은 간이학교였다. 

“간이학교는 저급한 실업교육을 실시하고, 그것으로 학력이 종결되는 교육기관이었기 때문에 교육목적, 학교의 조직과 규모, 교과목 등이 엉성했다.…  조직과 규모는 수업연한 2년, 학급 1개, 수용인원 전체 80명(1학년 당 40명)이었다. 입학연령은 대체로 10세로 규정되어 있었고, 교원은 1개 교당 1명이 전담하는 정도였다.” ('네이버 카페' 역사국 [goodhistory2007]에서 인용)

최초의 복식학급이자 교육 기관인 간이 학교를 만든 이유

한 학년 40명씩 두 개 학년 80명으로 구성된 하나 복식 학급이 독립된 교육 기관으로 간이 학교라 칭해졌다. 학교에 교사는 한 명, 두 개 학년의 교육과정, 총 80명이 한 학급, 이런 학교를 누가 왜 만들었을까?

박균섭의 논문 <조선총독 우가키의 조선관과 교육정책에 관한 고찰>에서 그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 있다.

   "우가키는 식민지 농촌의 식민지 권력에 대한 저항 투쟁을 무마시키기 위해서, 농가의 (교육에 대한) 지출을 억제시키고 농가의 노동력을 연소시켜서 농업 생산력을 증진시키려는 목적으로 간이학교제의 도입했다.

1930년대의 경우, 농촌 피폐가 심각한 가운데 농촌청년의 대다수가 농업을 싫어하고, 학교를 나와도 농업을 계승하지 않고, 안정된 봉급생활을 찾아 도시로 향하는 경향이 현저해졌다. 다음 세대를 담당할 농촌청년의 농업 경시와 이촌의 증대는 조선에서 농업을 기간산업으로 고정시켜 일본을 위한 식량공급기지로 만들려는 총독부의 구상을 무너뜨리는 중대한 문제로 받아들여졌다."

조선총독부에서 복식 학급을 만든 이유는 결국 ‘식민지 조선의 농민을 저렴한 비용으로 착취하자!’는 것이었다.

복식 학급에서 교육은 어떻게 했을까?

농촌벽지에 설치된 간이학교는 2년으로 교육이 완결되는 교육기관이었다. 위 논문에 의하면, 학과목은 수신, 산술, 조선어 및 일본어, 직입 등 4과목뿐이었지만 일주일의 수업시간 30시간 중 직업(10시간)과 일본어(12시간)만으로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였다는 점, 그리고 교사로 하여금 의무적으로 촌락에 거주하게 하고 전촌지도라는 미명아래 촌락 파악의 의무를 담당하게 하였다는 점 등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고 한다.

교육 시설 또한 무척 열악하였다. 조선총독부 학무국은 간이학교 교사는 모래를 담은 쟁반으로 글자를 배우고 포플러 가지로 땅바닥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한 필묵이 갖춰지지 않아도 교육과 교수는 가능하다고 했다.

조선총독부는 이러한 복식학급을 통해 농촌 벽지의 아동을 대상으로 농사짓는 방법을 교육하면서 일본 식민으로 정신을 개조시키는 황국식민화 교육을 돈 들이지 않고 했다.

복식수업의 가장 큰 문제는 ‘반쪽’교사에 있다.
▲ 복식 수업 모습 복식수업의 가장 큰 문제는 ‘반쪽’교사에 있다.
ⓒ 안옥수 기자(교육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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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학교는 사라졌지만

1945년 해방 전에 간이 학교는 폐지되고, 분교장으로 남아 있다가 대부분 국민학교로 승격되었다. 그 국민학교라는 이름은 김영삼 정권 시절에 일제 식민지 청산의 한 조치로 초등학교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일제 식민 통치 말기에 농민의 저항에 의해 연속된 교육 과정을 이수할 수 있는 초등학교의 분교장으로, 규모가 커지면서 국민학교로 변화했다. 이러한 외형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 비교육적 정책의 핵심을 이루었던 교육행정기관이 정한 임의적 기준에 의한 복식 학급 편성 방식은 2007년 현재에도 농촌벽지에서 계속되고 있다.

충남대 김두정 교수가 교육과정에 대한 논문에서 교육과정 운영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것 중에 첫 번째가 입시 중심의 교육 과정이고 세 번째가 복식 학급이었다. 그 연구에서 복식 학급 문제에 대해 최대 다수의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은 복식 학급의 철폐였다.

일제 식민지 교육의 잔재 청산이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바꾸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내용인 지역민의 의견을, 교육 수요자의 의견을 무시하고 행정기관에 의해 강제적으로 복식 학급이 편성되는 구악이 사라지는 날 일본 식민지 교육의 잔재 하나를 진정으로 청산하는 것이다. 일본을 넘어서기 위해, 우리에게 복식 학급을 남긴 일본이 언제 그러한 정책 집행 방식을 청산했는지 살펴볼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교육’을 하겠다고 했다. 교육 공급자인 정부에 의해 강제적으로 복식학급을 편성하여, 교육 수요자의 기본적인 욕구를 원천적으로 무시하는 식민지 교육 행정의 잔재를 청산하는 일이 그러한 교육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일제 식민지하의 조선총독 우카기와 독립국가의 대통령 노무현은 당연히 달라야 한다.

왜 이런 사소한 교육 문제를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아닌 대통령에게 이야기하고 있을까? 그 사연은 산골 분교장의 까칠한 이야기에서 계속 이어진다.


태그:#복식학급, #소규모학교통폐합, #소규모학교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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