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강 상류에서 소백산맥을 남쪽으로 넘기 위한 지류와 계곡 어귀에 한 산성이 자리잡고 있다. 이른바 온달산성으로서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진 삼국시대의 산성이다. 정확히 어느 나라에 의해 축조되었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이 산성을, 이쪽 사람들은 온달산성이라고 하여 고구려의 명장이었던 온달이 쌓은 산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온달산성은 사적 제264호이다. 현재 이곳은 충북 단양군이 온달관광지로 개발했다. 이 온달관광지엔 연개소문촬영장과 전시관, 테마공원, 온달동굴, 그리고 온달산성으로 구성되있다. 비록 100% 완벽한 고증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신경 써서 만든 연개소문 촬영장으로 고구려의 숨결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다. 또한 천연기념물인 온달동굴의 환상적인 모습을 직접 볼 수 있고, 천혜의 요새인 온달산성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인 곳이라 하겠다.

 

 

온달산성은 연개소문 촬영장을 지나 들어가면 그 입구가 있다. 사찰의 일주문처럼 생긴 이 입구의 모습은 사실 약간 어색하다. 하지만 고구려의 건물 사이로 유유히 걸어가며 온달산성을 오른다는 기분만큼은 색다르다.

 

온달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은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다. 굉장히 급한 경사이고 암반 위에 길이 있어 올라가는데 꽤 힘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길을 닦아 놓은 것도 오늘날에 와서 한 것일테니, 예전이면 오죽했을까?

 

삼국시대 최고의 요새 중 하나인 온달산성

 

온달산성은 테뫼식산성에 속한다. 테뫼식산성이란 산봉우리를 빙 둘러 놓은 형태로서, 산에 테를 둘러놓은 것 같다는 데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이러한 테뫼식산성은 당연히 산꼭대기에 있기 때문에 올라가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테뫼식산성에는 어김없이 우물이나 집수시설, 즉 물을 보관하는 시설이 있기 마련인데, 이는 전투 시 방어를 하면서 버티기 위해서이다.

 

테뫼식산성의 경우 계곡을 끼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물이 부족하게 되고, 그러한 상황에서는 수원의 확보가 중요하게 되는데, 온달산성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온달산성에는 우물이 하나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온달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정자가 하나 있다. 사모지붕을 한 이 정자는 돌로 만들어 졌으며 관광객들이 잠시 쉬며 올라가기에 좋게 되어 있다. 이곳의 위치가 어김없이 쉬고 갈 수밖에 없는 곳인데, 그만큼이나 경사가 가파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온달산성이 있는 성산은 해발 472m로 그렇게까지 높은 편은 아니다. 그만큼 경사가 가파르다는 것은 방어에서도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곳을 공격할 경우 올라오는 길에 이미 지쳐 쓰러질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숨을 '헉헉'거리며 산 정상부에 도착하면 믿기 힘든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최고 7.8m나 되는 높은 성벽이 주욱 펼쳐지는데, 돌을 매우 촘촘하게 잘 쌓아 올려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1400년 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하는데, 보수를 제대로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용이 그대로 남아 있어 보는 사람들을 압도한다. 참고로 온달산성의 전체 모습은 말의 안장을 닮았다고 하며 둘레는 총 682m이다.

 

흔히 온달산성을 고구려의 온달장군이 쌓은 산성이라고 아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이 온달산성이 온달장군과 관계가 깊은 것은 사실이다. 온달장군이 전사한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온달산성은 현재까지 2번의 조사가 이뤄졌다. 둘 다 충북대학교에 의해서 이뤄졌으며 1989년에 지표조사를, 2003년에 시굴조사를 실시한 바가 있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기와가 발견되어 그 상한을 삼국시대로 잡는 것은 상식이 되었지만, 이게 과연 어느 나라에서 쌓았는지는 확실치 않다.

 

혹자는 백제에서 쌓았다고도 하며, 신라에서 쌓았다고도 한다. 또한 고구려의 땅이었던 적도 있으니 고구려에서 쌓았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고구려의 축성법과는 약간 거리가 있다. 하지만 어디에서 쌓았든 중요한 것은 이곳이 삼국의 각축장이었으며, 특히 고구려와 신라는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였다.

 

 

계립현과 죽령을 찾지 못한다면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고구려는 이곳에 명장인 온달장군을 보내었다. 온달장군은 <삼국사기>에 나오며, 바보온달이야기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온달장군은 후주와의 전쟁에서 고구려를 승리로 이끄는 주역인데, 이 후주는 뒤에 양견이 왕위에 올라 수나라로 바뀌게 된다. 아무튼 <삼국사기>에 의하면 온달장군은 말머리를 신라로 돌려, 이곳의 옛 고구려 영토를 회복하기 위하여 양강왕, 즉 영양왕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금 신라가 우리의 한북 지역을 차지하여 자기들의 군현으로 만들었으므로, 그곳의 백성들이 통탄하며 부모의 나라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바라옵건대 대왕께서 저를 어리석고 불초하다고 여기지 마시고 군사를 주신다면 단번에 우리 땅을 도로 찾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군사를 이끌고 신라를 쳐들어간다. 이때 “계립현과 죽령 서쪽의 땅을 우리에게 귀속시키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습니다”라고 맹세하였다. 그리고 아단성에서 싸우다가 그만 화살을 맞고 전사하게 된다. 이후 온달장군을 관에 넣고 움직이려고 하자 땅에서 관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하며, 이 소식을 들은 평강공주가 관을 어루만지면서 “살고 죽음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아아! 돌아가소서!”라고 하자, 그제야 관이 움직였다고 한다.

 

여기에서 아단성은 사실 서울의 아차산성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서울의 아차산성에서 온달이 전사하였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이는 사실과는 무관하다. 사실 온달산성은 정확히 말해 을아단성으로서 이곳에는 예로부터 온달과 관련된 전설들이 무수히 전해진다. 아차산성에서도 온달전설이 전해진다고 하며, 온달샘이라는 게 있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 옹달샘에서 나온 말이지 온달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온달산성은 방어에 굉장히 유리하게 축조되었다. 특히 성문의 경우 중세 유럽의 성문과 비슷하게 되어 있다. 즉 다른 성에서는 보이지 않는 방식인데, 성문이 땅보다 좀 더 위에 있으며 성문은 큰 나무로 만들어 아군이 오면 끌어내려줘 계단처럼 걸어 올라갈 수 있게 해 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작은 계단이 설치되어 올라 갈 수 있게 해 놓았지만, 당시엔 이곳을 성문으로 꽉 막아 놓았을 것이기에, 적으로서는 공격하기에 여간 까다롭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치성이라는 것이 있다. 치성은 우리나라의 성곽에서 자주 보이는 시설물로서 성벽을 약간 돌출시켜 사각(死角)을 없애 적을 공격하기 좀 더 용이하게 하였다. 또한 전체적으로 곡선으로 처리해 놓았는데, 이 또한 사각을 없애기 위한 방도이다. 게다가 성벽 아래에는 발을 디딜 공간이 생각보다 넓지 않다. 이 또한 일부러 깎은 것으로서 발을 디디기 힘들게 해서 적이 공격하기 어렵게 해 놓은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보면 얼마나 철저한 계산 아래에 이 성곽이 축조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명장은 아무 데서나 죽지 않는다

 

온달은 이렇게 험준한 곳에서 신라군과 싸운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쟁은 공성전이 중심인데, 특히 온달산성은 남한강과 그 주위를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쪽에선 최고의 요새이다. 그렇기 때문에 온달장군은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죽기 살기로 공격한 것이지만, 신라로서도 그러한 입장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운명의 신은 신라의 편을 들어주었고, 온달은 이곳에서 전사하게 된다.

 

장수는 전쟁터에서 죽는 것이 숙원이라고 한다. 물론 흔한 거짓말 중 하나일 수도 있겠으나, 북유럽의 경우 전쟁에서 싸우다 죽으면 발할라에 가게 된다고 믿었으며, 신라의 화랑 또한 젊은 나이에 죽으면 그 모습 그대로 저승에서 환생하게 된다고 믿었다고 한다. 고구려 또한 그러한 신앙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보이며, 어차피 전쟁터에서 죽을 것이라면 그럴 가치가 있는 곳에서 죽는 것이 나으리라. 그러한 점에서 온달산성은 최고의 명당(?)이라 하겠는데, 이곳에 와서 과연 명장은 아무 데서나 죽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온달산성은 그 곡선이 굉장히 아름답다. 주위의 산들도 약간씩 등치가 있긴 하지만 곡선으로 한국의 멋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온달산성은 그러한 면에서 자연과의 조화가 매우 잘 이루어져 있다. 산성을 오른다는 것은 답사 중에서 매우 힘든 코스이기도 하다. 하지만 산성에 올라 주위를 조망하면 그 탁 트인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며 힘든 것을 싹 잊게 된다. 특히 아름다운 산천이 함께 어우러지면 그 자체가 그림이다.

 

 

온달산성에서 내려오는 길에 올라갈 땐 미처 보지 못한 작은 건물이 하나 보였다. 순간 화장실인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는데, 큰 실수를 한 셈이었다. 이곳은 성황당으로서, 성황신위가 모셔져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에 들어가 간단하게 기도를 하고 하산하였다.

 

온달산성은 우리나라 성곽 중 가히 최고의 요새 중 하나라고하겠다.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모습에 놀라고, 철저한 방어시설에 또 놀라게 된다. 그리고 고구려와 신라의 혈전을 떠올리게 되며, 이곳을 차지하기 위하여 병사들을 독려하며 적진을 향해 나아가던 온달을 떠올리게 된다. 고구려의 기개를 찾고 싶다면, 이곳에 와보는 게 어떨까?

덧붙이는 글 | <'테마'가 있는 나만의 여행 >응모글입니다. 11월 3일 단양 온달산성을 갔다와서 쓴 답사기입니다.


태그:#온달산성, #단양, #온달, #고구려, #신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