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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도전적인 일자리를 찾아서 갈 필요가 있지, 공무원이 되겠다는 소극적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 기사를 보니 이명박 후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옳은 이야기다. 그러나 왜 다들 그런 소극적 생각에 매달릴까?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취업난은 해가 가면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도전적인 일자리를 찾아가지 않는 젊은이 탓이라는 어른들도 있지만 과연 그럴까? 더 나은 기회를 찾고자 해외로 나온 한 젊은이의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의 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취업난이라고 하지만 어떻게든 삶에 도전하려는 젊은이의 모습을 통해 사회가 반성하고 도와주어야 할 부분은 없을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그래서 1부 <그래 다 내 탓이다, 하지만>에 이어 2부 <정말 다 내 탓?>을 연재하고자 한다. 부디 나무를 통해 숲을 그릴 수 있는 작업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기자 주>

 

"요새 원장님이 인사 잘 받아주죠?"

 

연이어 선생들과 학원 사이에서 안 좋은 일이 생기다 보니 자연스레 원장과 선생들 사이도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회사나 경영주는 한 푼이라도 아껴 쓰고 싶고 고용된 이들은 한 푼이라도 더 받고 싶은 만큼 어느 정도 틈이 있기는 마련이다.

 

그런데 내가 있던 학원에서는 그 틈이 메울 수 없을 만큼 심하게 갈라져 버린 것이었다. 중국이라는 환경을 고려해도 임금이 적다고 생각하는 선생들이었지만, 중국어를 배울 수 있다는 점 등을 생각해보면 받아들이기 힘든 것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중국어 시험을 보기 한 달 전 원장의 배려로 난 다른 선생과 단둘이서 문법만 공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서로 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히 진행된다는 가정하에 가능한 것이다. 서로에게 불만이 있을 때도 자주 대화해 합의점을 도달할 수 있는 상태에 있다면 설령 갈라진 틈이 있다 하더라도 건너다닐 수 있는 다리를 만드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선생들이 말도 없이 짐을 싸서 나가고, 아프지도 않은 아버지 병을 핑계로 학원과 계약 기간을 지키지 않고 나가는 등 극단적 행동을 하면서 다리를 놓기조차 힘든 틈이 생겨 버린 것이었다.

 

게다가 비록 경우에 맞지 않게 나간 선생들도 있었지만, 학원 선생의 입장에서 그들의 입장이 전혀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도 그 틈을 더 벌어지게 만들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학원이 남은 선생들에게 취한 태도는 나간 이들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 철저한 냉대였다.

 

원장은 언제부터인지 남은 선생들이 인사해도 잘 안 받기 시작했고, 남은 선생들도 한두 차례 그런 일이 반복되자 보고도 일부러 인사를 안 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것은 서로 간에 있었던 신뢰가 뿌리부터 흔들리면서 시작된 것일 수도 있었다.

 

원장 입장에서 나를 비롯한 그래도 학원에 오래 있었던 선생들이 새로 온 선생들에게 학원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해주기를 바랐던 모양이었다. 이런저런 안 좋을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학원에서 일할 만 하다는 식으로 새로 온 선생들에게 얘기해주기를 바랐는데, 안 좋은 쪽으로 이야기를 해서 결국 아버지 병을 핑계로 도망가는 일까지 발생한 근본적 원인을 제공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것은 여자 원장이 나중에 다른 선생에게 "선생들끼리 짜고 우리 학원 망하게 하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라고 말했던 데서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이에 대해 남은 선생들은 당연히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기 힘들었다. 인정했다. 새로 온 선생들에게 결코 학원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았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그 누구도 그런 식으로 학원에 등을 돌리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학원에 대한 여러 불만이 있었지만 남아 있던 선생들은 어쨌든 학원과의 약속을 지키고 기본적 도리를 할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이들에게 학원에서 '학원을 망하게 하려고 작정한 거 아니냐?'는 식의 대응을 했으니 기분이 결코 좋을 리 없었다.

 

그야말로 배신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경우에 맞지 않게 나간 것이 남은 선생들도 아니고 게다가 '빨리 도망치라'고 그 선생들에게 강요한 것도 아닌데 어째서 남은 이들이 그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분풀이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원래 믿음이 조금이라도 있던 사이에서 배신감이 싹트기 시작하면 뿌리가 더 깊어지는 법이다. 그리고 얼마 전 원장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오르면서 나 역시 학원과 갈라진 틈에 더 이상 다리를 놓아볼까 하는 생각조차 하기 싫어지기 시작했다.

 

"우리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에라도 움직일 계획 있으시면 움직이셔도 됩니다."

 

원래 계약되었던 기간까지를 계산하고 향후 일정을 염두에 두었던 나로서는 당혹스러운 제안일 수밖에 없었다.

 

"이 곳에서 국어를 하는 게 도움이 될까요?"

 

원장이 이렇게 연이어 물어보자 감이 잡혔다. 국어 과목을 폐강한다는 얘기였다. 중국이니 만큼 국어를 활성화 시킬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굳이 그런 소리를 원장에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심사가 뒤틀린 상태였다. 그리고 원장이 나보다 더 많은 생각을 안 해 볼 리 없었을 터, 장점과 단점을 저울질 한 다음 결국 단점이 더 많다고 판단해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그 말에 반대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예. 원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시내라면 모를까, 교외 지역인 이곳에서는 좀 힘들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닌데 일단 사람을 구하고 있긴 있어요. 그런데 일단 방학까지만 국어를 할 생각인데, 뭐 원하시면 원래 계약 기간까지 하실 수도 있고."

 

마음 같아서야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어쨌든 학원도 경영하는 입장 아니던가. 수지 타산이 안 맞는 과목이라면 접을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처음 1명, 2명이던 원생 수가 20명 정도로 늘긴 했지만 분명 그것은 교사 인건비 정도를 건질 수 있는 수준인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국어 과목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면 방학이 끝나가는 시점에 끝내는 것이 바람직했다. 방학 동안 특강으로 개설되어 있던 반을 끝내면서 자연스레 마무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학기 중에도 수강생을 받게 되면 내가 그만둔 후 분명 귀찮은 문제가 생길 것이 분명했다. 따라서 원장이 권유하는 형식이었지만 분명 이것은 그만두어주었으면 하는 압박이 강해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물러날 수 없었다. 나에게는 꿈이 있었고, 내 꿈을 예정대로 진행하려면 그 학원에서 계약 기간까지는 일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좀 힘들겠는데요."

 

웃으면서 이해해달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이미 마음은 구겨져 있었다. 결국 원래 끝나기로 한 날보다 일주일 정도 앞선 날까지 일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내가 원래 일하기로 한 날짜까지 일하게 되면 중간에 연휴가 끼어 있어서 학원은 금전적인 측면에서 손해를 보게 되어 있었다.

 

자존심과 마음이 이미 상할 만큼 상해 있었지만, 원장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배려해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 대화에서 이 한 마디만 오고 가지 않았다면 여러 사건이 있었다 하더라도 지금껏 학원에 대해 부정적 인상보다 긍정적 인상을 더 많이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정말 그 한 마디만이라도 오고 가지 않았다면. 그것은 바로 위약금과 관련한 이야기였다.

 

-23편에 계속-

덧붙이는 글 | 위에 나온 인명 및 지명은 모두 가명입니다.


태그:#청년 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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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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