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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대학동기인 '스톤앤워커' 박찬응 관장이 추진하고 있는 안양 석수시장에서의 공공예술, 예술과 생활이 만나는 '도깨비 공작소'이다.
 아내의 대학동기인 '스톤앤워커' 박찬응 관장이 추진하고 있는 안양 석수시장에서의 공공예술, 예술과 생활이 만나는 '도깨비 공작소'이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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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아내의 대학동기 전시회에 동행했다. 79학번이니 그때로부터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내는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다. 고등학교 졸업 후 몇 년간 직장생활 하다가 진학했기 때문에 동기들보다 서너 살이 많다.

"여자가 대학은 무슨 놈의 대학! 직장생활하다 시집이나 가면 되지!"

그땐 여성이 아니라 여자였다. '여자는 대학을 다닐 필요가 없다'는 부모의 엄포로 인해 대학을 포기했지만 속이 많이 상했단다. 무엇보다 꿈 때문에 괴로웠다고 했다. 아내의 꿈은 화가였다. 꿈은 장애를 뛰어넘는 힘이 있는 것 아닌가? 배고픈 것은 참을 수 있지만 꿈을 잃는 것은 견딜 수 없던 청춘의 시절이었다.

미술학원을 제대로 다니지도 못했는데도 미대에 합격했단다. 그렇게 애써서 진학했는데 학비 때문에 낭만을 누릴 겨를이 없었단다. 과외하고, 아르바이트 하고… 그래도 등록금이 부족해 학업을 중단해야 했는데 동기 중에 맏형 노릇하던 남학생 한 명이 받은 장학금을 보태어주어서 고비를 넘겼단다.

전시회 오프닝에는 아내 대학동기와 몇 몇의 관객이 참석했다.
 전시회 오프닝에는 아내 대학동기와 몇 몇의 관객이 참석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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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맏형 또한 넉넉지 못한 미술학도였다고 한다. 자취생활을 오래 했다는 그 형은 '방금 지은 따뜻한 밥에 김치 얹어 밥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아내에게 들려주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아내를 비롯해 어린 동기들에게는 늘 후하고 넉넉했던 늦깎이 대학생이었단다.

졸업 이후 처음으로 그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했다. 과 커플인 아내의 전시회에 초대한 것이다. 아내는 그 형 아내의 전시회였기에 애써 참석하려 했고, 나 또한 그 사연을 듣고서 그 형이란 분이 보고 싶어졌다. 모임 장소는 동기가 운영하는 안양 석수시장에 위치한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이다.

파시한 시장의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걸어가며 생각했다. 예술가의 삶에 대해서, 외로움과 가난에 대해서, 잃어버린 꿈에 대해서, 삶의 고단함에 대해서…. 연말에 즈음해서 더욱 그러한 생각이 밀려들었다. 자식들이 커가면서 꿈은 졸아들었고 싹도 틔우지 못하고 시든 꿈은 우울했다.

전시 주제는 '쥬쥬의 크리스마스'(이 이야기는 따로 준비하고 있으므로 전시 내용은 삼간다).

작고 조촐한 변두리 전시회 오프닝에는 그 형 부부와 '스톤앤워터' 관장과 몇 몇의 동기를 비롯한 열댓 명이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권하는 와인에 취했다. 잊었던 꿈의 향기가 불현듯 꿈틀거려서 취했다. 한눈에 봐도 사람 좋은 '형'이란 그 분의 은은함이 느껴져서 편하게 취했다.

동기들 사이에서 음치로 판명 난 박찬응 관장(마이크 잡은 사람)이 괴상야릇한 노래로 좌중을 웃기고 있다.
 동기들 사이에서 음치로 판명 난 박찬응 관장(마이크 잡은 사람)이 괴상야릇한 노래로 좌중을 웃기고 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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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음과 쫓김이 없는 변두리가 좋았다. 형식과 격식에 얽매이지 않은 분위기가 편했다. 아득하게 밀려오는 은은한 향기에 젖어들었다. 시장 변두리 낡은 건물 2층 서너 평의, 그야 말로 보충 대리공간인 '스톤앤워터'는 꿈을 꾸는 혹은, 꿈을 그리워하는 이들은 두런거림, 한 잔의 추억과 노래로 깊어갔다.

뒤풀이로 이어진 석수시장 순대국집.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흘러간 노래처럼 스케치 된다. 이들에게 돈 잘 버는 이야기는 흉이 되고, 가난한 작가의 길을 걷는 이야기는 전설이 된다. 작가의 붓을 꺾게 하는 천박한 시대가 아쉽다. 하기야 어느 시대든 예술가의 초상이 부하고, 주류로 힘주었던 적이 있었던가!

<황산벌>(나는 '왕의 남자'보다 이 영화에 더욱 매료됐다)의 이준익 감독도 동기라고 한다. <왕의 남자>로 천만 관객을 동원하기 전, 소위 '뜨기 전'인 2002년 스톤앤워터 개관전 ‘리빙퍼니처’에서 나무그릇에 ‘달마야 놀자’ 영화 시나리오를 담아서 출품했단다. 그 어떤 기자가 뜰 것을 눈치 챘는지 어쨌는지 사갔다는 것이다.

아내와 이준익 감독은 동양화를 전공했다. 아내는 이 감독의 그림이 좋았다고 회상하면서 <왕의 남자> 영상미가 뛰어난 것은 미술을 전공한 감독의 전력이 작용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반백의 머리를 허리까지 기르고 다니는 기인 예술가로 부산비엔날레 감독을 지낸 세계적인 큐레이터 유병학씨가 동기라는 것에 대해서도 자랑스러워한다.

앞줄 좌측에서 세 번째가 맏형이고 그 옆 사람이 맏형의 아내이자, 이날 전시회를 연 작가 장준영 씨이다.
 앞줄 좌측에서 세 번째가 맏형이고 그 옆 사람이 맏형의 아내이자, 이날 전시회를 연 작가 장준영 씨이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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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이 고향인 아내는 석수시장 변두리를 고집하는 동기 박찬응(전국 12인의 큐레이터로 선정됐음을 아내는 강조한다) '스톤앤워터' 관장을 소중하게 여긴다. 안양천 프로젝트 운영위원장 등 공공예술의 가능성과 실험을 계속하고 있는 그는 석수시장 상인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면서 생활 속의 예술을 접목시키려 애쓴다.

예술가는 언제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항의하고 싶어진다. 

돈 잘 버는 것을 최고의 예술로 여기는 영혼이 빈곤한 시대이다. "아니다, 그 정도는 이미 벗어났다.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 하는 것을 자랑스레 여기는 천박한 자본의 시대"라고 꾸짖는 홍세화 선생의 말씀이 가슴을 울린다. 예술가들이 천박한 자본에 희롱 당하고, 무시당하는 가당찮음에 대해 제대로 규탄하지 않는 시대인들이 섭섭하고 야속하다.

천박한 자본의 대로보다 예술가의 변두리를 고집하며 조촐한 작가의 길을 걷는 동기들을 아내는 사랑한다. 가난했지만 서로 힘이 되어주면서 버티게 했던 그 인정의 시절 때문에 누군가 전시회를 열면 동기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 축하하고 격려한다. 서로 외롭지 않도록 감싸는 것이다.

세종대학교 79학번. 누구는 교수가 됐고, 누구는 강사로 출강하고, 누구는 미술학원 운영으로 삶이 바쁘고…. 동기 중에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경우도 여럿 있다고 했다. 인생은 쓸쓸하고 외롭지만, 그 절망의 회색을 채색하는 예술가로 인해 꿈이 천연색으로 아름다운지 모른다고 아내는 말한다.

아내 동기 전시회의 그 은은한 향기에 취해 귀가하던 길, 천박한 경제 제일주의에 한 표를 던져선 안 된다고 거듭 생각했다. 삶은 그렇게 부수고, 쌓으면서 미쳐가선 안된다고 항변하는 예술가의 길에 한 표를 던지기로 더욱 다졌다. 개표가 끝났다고 다 끝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쓸쓸하고 외로운 변두리에서의 전시회,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만남.
 쓸쓸하고 외로운 변두리에서의 전시회,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만남.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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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예술가, #변두리, #쓸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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