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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에서 개성을 찾은 관광객을 위하여 미리 준비한 11첩 반상
▲ 11첩 반상 남쪽에서 개성을 찾은 관광객을 위하여 미리 준비한 11첩 반상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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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은 북한 땅이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1시간이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지만 멀고도 가까운 땅이었다. 이러한 개성이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개성 1일 관광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남측 출입 사무소까지 1시간, 남·북측 출입사무소에서 1시간, 도합 2시간이면 개성에 들어갈 수 있다.

북측 출입사무소를 통과하면 3명의 북측 관계자가 동승한다. 우리나라의 관광여행사 직원에 해당하는 안내원 2명과 임무를 알 수 없는 한 사람이다. 이동하는 버스에서 사진촬영은 엄격히 금지한다고 경고한다. '예민한 군사지역을 통과하기 때문이겠지'라고 이해하던 생각은 개성 시가지로 들어서는 순간 산산이 부서진다. 개성관광을 허용하기까지 북측의 고심이 읽힌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오전 6시 30분. 남측출입 사무소
▲ 남측출입사무소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오전 6시 30분. 남측출입 사무소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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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출발한 관광버스와 현지 버스. 개성 번호판이 선명하다.
▲ 박연폭포 주차장 서울에서 출발한 관광버스와 현지 버스. 개성 번호판이 선명하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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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 60km 정도밖에 낼 수 없는 고속도로를 10분 정도 달려 개성 시내에 들어가면 북측 안내원이 맨 먼저 안내한 곳이 박연폭포다. 서경덕, 황진이와 함께 송도삼절로 꼽히는 명승지다. 박연폭포는 천마산과 성거산을 흐르는 물이 박처럼 생긴 작은 소(沼)에 모여 37m 절벽으로 떨어지는 폭포다.

지족선사를 유혹하던 황진이의 속살을 보는 것처럼 눈부시다
▲ 박연폭포 지족선사를 유혹하던 황진이의 속살을 보는 것처럼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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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3대폭포로 일컬어지는 금강산 구룡폭포와 설악산 대승폭포가 남성적인 폭포라면 박연폭포는 한복을 곱게 받쳐 입은 여인네를 연상케 한다. 평소엔 물이 흐르던 폭포가 강추위에 꽁꽁 얼어붙었다. 빙폭이다. 얼어붙은 폭포가 눈부시다. 폭포에 켜켜이 쌓인 얼음을 보는 순간, 스스로 치마를 내려 지족선사를 유혹하던 황진이의 속살을 보는 것처럼 황홀하다.

시인묵객들이 많이 찾아서일까? 박연폭포에서 관음사에 이르는 바위에는 이곳을 찾았던 이들의 이름이 빼곡히 음각되어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하지만 경승지 바위에 이름을 새겨야 했던 그들이 오히려 연민스럽다.

방짜유기로 만들어진 11첩 반상기
▲ 11첩 반상 1인분 방짜유기로 만들어진 11첩 반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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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분 11첩 반상. 밥그릇이 '머슴주발'이고 국그릇이 크다. 숟가락과 젓가락은 물론 모든 그릇이 방짜유기다.
▲ 11첩 반상 1인분 11첩 반상. 밥그릇이 '머슴주발'이고 국그릇이 크다. 숟가락과 젓가락은 물론 모든 그릇이 방짜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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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관광객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점심식사. 밥그릇이 일명 ‘머슴주발’이라고 불리는 큰 그릇이었지만 모두가 빈 그릇이다.
▲ 빈그릇 남쪽 관광객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점심식사. 밥그릇이 일명 ‘머슴주발’이라고 불리는 큰 그릇이었지만 모두가 빈 그릇이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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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코스는 박연폭포를 되돌아서 개성시내로 진입한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서다. 관광 인프라가 갖추어지지 않은 개성은 수백 명에 이르는 관광객에게 점심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개성시내로 들어와야 한다. 여기에 북한 당국의 고심의 흔적이 배어 있다. 남측에서 온 관광객들이 낙후한 개성 시가지를 휘젓고 다니는 것이 결코 탐탁치 않았을 터.

점심은 남측 관광객들에게 11첩 반상을 제공하는 통일관이다. 김일성 동상 앞에 자리 잡은 통일관은 개성에서 제일 큰 요식업소다. 개성시민들은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는 곳이다. 밥그릇과 국그릇을 비롯한 모든 반기가 방짜유기다. 숟가락과 젓가락도 역시 같다. 왕조시대 왕의 수라상이 12첩 반상이고 세도 부리던 사대부집 반상이 7~9첩이었으니 11첩 반상이면 대단한 차림이다.

11첩 반상 점심을 내놓은 식당이다.
▲ 통일관 11첩 반상 점심을 내놓은 식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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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4명이 점심 식사를 하면 밥과 국은 각각 나오지만 그 밖의 반찬은 공동으로 나온다. 하지만 '개성 11첩 반상'은 그렇지 않다. 1인당 밥과 국은 물론 11가지 반찬이 따로 나온다. 이것이 바로 정통 '개성 11첩 반상'이다. 눈이 즐겁다. 갑자기 임금님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맛 또한 죽음이다. 화학조미료에 길들여진 남쪽 관광객들의 혀를 사정없이 희롱한다.

여기에서 반상을 한번 짚고 넘어가야겠다. 반상에는 국그릇과 밥그릇은 포함되지 않는다. 간장 종지 역시 제외다. 순수한 반찬그릇만을 말한다. 그리고 임금님의 수라상 12첩 반상도 그렇다. 12첩이라고 해서 꼭 12첩에서 멈추는 것은 아니다. 그 이상이라는 뜻이다. 때문에 임금님의 수라상과 일반인들의 경계선이 11첩이다.

개성은 500년 고려 도읍지다. 역사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만월대와 왕건왕릉 그리고 공민왕능이 있지만 이번 관광코스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11첩 반상을 제공한 통일관 근처에 남대문과 김일성 동상이 있지만 관광객들에겐 접근 불가다. 버스에 올라 포은 정몽주 선생의 집터에 세워진 숭양서원을 둘러보고 선죽교를 살펴본 다음 성균관에 있는 고려 박물관이다.

포은 정몽주선생의 집터에 지은 서원이다.
▲ 숭양서원 포은 정몽주선생의 집터에 지은 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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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 선생의 절개가 서려있는 선죽교
▲ 선죽교 정몽주 선생의 절개가 서려있는 선죽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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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을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개성 시가지를 빠져나와 북측 출입사무소를 통과하고 고속도로에 올라 10분 정도면 북방한계선이다. 우리를 안내하던 북측 선도차가 더 이상 남쪽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멈추어 섰다. 비무장지대는 폭이 4km다. 하지만 북측은 남쪽으로 1km 정도 내려와 있고 남측은 북쪽으로 1km 가량 올라가 있다. 때문에 실질적인 비무장지대는 2km 정도다. 이 2km를 더 이상 내려가지 못하는 것이다.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군사분계선을 통과하여 홀로 달렸다. 북측 안내원도 없고 기사 혼자 운전이다. 간섭 없이 이렇게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2분 정도 달리면 우리나라 선도차가 대기하고 있다. 참으로 짧고 긴 거리다. 개성 시가지를 빠져 나올 때, 창틈 사이로 관광객들을 훔쳐보던 개성 어린이들의 눈망울이 지워지지 않는다.

개성관광은 현대아산 주관 아래 각 여행사에서 예약을 받으며 요금은 18만원이다. 노약자와 어린이도 가능하다. 부담 없이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관계로 예약이 폭주하여 미리 예약해야 한다.


태그:#개성, #박연폭포, #선죽교, #성균관, #11첩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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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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