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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보고 있는 이 곳이 잠실대교 수중보입니다. 바로 지척에 취수장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강을 흐르는 물이 사람들의 식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먹을 물 위에 배를 띄우겠다니, 이 무슨 당치않은 발상입니까? 한반도운하가 이 강을 오염시킨다면 이 땅엔 되돌릴 수 없는 대재앙이 닥쳐올 수도 있습니다."

 

날씨가 다소 풀렸다지만 아직은 강바람이 매섭다. 그 맵찬 바람을 온 몸으로 맞고 선 시민 200여 명의 입에선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이들이 추위를 마다하지 않고 서울 잠실대교 인근 한강시민공원 수중보 앞에 모인 까닭은 뭘까?

 

모여든 사람들이 들고 선 피켓에 적힌 '환경 재앙-문화유산 파괴, 이명박 운하 반대한다'는 글귀가 그 이유를 짐작케 한다.

 

검붉은 얼굴, 맑은 눈빛... 거기에는 '생명'이

 

18일 오후 1시. 한강 잠실대교 수중보 남단 근처에 위치한 공터에선 ‘운하백지화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이 주최하는 '생명의 근원 강 지키기 시민대행진'이 열렸다.

 

이 행사는 지난 12일 경기도 김포 애기봉을 출발해 6박7일째 차가운 길을 걸으며 '한반도운하 추진 반대'의 뜻을 펼치고 있는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단(단장 이필완 목사)을 격려하고, 운하 건설이 가져올 각종 폐해를 시민들에게 알린다는 취지에서 준비됐다.

 

오후 1시 10분. 참석자들의 박수 속에 잠실대교 아래에 도착한 순례단의 얼굴은 겨울바람에 시달린 탓인지 거칠고 검붉었다. 하지만, 승려와 목사·신부 등으로 구성된 그들의 눈빛만은 햇살을 튕겨내는 강물처럼 맑았다.

 

"KTX로 3시간이면 달려갈 수 있는 부산까지 3박4일이 걸리는 운하를 만들겠다는 것은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것"이라는 행사 사회자의 말에 참석자들은 한 번 더 시린 손을 마주 부딪쳤고, 순례단을 마중 나온 환경운동연합 윤준하 공동대표가 사람들 앞에 나섰다.

 

"종교인들이 중생을 지키기 위해 길을 나서는 걸 보며 마음이 뜨거웠다. 국민의 절대다수가 반대하는 운하건설을 왜 부득불 추진하겠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수중보를 가리키며) 저걸 부숴야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운하다.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물을 붙잡는 것은 마음을 붙잡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한다. 순례단이 나선 이 길이 생명의 사회에 이르는 고행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고맙기 그지없다."

 

윤 공동대표에 이어 순례단을 이끌고 있는 이필완 단장이 바로 옆 강을 등지고 섰다. 이 단장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100일간 한강과 낙동강·영산강 등을 순례하겠다"며 "목사와 스님, 신부가 한마음이 돼 종교인의 양심으로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야 한다"는 의지를 전했다.

 

이에 덧붙여 이 단장은 "(한반도운하 건설은 올바른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고, "운하를 막을 수 있는 힘은 우리가 아닌 국민 여러분이 가졌으니 뜻을 함께 하자"고 부탁했다.

 

순례단 "국민의 뜻을 모아 운하건설을 막아달라"

 

순례단과 환경운동단체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참석자들은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이라 씌어진 노란 깃발 아래 모여 자신들의 염원을 담은 플래카드를 직접 만들었다. '생명이 근원, 강을 지키자'라는 커다란 플래카드에 참석자들의 작지만 선명한 바람이 새겨졌다.

 

"자연은 인간이다. 강토의 파괴는 인간의 파괴이다."

"자연은 인간보다 위대하다."

 

이날 '생명의 근원 강 지키기 시민대행진’에 참석한 이들은 "사람들이 먹는 식수가 될 강물 위로 배를 띄우겠다는 발상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고, "태안 기름유출 사고처럼 불행한 일이 운하에서 발생한다면 2500만 국민의 상수원이 파괴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행사의 마지막 순서. 순례단과 함께 '한반도운하 건설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하며 6박7일간 같은 길을 걸어온 박남준 시인이 운하 건설이 가져올 비극을 예측하는 시를 낭송했다.

 

"강 아래 물풀들이 죽어가고 새들은 갈 곳을 잃을 것이다, 물고기들의 죽음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며 한반도대운하의 야만성을 지적한 박 시인은 "운하는 현실이 아닌 악몽에 그쳐야 한다"고, "강은 생명이어야 한다"고 낮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설득했다.

 

"우리는 여러분의 뜻을 모아 대신 걷고 있을 뿐이다, 그 뜻이 국민 모두에게 전달된다면 이명박 당선인도 '운하 건설 중지 선포'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말을 남기고 순례단은 다시 가야할 기나긴 길을 재촉했다. 다음 목적지는 서울 강동구 암사동 선사유적지라고 한다.

 

순례단과 시민들이 긴 행렬을 이루며 잠실대교를 떠나갈 무렵, 수중보 근처에 내려앉아 그들을 지켜보던 물새 몇 마리가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다. 미물인 새들 또한 순례단의 뜻과 길을 따르려는 것이었을까?


태그:#순례단, #운하, #잠실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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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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