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 헤비급 결승전. 문대성(동아대 교수)은 2m가 넘는 상대를 뒤후려차기 한방으로 KO승을 거뒀다. 그 뒤에는 명장 김세혁 감독(삼성에스원)이 버팀목 됐다.

김세혁 감독은 수십 년간 태권도 지도자로 수많은 국보급 선수를 배출한 감독이다. 그런 그가 지난해부터 ‘말썽’이다. 태권도 명장이라는 수식어에 걸맞지 않은 경솔한 발언과 행동으로 태권도계에 비난을 사고 있다.

최근 올림픽 파견 국가대표 1차 예선전에서 소속팀 선수간 경기에서 이기고 있는 선수에게 기권 의사도 묻지 않고 코치에게 지시해 수건을 던지게 했다. 태권도 선수에게 올림픽은 꿈의 무대다. 그런 꿈을 다른 사람이 아닌 소속팀 지도자가 포기하게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심지어 그는 <국제태권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기권을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발뺌했다. 코치가 스스로 기권을 시켰다는 것이다. 이는 명백한 거짓말이다. 당시 김 감독이 코치에게 기권을 지시하는 육성이 고스란히 담긴 영상자료가 인터넷을 떠돌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에스원 김세혁 감독

삼성에스원 김세혁 감독 ⓒ 무카스미디어

이와 관련, 김세혁 감독은 당시 판단은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팀 감독으로서 올림픽 선발 가능성이 높은 선수를 이기게 한 것이란 것. 또 "해당 선수와 부모가 이해해 줬다. 앞으로 2차전이 남아있기 때문에 기회가 전혀 없는 게 아니라는 등 팀 전략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뿐 아니다. 지난해는 자신이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실업연맹이 주최한 대회에서 심판판정에 불만을 품고 “병신같이 심판을 본다”는 등 심판부를 향해 독설을 퍼부으며 강도 높게 항의했다. 이에 심판부는 김 감독 발언에 격분, 경기를 중단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문제는 그 다음. 올림픽세계예선전 파견 국가대표선발전이 있었다. 김 감독은 지난대회에서 심판들에게 항의가 문제가 된 때문인지 고참급 심판들에게 ‘갈비세트’, 중진심판들에게 ‘영양제’ 등을 돌렸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태권도계 자정운동을 주장하자 곧바로 인터넷 게시판 등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결국 김 감독은 사실을 인정하고 여론에 뭇매를 맞아야 했다.

김세혁 감독은 분명 자타공인 태권도 명장이다. 월드스타 김제경을 비롯해 김경훈, 이선희, 문대성, 장지원 등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모두가 그를 거쳐 갔다. 지도력은 세계가 인정하지만 여러가지 면에서 구설수에 올라 있다.

태권도는 무도 스포츠다. 선수뿐만 아니라 지도자도 역시 스포츠맨십에 어긋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승부는 정정당당하게 겨뤄 실력이 우수한 선수가 이겨야 한다. 평소 공정한 판정을 부르짖던 김 감독이 소속팀 선수에게 기권을 지시한 것은 분명히 비판받아 마땅하다.

김세혁 감독이 태권도 종주국 명장이라는 명성을 이어가기 위한다면 지난 선발전의 실수에 대해 해당 선수와 부모에게 정중하게 사과해야 한다. 또한 2차 선발전에서 참가선수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향후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공개사과를 해야 한다. 그래야만 태권도 경기장이 올바르게 변화될 수 있다.

 삼성에스원 유경아, 올림픽선발전서 경기포기 
지난 2000년 5월 시드니올림픽 여자 대표 최종선발전. 당시 여자 -57kg급은 한국체육대학교 동기생인 정재은, 장지원 그리고 인천시청 강해은의 3파전이었다. 정재은과 장지원의 마지막 경기를 앞둔 상황에서 세 선수의 전적은 강해은 1승 1패, 정재은 1승, 장지원 1패였다.

이 경기에서 장지원이 이길 경우 세 명 모두 1승1패로 동률을 이뤄 재대결을 펼쳐야 했다. 꿈의 무대인 올림픽을 앞두고 한 치의 양보조차 있을 수 없는 상황. 장지원은 경기를 우세하게 끌고 가고 있었다. 판정으로 갈 경우 장지원의 승리가 조심스럽게 예측됐다.

그러나 종료 30초를 남겨두고 설마 하던 일이 터졌다. 느닷없이 장지원의 코너에서 흰색 수건을 던져졌다. 기권의 표시였다. 그렇게 경기는 끝나고 자연스럽게 정재은이 2승으로 시드니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었다.

지난 14일 국기원에서 열린 ‘2008 베이징 올림픽 파견 국가대표선수선발 1차 예선대회’. 8년전 필름을 되감아 정재은과 장지원의 경기를 다시 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 일이 벌어졌다.

이날 여자 -67kg급에서 삼성에스원 소속 유경아와 안새봄이 맞붙었다. 경기는 유경아가 3회전 중반까지 4-1로 앞서고 있었다. 당시 경기 흐름과 남은 시간을 생각했을 때 누가 봐도 유경아의 승리가 확실시 됐다.

경기가 끝나갈 무렵 ‘설마’라고 생각했던 일이 경기장을 찾은 태권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졌다.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삼성에스원 김세혁 감독은 경기장에 있던 김용수 코치에게 고함을 지르며, 유경아의 기권을 지시했다.

 1난 14일 베이징올림픽 파견 국가대표 예선 1차전에서 문제가 된 안새봄(왼쪽)의 경기 모습.

1난 14일 베이징올림픽 파견 국가대표 예선 1차전에서 문제가 된 안새봄(왼쪽)의 경기 모습. ⓒ 무카스미디어


이 모습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아연실색했고, 김용수 코치는 어쩔 수 없이 수건을 던져 유경아에게 경기를 포기시켰다. 그렇게 결승에는 안새봄이 올라가 2위를 차지하며, 국가대표 최종평가전 출전 자격을 얻었다.

유경아 ‘경기포기’ 사태에 대해 김세혁 감독은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아픈 일이다. 하지만 팀의 전략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라며 “경아와 부모님도 내 뜻을 이해주었다. 아직 2차 선발전도 남은 상황에서 지도자로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한 태권도 감독은 “도덕 불감증이 가져온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만약 태권도가 아닌 다른 운동 종목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난리가 날 것”이라며 “이번 일은 태권도계의 썩어 빠진 관행 같은 것이다. 이런 문제는 법이 아닌 도덕적인 문제를 담당하기 위해 만든 대한태권도협회(KTA) 윤리위원회 같은 곳에서 하루 빨리 뿌리 뽑아야 한다”고 성토했다.

경기를 지켜본 한 태권도인은 “올림픽 정신인 ‘스포츠맨십’을 저버리는 비인간적인 행위”라며 “성적 우선주의를 부르짖는 일부 몰지각한 지도자들의 이런 행동 때문에 어린 선수의 가슴에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고 비판했다.

그동안 태권도계에선 특정 선수 밀어주기가 암암리에 관행처럼 행해져 왔다. 만약 이번 경기포기 사태도 늘 그렇듯이 조용히 넘어 간다면 앞으로 태권도는 영원히 3류 스포츠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할 것이다.

▲ "뭐해 빨리 수건 던져" 지난 14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연달아 배출한 태권도 명장 김세혁 감독(삼성에스원)이 자신의 제자간 경기에서 기권을 지시해 논란이 되고 있다. ⓒ 무카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종합무술채널 무카스미디어(www.mooka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첨부파일 선발전-1.wmv
태권도 국가대표 올림픽 에스원 김세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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