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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km 장거리 도보 출발합니다.
 35km 장거리 도보 출발합니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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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한강변을 따라 35km를 걸었습니다. 우와, 정말 힘들었습니다. 가뿐하게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걸어보니 나중에는 거의 극기 훈련을 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20km를 넘게 걸으니 종아리가 묵지근해지면서 발뒤꿈치가 슬슬 아파져 오기 시작하더군요.

30km를 걷자 묵지근한 느낌이 허벅지까지 올라오면서 걸음을 옮기기가 힘들어집니다. 만일 혼자 걸었다면 30km 지점에서 털썩 주저앉았을지도 모릅니다.

이번에도 '인도행' 회원들과 함께 걸었습니다. 같이 걷는 분들이 조금도 지친 기색 없이 '중단 없는 전진'을 계속하니 다리가 무겁거나 말거나 굳세게 따라갈 수밖에 없었지요. 제가 '깡다구'는 조금 있거든요. 덕분에 끝까지 걸을 수 있었습니다.

'인도행'은 '인생길 따라 도보여행'을 줄인 말로 도보여행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틈이 날 때마다 걷는답니다. 걷는 길은 그때그때 달라요.

'인도행' 회원들이 35km를 걷는다고 해서 같이 걸었습니다. 2박3일 혹은 3박4일의 등산은 가봤지만 하루에 35km를 걸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당산역에서 35km 장거리 도보 출발~

35km 도보가 시작된 곳은 당산역입니다. 당산역 4번 출구로 나가면 한강시민공원으로 가는 길이 나옵니다. 그 곳에서 이날의 도보여행이 시작됩니다. 시작은 가벼웠으나, 끝은 결코 가볍지 않았지요. 하반신을 엄청나게 혹사했으니까요.

자, 이제 35km를 걸어봅시다. 오전 10시에 당산역에서 한강공원 방향으로 나가 서강대교 쪽으로 걷기 시작합니다. 조금 걷다가 포장된 길을 벗어나 풀도 있고 나무도 있는 공터로 가서 가벼운 체조로 몸을 풉니다. 많이, 오래 걸어야 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의 각오를 다질 시간이 필요한 것이지요.

출발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합니다. 시선을 들어 한강을 보니 수상택시 한 대가 물살을 가르며 빠르게 지나갑니다.

한강변을 걸으니 강과 함께 녹지공간을 볼 수 있어 좋습니다. 벚꽃이 지자 영산홍이 흐드러지게 피어났습니다. 조팝나무는 꽃이 지고, 나뭇잎이 무성하게 돋아났더군요. 민들레가 참 많이 보입니다. 민들레를 이렇게 많이 보기는 참 오랜만입니다. 초록빛 풀 사이에서 피어난 노란 꽃이 보기 좋습니다. 토끼풀도 많이 보입니다. 예전에 네잎클로버가 행운을 가져준다고 해서 토끼풀이 보일 때마다 찾았는데 한 번도 찾은 적이 없답니다.

서강대교를 지납니다. 이번에 걸으면서 새삼스럽게 느낀 것이지만 한강에는 정말 다리가 많습니다. 언제 저렇게 많은 다리를 놓았나,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노량진에 살았기 때문에 한강 다리는 한강대교가 가장 익숙합니다. 요즘도 날마다 한강대교를 두 번씩 건너지요. 아침에 출근할 때 한번, 저녁에 퇴근할 때 한번. 그만큼 익숙한 강이 한강이지요.

밤섬이 보이는 곳을 지나갑니다. 걷는 발걸음은 경쾌합니다. 걸어야 할 길은 많이 남았지만 중압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장거리 도보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르기 때문이겠지요.

왼쪽으로 한강이 펼쳐지고 오른쪽 방향에서는 여의도의 63빌딩과 쌍둥이 빌딩이 보입니다. 서강대교를 지난 지 십 분만에 마포대교를 지납니다. 하루에 몇 명이나 한강다리를 건너나, 궁금해집니다.

한강에는 몇 개의 다리가 놓여 있나

길은 끝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어져 있습니다.
 길은 끝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어져 있습니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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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 제법 따갑습니다. 비가 온 뒤라 날씨가 선선해져 긴소매 옷을 겹쳐 입었더니 땀이 나기 시작합니다. 겉옷을 벗어 배낭에 넣고 걷습니다. 저는 모자만 썼지만 다른 사람들은 고글과 얼굴마스크로 중무장을 했습니다. 얼굴마스크를 준비하지 않은 일행 중 한 사람은 등산용 초록색 손수건을 꺼내 눈만 남기고 얼굴을 싸맵니다.

원효대교 밑을 지납니다. 어린아이들이 강변의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단체로 놀러 나온 모양입니다. 수상택시 승강장 표지판이 보입니다. 영등포수난구조대 건물도 보이네요. 민속놀이 마당도 지나갑니다. 그네가 있고 널뛰는 곳도 있습니다. 일행이 없이 혼자 나왔다면 그네에 앉아 보기라도 했을 텐데 그냥 눈으로만 보면서 지나칩니다.

예쁘게 쌓은 돌무더기가 보입니다. 어딜 가나 돌무더기는 빠지지 않고 있네요. 작정을 하고 쌓은 듯 정갈한 모습입니다.

길은 끝이 보이지 않고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걷다가 발돋움을 해서 끝을 찾아보는 부질없는 짓도 해봅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이날 한강변을 걸으면서 길을 보고 또 보았습니다. 곧게 뻗은 길도 있고, 구부러진 길도 있고,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더군요.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도 있고, 흙길도 있고,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도 있습니다. 자전거 길도 있고, 산책길도 있고, 자동차 길도 있네요.

다양한 길을 걸으면서 사람 사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삶 속에는 다양한 길이 숨겨져 있어 다양한 곳으로 사람들을 안내합니다. 그 길에는 걸어본 길과 가지 않은 길이 있게 마련이고,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는 동경과 후회와 아쉬움과 안타까움과 미련을 품기도 합니다.

걷다 보니 역시 생각이 많아집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평일인데도 무리지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걷는 사람들도 많았지요. 물론 주말에는 더 많은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어떤 날은 사람에게 치일 정도가 되기도 합니다.

한강에는 사람들이 많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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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를 개줄에 묶고 달리는 남자가 보입니다. 개줄이 팽팽하게 당겨진 것을 보니 강아지는 별로 달리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강 건너편에는 고층 아파트가 잔뜩 들어서 있습니다. 조망권이 좋은 아파트는 값도 제법 나간다지요.

어디선가 향냄새가 풍기고 있습니다. 어디서 나는 냄새지, 하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립니다. 이번에는 방울 소리와 함께 굵은 여자 목소리가 들립니다. 어, 뭐 하는 거지? 다리 아래 으슥한 곳에 한 여자가 한 손에는 부채를 다른 손에는 방울을 들고 서 있는 것이 보입니다. 여자는 강을 향해 서 있어서 저는 여자의 뒤통수만 볼 수 있습니다. 그 옆에는 세 사람이 다소곳이 앉아 있네요.

자세히 보니 생수병도 있고 막걸리 병도 있고, 음식을 차려놓은 것도 살짝 보입니다. 굿을 하는 것 같은데 정식은 아니고 약식인 듯합니다. 한강변에 여러 차례 나왔지만 저런 광경은 처음 봅니다. 마음 같아서는 가까이 다가가서 구경하고 싶지만 꾸욱 참고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다른 일행은 저만치 앞서 가 버렸고, 혼자만 뒤로 처졌기 때문이지요.

이날 저는 계속해서 혼자만 처졌습니다. 제가 낼 수 있는 최고속도로 걷는 것 같은데 잘 걷는 사람들을 따라가기에는 부족해도 한참 부족했나 봅니다. 그렇다고 걸음을 빨리해서 헉헉거리면서 따라가다가는 탈이 날 것 같아 그냥 그 속도를 유지했습니다.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려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진다면서요.

자전거가 달리기 좋은 길입니다.
 자전거가 달리기 좋은 길입니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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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을 지나 걷다 보니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길이 나옵니다. 이 길은 길이가 제법 길어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아주 좋습니다. 일종의 자전거 고속도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전거 속도를 마구 높이면서 달리면 아주 신나거든요. 자전거를 타고 몇 번 지나가 보긴 했지만 걷는 것은 처음입니다.

일행 중의 한 사람이 멈춰 서서 등산화 끈을 질끈 동여매는 것이 보입니다. 걷다 보면 신발끈이 풀리기도 하고, 느슨해지기도 하지요. 그럴 때면 잠시 쉬면서 신발끈과 함께 마음도 조여 주는 것도 좋겠지요. 

유채꽃이 예쁘게 피어 있는 곳도 지나고, 동작대교 아래도 지납니다. 이날 지나간 한강 다리는 철교 2개를 포함해서 전부 16개입니다. 반포대교, 한남대교, 동호대교, 성수대교, 영동대교, 청담대교, 잠실대교, 올림픽대교, 천호대교 등.

반포 서래섬 표지석을 지나갑니다. 1986년 한강종합개발 때 만든 인공섬이랍니다. 작년 여름에 이곳에서 낚싯줄에 발이 묶여 움직이지 못하는 비둘기를 구한 적이 있습니다. 그 비둘기 아직도 살아서 잘 지내고 있으려나.

포장도로를 걷다가 포장도로 옆의 흙길 위로 올라갑니다. 발바닥에 와 닿는 느낌이 확실히 다릅니다. 부드러운 융단 위를 걷는 것 같습니다. 포장된 길은 오래 걸으면 종아리부터 묵지근해 집니다. 하지만 흙길은 그렇지 않지요.

걷기 좋은 흙길, 부드러운 융단 같아

신발끈을 동여매고 숨을 고릅니다.
 신발끈을 동여매고 숨을 고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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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시작한 지 세 시간. 일행 세 명이 긴 나무의자에 앉아 양말을 벗고 발을 만지는 모습이 보입니다. 발에 조금씩 무리가 가는 것 같은데 표정은 밝습니다. 걷기가 즐거운 것이지요.

이 날 도보여행에서 35km를 완주한 사람은 저를 포함해서 전부 네 명인데 저만 빼고 다들 발에 물집이 생겼습니다. 다들 물집이 생겼다기에 저도 물집이 생기는 것이 아닌지 은근히 걱정을 했는데 끝까지 물집이 생기지 않아 정말 다행이었지요.

가까스로 만난 일행은 멀어져 눈앞에서 사라지고 저는 다시 혼자 남았습니다. 길가의 표지판도 들여다보고, 지나치는 한강 다리들도 카메라에 담고, 자전거 타고 무리지어 지나가는 사람들도 쳐다보면서 무리하지 않고 걷습니다.

오후 2시경에 영동대교를 지납니다. 슬슬 지루해지면서 배가 고파집니다. 점심은 언제 먹는 거지. 한데 일행은 보이지 않습니다. 점심을 먹으려면 좀 더 기다려야 되나 봅니다.

어도를 관찰할 수 있는 나무집이 보입니다. 찢어질 것처럼 입을 벌린 분홍 물고기 모형이 보입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한강변에는 볼만한 이런저런 것들이 제법 있네요.

허걱, 이날따라 한강에 바람이 제법 많이 분다 싶었는데 그만 바람에 쓰고 있던 모자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모자가 떨어진 곳은 성내천 아래로 주우러 내려가 보니 강 건너 닿을 수 없는 곳입니다. 한참 동안 모자를 내려다보다가 눈물을 머금고 돌아 나옵니다. 아깝네요.

햇빛을 가려주던 모자가 없으니 땡볕에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하는 수 없이 배낭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만 빼고 얼굴을 가립니다. 어쩝니까. 이렇게라도 해서 햇빛을 조금이라도 피해야지요.

바람이 모자를 빼앗아 가다

올림픽대교를 지난 뒤 오후 세시 반경 겨우 발견한 매점 앞에서 컵라면과 샌드위치, 김밥 등으로 점심을 먹습니다. 걸을 때는 몰랐는데 앉아 있으려니 불어대는 바람 때문에 춥습니다. 배낭에 넣어두었던 겉옷을 꺼내 입습니다.

점심을 먹고 앉아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와 묻습니다.

"여행 준비 중이십니까?"

도보여행을 준비하면서 걷기 연습을 하는 것으로 보였나 봅니다. 그렇게 물어온 사람이 도보여행을 준비 중인가 봅니다. 도보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니 꿈이 장거리 도보여행이라고 합니다. 서울부터 부산까지 걸어보고 싶다, 산티아고에 가고 싶다, 제주 올레를 걷고 싶다…. 물론 '하고 싶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요기를 하니 든든해졌습니다. 푹 퍼져 있다가 일어서려니 종아리가 무겁습니다. 이쯤에서 그만 접고 돌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그럴 수야 없지요. '못 먹어도 고'를 외치며 다시 걷기 시작합니다.

광진교를 건넙니다.
 광진교를 건넙니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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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광진교입니다. 몇 km를 걸었는지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광진교를 건넙니다. 광진교는 '걷고 싶은 다리' 만들기 공사 중이네요. 공사가 끝나면 다시 와 걸어서 건너고 싶어집니다.

광진교를 건너니 서울숲 8km 표지판이 나옵니다. 야호, 이제 8km 남았다. 힘내자.

그런데, 30km가 고비더군요. 정말 그만 걷고 싶어집니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정도는 아닙니다. 걸을 힘이 남아 있다는 얘기가 되겠죠? 그럼 더 걸어야겠지요.

광진교를 걸어 한강을 건너왔더니 아까 지나온 한강 다리를 되짚어서 지나가게 됩니다. 성수대교까지 가면 그곳에서 서울숲으로 빠지는 길이 나온답니다. 성수대교가 어딘가 걸으면서 가늠해봅니다. 아, 너무 멀리 있군요. 언제 저기까지 가나.

한강에는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언제 나타났는지 윈드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강 위에 가득합니다. 멀리서 보니 윈드서핑용 돛이 잠자리 날개처럼 보입니다. 바람이 상당히 세차게 붑니다. 바람이 많이 불어야 윈드서핑을 할 수 있겠지요. 바람을 이용해서 강물 위를 이리저리 미끄러지는 사람들을 보니 재미있습니다.

서울숲에서 꽃사슴들을 보다

드디어 성수대교입니다. 서울숲 길로 접어드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집니다.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사슴들이 노니는 것이 아닙니까. 우와, 꽃사슴이다. 서울숲에서 꽃사슴을 방목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한두 마리가 아닙니다. 걸음을 멈추고 사슴 구경을 합니다.

드디어 목표지점에 도착했습니다. 35km 걷기가 끝난 것이지요.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6시 25분입니다. 당산역에서 오전 10시에 출발했으니 8시간 25분이 걸린 셈입니다. 중간에 식사하고 쉰 시간이 30분쯤 되니까 얼추 8시간을 걸었지요.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35km를 다 걷고 나면 안도감과 더불어 성취감이 느껴질 거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네요. 집에 어떻게 가야 하나, 까마득해집니다.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지고 긴장마저 풀린 다리를 이끌고 집까지 무사히 가야 이날의 도보여행이 완전히 끝난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습니다.

도착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인 셈이지요.

덧붙이는 글 | [걸은 길] 당산역 4번출구 - 한강시민공원 강변 산책로 따라 광진교까지 - 광진교 건너 - 서울숲길 가는 길 따라 서울숲까지.
[걸은 거리] 35km



태그:#도보여행, #당산역, #한강시민공원, #서울숲, #광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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