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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사암으로 된 사원 반데스레이

입장권을 사고서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크메르왕국 초기 유적지인 반데스레이(Banteay Srei/967년) 사원이다. 이국땅에서 처음으로 마주선 관광지 풍경은 길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노점 등 우리나라 유명관광지 주변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념품을 팔려고 "원달러"를 외치며 집요하게 따라오는 애들을 뒤로 하고 부서진 건물 잔해 안으로 발을 들여 놓는다.

반데스레이 들어가는 길 옆으로 기둥들이 줄지어 서있다.
 반데스레이 들어가는 길 옆으로 기둥들이 줄지어 서있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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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조각은 나무를 깎아 놓은 듯 하다.
▲ 탑 벽의 화려한 조각 섬세한 조각은 나무를 깎아 놓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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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지에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진 사원. 그래서 '여인들의 성채'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입구에서부터 길게 늘어선 사각 기둥들. 남자의 거시기를 상징한다고 한다. 정글에 방치된 사원인지라 제 모양을 갖춘 건 거의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군데군데 문을 만들었는데, 문 위로 힌두교 신화를 조각한 정교한 조각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사원 문 위로 섬세하면서도 살아 움직이는 듯한 조각이 새겨져 있다.
▲ 아름다운 조각 사원 문 위로 섬세하면서도 살아 움직이는 듯한 조각이 새겨져 있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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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와 인간세계를 구분한다는 해자는 물이 말라버렸다. 해자를 건너 사원으로 들어간다. 붉은 벽돌담으로 둘러싸인 사원 안에는 탑이 있다. 그 탑마다 새겨진 정교한 부조는 마치 살아있는 듯 섬세하다. 이러한 정교한 조각은 도굴되었던 아픈 역사를 간직하며, 지금의 화려한 탑으로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태양은 뜨겁게 내리쬐고 있다. 지금 온도가 얼마 정도 되는지 물으니 40도 정도라고 한다. 땀이 줄줄 흐른다. 붉은 돌탑 사이에 서있는 게 화로 속에 들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안내인은 열심히 힌두교 신화를 설명하고 있다. 쉽게 설명하면 그리스로마신화와 비슷하다고 한다. 어려운 신들의 이름이 머리에 들어올 리가 없다. 그저 아름다운 부조 조각에 마음을 빼앗길 뿐이다.

넓은 평원에서 무얼 먹고 살아가는지...

다음 일정은 롤로스(Roluos) 유적군 답사다. 롤로스 유적군은 씨엡립 남동쪽에 위치한 3개의 사원(바콩, 롤레이, 프레야코)으로 이루어 졌으며, 과거 크메르 문명의 고대 중심지다. 비포장도로를 한참 타고 간다. 우리가 타고 있는 차는 17년 된 소형버스지만 얼마나 애지중지 했는지 에어컨도 시원하고 내부도 새차처럼 깨끗하다.

길 양 옆으로 메마른 논이 끝없이 펼쳐진다. 야자나무가 군데군데 서있는 광경이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내가 생각하는 영화는 미국 우월주의를 상징하는 <람보>나 <코만도> 등이다. 영화 속에서는 수많은 군인들이 총질하면서 쫓아오지만 총알 하나 맞지 않고 넓은 평원을 잘도 도망 다닌다. 한때 그런 영화를 보고 열광했던 모습이 우습기만 하다.

다시 포장도로를 만난다. 이 길을 따라가면 수도인 프놈펜이 나온다고 한다. 여전히 띄엄띄엄 농가가 보인다. 무얼 먹고 살아가는지…. 하지만 걱정이 없다고 한다. 이곳은 넓은 농토가 있고 우기가 되면 논에다 씨앗을 뿌리고 거둬들이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먹는 것은 해결이 된다고 한다. 덧붙여서 행복지수도 무척 높다고 한다. 행복지수는 경제수준이 낮은 나라일수록 높다고는 하지만….

붉은 벽돌이 속살을 드러낸 롤레이 사원

탑 네개가 덩그렇게 서있다.
▲ 롤레이 사원 탑 네개가 덩그렇게 서있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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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여행을 가면 이동시간을 계산하는데 이곳에 오고서는 시간 개념이 없어졌다. 마음이 편해서 그런가 보다. 포장도로에서 벗어나니 롤레이(Lolei/893년) 사원이다. 높은 기단 위에 4개의 탑이 서있는데 들어가는 곳은 저수지였다고 한다. 크메르왕조는 저수지, 해자 등 물을 잘 이용했는가 보다.

탑은 벽돌을 쌓고 외벽에 사암으로 부조를 붙였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 바깥 부조들은 떨어져 나가고 붉은 속살을 드러내 놓고 있다. 그 탑 위로 풀들이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어 아주 고풍스러운 느낌만 배어나오고 있다.

탑 옆으로는 커다란 부처님을 모신 사원이 있는데 승려들이 생활하고 있다. 이곳 유적지 중 유일하게 승려들이 기거하는 사원이란다. 행자승은 나와 눈길이 마주치자 멋쩍게 웃는다. 나는 부끄럽기만 하다. 같이 웃어주지 못하는 게.

풀밭에 흰소가 풀을 뜯고 있다. 기념사진이나 찍자고 애들에게 소 앞에 서보라니까 머뭇머뭇한다. 그러다 소가 머리를 흔들자 놀라서 기겁을 한다. 그래도 애들은 유적지 구경보다는 이런 장난에 더 즐거움을 느낀다.

사진 한장 찍으려다 애 잡겠다.
▲ 풀을 뜯고 있는 소 사진 한장 찍으려다 애 잡겠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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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기 위해 다시 시내로 나왔다. 오후는 쉬었다가 여행을 한다고 한다. 애들은 그사이를 못 참고 수영장에 들어가서 물놀이를 즐긴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흙먼지를 날리더니 엄청난 소나기(squall)가 내린다.

파괴의 신을 위한 신전 프레야코

오후 4시. 다시 롤로스 유적지로 향했다. 비는 맞아도 괜찮을 정도로 적어졌다. 도착한 곳은 프레야코(Preah ko/879년)로 '신성한 소'라는 뜻의 사원이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여자 꼬마 애들이 다가온다. 그러고는 손가락에 풀로 만든 반지를 끼워 준다. 잠깐의 춤동작과 함께. 얼떨결에 호의를 받기는 했는데, 잠시 후 두 손을 모으고 따라온다. 내가 손을 저으니까 무척 실망한 표정이다.

그 표정이 너무 안쓰러워 1달러를 건넸다. 다시 손가락을 보니 무척 비싼 반지다. 큰아들 재형이는 왜 1달러를 주었느냐고 묻는다. 마땅히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계산이 되지 않는다. 그냥 작은 호의를 받았고 그들이 원하는 걸 내어 줄 수밖에 없었다.

호의를 베푼 대가를 기다리고 있다.
▲ 풀꽃 반지를 끼워 주는 애들 호의를 베푼 대가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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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사암에 정교한 조각을 새겼다. 오랜 세월로 제모습을 잃었다.
▲ 프레야코 사원 벽 부조 하얀 사암에 정교한 조각을 새겼다. 오랜 세월로 제모습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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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야코 사원은 롤레이 사원보다는 조금 나아보이지만 그게 그거다. 안내인은 또 열심히 사원의 내력을 설명하고 있다.

힌두교에는 세명의 주신이 있는데 창조의 신 '브라흐마', 우주 질서의 신 '비슈누', 파괴의 신 '시바'가 있다고 한다. 프레야코는 파괴의 신인 시바를 위해 지어진 신전이라고 한다. 시바 신은 난디(Nandi)라는 흰색 황소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 사원 마당에는 사암으로 만든 황소상이 탑을 바라보고 앉아 있다.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보편적인 종교라면 창조의 신이나 질서의 신을 위한 신전을 만들어야 할텐데, 파괴의 신을 위해 사원을 짓는 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인간관계와 연관해서 거꾸로 접근하면 답이 나온다. 왕은 정복자로서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전쟁을 수행한다. 다시 말하면 파괴의 신과 동일한 일을 한다. 결론은 왕을 위한 신전인 셈이다.

바콩의 웅장한 탑을 넘어서

지금까지는 작은 사원이었고 이제부터 웅장한 크메르왕국의 유적을 본다고 한다. 조금 이동하여 바콩(Bakong/881년) 사원으로 들어섰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우뚝 선 첨탑이 보인다. 해자도 원형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물이 차 있다. 신전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머리가 7개 달린 뱀의 형상을 한 나가(Naga)가 부채를 활짝 편 듯 지키고 있다. 나가는 물의 정령이며 탑의 보호신이라고 한다.

해자를 지나 신전으로 들어가는 길을 지키고 있다.
▲ 뱀의 형상을 한 나가 해자를 지나 신전으로 들어가는 길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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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탑 같이 높은 신전이 보인다.
▲ 바콩사원 들어가는 길 첨탑 같이 높은 신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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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자를 건너 신전으로 걸어 들어간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피라미드 같이 커다란 구조물이다가온다. 5단으로 쌓아올린 끝에는 커다란 탑을 세웠다. 힌두교에서 시바 신이 살고 있다는 메루산의 형상을 표현한 탑이라고 한다. 가파른 계단을 타고 올라간다. 각 단마다 코끼리와 사자 등 동물조각을 세웠다. 이슬비는 계속 내리고 있다. 청량감이 느껴진다. 위에서 내려 본 사방은 끝이 닿아있는 지평선이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커다란 탑을 만난다.
▲ 바콩사원 탑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커다란 탑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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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방향으로 내려가니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비슷비슷한 돌탑만 보고 다닌 것 같다. 힌두교에 대한 지식이 없을뿐만 아니라 바쁜 일정으로 열심히 쫓아다니기만 한 한 하루다.

아버지는 너무나 힘들어 하신다. 좋은 구경시켜 드리려고 이 먼 곳까지 왔는데 더운 날씨에 힘이 부치셨을 게다.

애들은 마냥 즐겁기만 하다. 윤성이는 비슷한 또래의 애들이 물건을 파는 걸 보고 버스 안에서 따라한다. "원달러". "싸다."

나는 애들에게 그걸 웃음거리로 만들면 안 된다고 했다. 우리나라도 해방과 전쟁을 겪으면서 이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산 적이 있었다고 했다. 윤성이도 안다고 한다. 더이상 하지 않는다.

머나먼 이국땅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보냈다.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생각에 잠긴다. 번잡하지 않은 시골길을 따라가며 찾아간 한적한 풍경들은 나에게 지속적인 유혹을 한다. 남국에서 살아도 괜찮겠다고.


태그:#씨엡립, #앙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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