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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증도와 재원도 사이 병어잡이
 신안 증도와 재원도 사이 병어잡이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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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으로 반짝이는 병어가 금방이라도 바다로 뛰어들 태세다. 지난 밤 8시에 출항해 새벽 4시까지 밤새 그물질을 해 잡은 놈들이다. 병어 경매를 막 끝낸 중매인들도 하나 둘 승리호로 올라왔다. 인심 좋기로 소문난 전남 신안군 재원도 어촌계장 장씨의 배인 '승리호'에 병어판이 벌어진다.

큼지막한 덕자(덕대)와 병어를 손질해 썰었다.

"거기 보고 계신 분들은 다 내려오시오."

선창에서 구경하는 사람들까지 부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찰진 밥 위에 6월에 잡힌 병어 뱃살을 올리고 상추로 감싼다. 된장과 마늘, 고추를 빠뜨려서는 안 된다. 소주 한잔을 곁들이면 눈이 저절로 감긴다. 세상만사가 혀끝에서 녹아난다. 

기름 값은 오르고, 병어는 안 들고

기름값은 배로 오르고, 병어 어획량은 절반으로 줄었다. 출어를 포기하는 어민들이 늘어고 있다. 병어값이 비싼 이유다.
 기름값은 배로 오르고, 병어 어획량은 절반으로 줄었다. 출어를 포기하는 어민들이 늘어고 있다. 병어값이 비싼 이유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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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동안 병어잡이를 하고 있는 증도 검산마을 최씨는 "금년처럼 병어가 안 드는 것도 드문 일"이라며 마른 입에 담배를 문다. 세 통째 자망 그물을 털었지만 한 상자도 채우지 못했다. 괜히 동승한 것이 죄송스럽다. '혹시 부정을 탄 것은 아닌가.'

내 마음을 눈치 챘는지 그물을 감아올리며 "수온 탓인지 작년부터 병어가 잡히지 않고 있다"며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기름 값은 1/3이나 올랐는데 어획량은 1/3이 줄었으니…"라며 말끝을 흐린다. 아예 출어를 포기하는 어민들도 늘어가고 있다.

병어는 수면 바로 아래서 먹이 활동을 하며 생활한다. 수면에서 보일 듯 말 듯 그물을 설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수면 위로 그물이 올라오면 병어 대신 쓰레기만 가득 들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병어는 자망 외에 안강망, 각망 등으로도 잡는다. 최씨가 이용하는 자망은 물 흐름에 따라 하루에 네 번 그물을 볼 수 있다. 시간을 놓치면 병어들이 조류를 따라 빠져나가기 때문에 부지런해야 한다. 대신 어부들은 자투리 시간(2~3시간)을 이용해 토막잠을 잔다. 그렇게 잡은 신안 병어는 신선하고 단맛이 난다. 다른 지역 것보다 값도 높이 쳐준다.

수십 년 고기잡이를 한 최씨보다 갈매기가 먼저 그물 안 고기를 확인한다. 갈매기가 관심을 보인 그물엔 예외 없이 한두 마리라도 병어가 올라온다. 팔딱팔딱 뱃전을 두드린다. 살이 탱탱하고 뱃살이 볼록한 것으로 보아 알밴 놈이 틀림없다. 막 그물에서 올라온 녀석은 어른 한 뼘이 넘는다. 족히 3년은 자란 모양이다. 1년 된 병어는 반 뼘 정도에 이른다. 몸부림을 치던 병어는 기어코 투박한 젊은 선원의 손에 잡혀 바구니에 갇혔다.

서민들 대표 횟감, 6월 병어

따뜻한 밥에 뱃살을 올려먹는 병어회백반
 따뜻한 밥에 뱃살을 올려먹는 병어회백반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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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어는 우리 나라 서해, 남해, 일본 중부 이남, 동중국해, 인도양 등에서 서식한다. 5월에서 6월에 산란하며, 암초나 모래질의 수심 10~20m 바다에서 자란다. 특히 조류가 빠른 곳을 떠다니며 젓새우, 단각류, 요각류, 갯지렁이류 등을 먹는데 젓새우를 좋아한다.

병어는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이 즐겨 먹었다. <신동국여지승람>에는 전라도의 순천, 낙안, 보성, 광양, 흥양, 경기도의 수원, 인천, 안산 그리고 경상도 김해 지역에 토산물로 소개돼 있다. 특히 전라도 일대가 병어 주산지였다. 지금도 전라도 신안에서 잡히는 병어를 으뜸으로 친다. 이곳은 우리 나라 대표적인 젓새우 어장이다. 최씨가 그물을 넣은 재원도 바다는 사니질갯벌로 수심이 만조시 13m, 간조시 9m로 병어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다.

신안군이 병어 집산지 지도읍 송도에서 지난 6월7일~8일 개최한 병어축제
 신안군이 병어 집산지 지도읍 송도에서 지난 6월7일~8일 개최한 병어축제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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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어는 병치, 편어, 벵어, 벵에, 병단이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특히 전라도에서는 '병치'라고 부른다. 병어 생김새의 가장 큰 특징은 목이 없고 등과 배가 튀어 나오고 꼬리가 짧다는 것. <자산어보>에도 머리가 작고 목덜미가 움츠러 들어있고 모습이 일반 생선들의 모양과 달리 마름모형이라고 적혀 있다.

병어는 가시가 연하고 잔가시가 없고 살이 부드럽기 때문에 뼈 채 썰어 먹기 적당하다. 게다가 비린내가 나지 않고, 찜을 하거나 구웠을 때 통통한 살이 쉽게 가시와 분리되어 아이들이 먹기에 적당하다. 특별한 준비 없이 된장과 깻잎만 있으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대중적인 생선이다.

게다가 보관만 잘하면 1년 내내 먹을 수 있다. 승리호에 오른 관광객들이 비틀거린다. 술에 취한 것이 아니다. 병어 맛에 취하고 섬사람들의 인심에 취했기 때문이다. 달포 만에 휴식을 취하는 승리호도 비틀거린다. 

바닷고기는 잡는 것이 아니다. 그물에 드는 것이다. 그래서 용왕님께 많이 들게 해달라고 풍어제를 올리는 것이다.
 바닷고기는 잡는 것이 아니다. 그물에 드는 것이다. 그래서 용왕님께 많이 들게 해달라고 풍어제를 올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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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병어, #병치, #신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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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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