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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는 민주화 이후 오히려 담론이 사라졌다는 말이 있습니다. 진지하게 논의돼야 할 이슈들이 산적해 있는데도, 아예 쟁점으로 떠오르지 않거나 간혹 논쟁이 벌어지더라도 갈등만 증폭되는 현상도 보입니다. 담론의 복원을 위해 어느 때보다 건전하고 창의적인 언론활동이 요청되는 시기입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은 매체창업 또는 칼럼과 프로그램 제작을 통해 우리사회의 건전한 담론형성과 의사소통에 크게 기여해온 분들이 진행하는 '저널리즘 특강'을 마련했습니다. 강의를 들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쓴 기사가 2008년 1학기에는 <오마이뉴스>에 연재돼 왔습니다. 일단 연재를 마감합니다. <기자 주>

 

"저널리즘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는 그것이 신뢰의 위기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매체마다 추구하는 이념이 다를지라도 보도의 기본은 객관성입니다. 보수와 진보언론의 싸움이 한창이지만 마지막 승자는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전달하는 매체가 될 겁니다."

 

인터넷언론은 물론이고 대안TV까지 나서서 촛불집회를 활발하게 보도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기성언론이 판매와 광고 양면에서 큰 타격을 입고 있다. 그들도 현재 상황을 위기로 받아들인다. 집회시위는 항상 있었고 보도 또한 처음이 아닌데, 언론이 위기에 처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학기 마지막 저널리즘 특강은 그 답을 찾아보는 시간이었다.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권영숙 박사가 예비 언론인들에게 '집회시위보도론'을 강의했다. 권 박사는 <한겨레> 기자 출신으로,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사회운동론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최근 귀국했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언론 보도는 곧 '현실'이다. 집회시위를 어떻게 보도하느냐에 따라 집회시위의 양상이 달라진다. 87년 박종철 고문치사 기사는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당시 기성언론의 적극적 시위보도는 민주화의 결실을 가져오는데 크게 기여했다. 기자는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자신이 쓴 기사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기도 한다.
 
사회운동을 연구하는 데도 언론이 보도한 기사나 사진은 중요한 자료다. 권 박사는 논문을 쓰면서 한국 언론의 집회시위 기사에 너무나 문제가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한다. 6하 원칙마저 무너진 기사가 자료로 이용되면 큰 문제라면서 기자의 책임을 강조했다.
 
"신문기사나 방송은 그날 끝나고 마는 게 아닙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리는 최초의 보도이면서 동시에 역사적 기록입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쓸 집회시위 기사가 그렇게 기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쓴 기사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집회시위를 정상적 정치행위로 봐야
 
그녀는 또 6하 원칙마저 저버리는 언론 보도는 소통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집회시위는 문제에 대한 진단, 원인, 해결책을 담고 있는데, 상당수 우리 언론은 누가 무엇을 했는지만 강조합니다. 보도를 하면 할수록 집회시위는 비합리적이고 비정상적인 집단행동으로 비춰지게 되는 거지요."
 
집회시위를 정상적인 정치행위로 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그녀는 말했다. 집회시위 보도는 사회에서 집회시위를 수용하는 정도에 영향을 받는데, 한국언론은 집회시위의 불법성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아 스스로 보도영역을 축소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파업처럼 경제적 이해를 둘러싼 집회시위를 정당한 권리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갈등이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악성으로 잠복하게 된다. 언론이 집회시위 자유를 규제하는 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대신 준법성의 잣대만 들이대면, 결국 '불법'만 부각된다는 것이다.
 
언론 내부 요인도 집회시위 보도에 영향을 미친다. 사회부 사건 담당 기자가 쓰는 스트레이트 기사는 매우 경직적이다. 6하 원칙 가운데 '누가', '무엇을'에 대해서만 쓴 기사를 보는 사람에게는 '왜'라는 팩트는 전달되지 않는다.
 
언론이 너무 정치적인 것도 문제다. 언론이 완전히 중립적일 수는 없지만, 한국에서는 지나친 이데올로기 편향이 언론의 신뢰를 떨어뜨렸다고 권 박사는 말했다. 특히 언론이 자본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국가 권력에 맞서는 것보다 더 까다로운 문제라고 덧붙였다.
 
"미국에 있을 때 '한국 언론은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과격하게 들릴 수는 있어도 저널리즘이 지켜야 할 금도가 형해화 했다는 측면에서 살아있다고 말하기도 힘듭니다."
 
그녀는 10년 전 기자로 일하면서 느꼈던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는 데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사회는 빠르게 움직이는데, 언론은 경직된 태도를 고수한다며, 기사의 형태를 바꾸거나 취재의 벽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미디어 현상과 정치 현상
 
언론 지형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기성 언론의 경직성은 최근 촛불집회 보도에서도 볼 수 있다. <오마이뉴스> 같은 인터넷언론이 많아졌고, <아프리카TV> <진보신당TV> 등 대안매체가 촛불집회를 생중계하면서 기성 언론에 도전하고 있다.
 
엄청난 미디어 현상인 동시에 정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다음 아고라'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도 기성언론 특히 보수언론은 거의 외면하고 있다. 기성 언론들의 의제 설정 능력이 약해지면서 언론의 위상도 바뀌고 있다.
 
"촛불시위 현장에 있었는데 번쩍번쩍 하는 거에요. 왜 이렇게 밝은가 해서 봤더니 모두 뭘 들고 찍어요. '다들 뭐하는 거야' 생각했습니다."
 
80년대에는 최루탄과 진압봉에 화염병과 돌멩이로, 지금은 아날로그 경찰에 카메라폰과 디카로 맞선다. 개인이 인터넷방송을 통해 집회를 생중계한다. 집회 참가자와 기자의 경계가 없다. '함께 가는' 보도는 촛불집회가 확산되고 새로운 이슈를 만들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기성 언론이 보도하기도 전에 생중계가 이뤄지는데, 지상파 방송이나 주류 활자매체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권 박사가 제시한 길은 2가지. 신문기사에 동영상을 넣는 식으로 새로운 매체를 활용하거나 심층 보도를 하는 것이다.
 
다양한 언론이 경쟁하는 상황에서 어느 매체를 선택할 것인지,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지, 어떻게 보도할 것인지, 모든 것이 예비언론인들에게는 숙제로 남는다. 
 
기자는 변화하는 현실에서 '새로움'을 감지하는 직업
 
"기자는 단순한 '월급쟁이'가 아닙니다. 적어도 매달 월급 받는 재미로 사는 사람이 기자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전문성으로 무장하고, 현실이 변해가는 것에 맞춰서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움을 느껴야겠죠. 스스로가 새로움을 느껴야 뉴스를 만들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런다면 위기에 처한 저널리즘 영역에서도 여러분의 역할은 분명 있을 것이고, 그것이 위기에서 탈출하는 에너지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권 박사는 강의가 끝나고 식사를 할 때 합석한 남편을 소개했다.
 
"이 사람도 한때 기자였습니다. 시위현장을 취재하다가 유난히 자주 얻어맞고 들어오길래 '좀 떨어져서 취재하면 안되냐'고 핀잔을 줬어요."
 
뒤이은 남편의 한 마디.
 
"맞더라도 기자는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있어야 돼요. 그게 기자가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권 박사 부부가 제천까지 와서 밤늦도록 한 강연과 대화는 기성 언론인들에겐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은 '잔소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예비언론인들에겐 실천적 과제로 다가왔다.

태그:#세명대, #저널리즘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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