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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 별을 관측해 낮과 밤의 시각을 재는 시계'인 '일성정시의'는 실물은 없고, 여주의 세종대왕 '영릉'에 복원품이 전시돼 있다.
▲ '일성정시의' '해와 별을 관측해 낮과 밤의 시각을 재는 시계'인 '일성정시의'는 실물은 없고, 여주의 세종대왕 '영릉'에 복원품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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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과학경쟁력 세계 5위' - 2008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평가.
'삼극특허건수 세계 4위'  - 미국·일본·유럽 세 곳 특허청에 모두 등록된 삼극특허(三極特許, Triad Patent Families) 2007년 평가. 미국·일본·독일에 이어 4위.

첨단반도체와 초고속인터넷 등을 앞세워 세계를 개척하고 있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이 받아든 성적표다. 특히 양과 질 모두 빠르게 성장을 하고 있는 우리의 과학은, 과학기술에 비해 뒤처진 국가경쟁력(IMD 2007년 평가 29위)을 끌어올릴 수 있는 중요한 원천이다.

우리의 과학은 조선의 과학기술을 토대로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오랫동안 땅의 윤곽을 표현하고 산과 강을 그려왔던 옛 사람들의 노력이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범지구 위치결정 체계)'를 낳았고, 나무를 짜 맞춰 집을 짓던 조상들의 건축기술이 세계 최고층 빌딩을 지을 수 있는 밑바탕이 된 것이다.

우리의 과학은 조선의 과학기술을 토대로 꽃을 피울 수 있었다.
▲ <조선의 과학기술> 표지 우리의 과학은 조선의 과학기술을 토대로 꽃을 피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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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과학기술은 과연 어떤 수준이었을까. 조선시대에 어떤 과학기술이 있었고 그 기술이 무슨 원리를 바탕으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살펴보자.

<조선의 과학기술>은 '건축' '음식' '의학과 수의학' '도량형' '지도' '시간 측정' '천문도와 역법' 등 7가지 주제로 나누어 조선시대 과학기술을 소개한다.

조선의 과학에서 현대과학을 보다

길이와 부피, 무게를 재는 '도량형(度量衡)'은 삼국·통일신라·고려·조선 등 왕조가 바뀔 때마다 새롭게 정비하는 제도였다.

물물교환이나 세금징수 등 사회제도의 변화에 맞춰 도량형을 통일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도량형은 심지어 암행어사가 도량형을 재는 도구를 지니고 다녔을 만큼 중요했다.

"임금님은 암행어사를 임명할 때 봉서, 사목, 마패, 유척을 하사했지. 봉서는 암행어사의 임명장이고, 사목은 암행어사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지켜야 할 규칙과 임무의 수행목적 등을 구체적으로 적은 글이야. 마패는 30리마다 있는 역에서 말을 갈아탈 수 있는 증표였지. 마패에 그려진 말의 숫자만큼 말을 바꾸어 주었거든. 유척은 놋쇠로 만든 자를 말하는데, 도량형을 재는 도구였어. 암행어사는 유척을 가지고 다니며 관리들이 잘못된 측정 기구를 써서 세금을 거두지는 않는지 단속하였지."(124쪽)

조선시대 임금은 하늘을 우러러 별을 헤아리고 달력을 만들며 천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천문학은 하늘의 해·달·별의 여러 현상을 관찰하여 인간의 운명이나 국가의 장래를 점치는 점성술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태조 이성계는 조선이라는 신생왕조의 권위를 알리기 위해 고구려의 별자리 그림들을 계승, 12차의 분야에 맞춰서 하늘의 별자리를 차례로 배열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만들기도 했다.

태조 때 돌에 새긴 천문도는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이름을 가운데 새겼고, 숙종 때 다시 새긴 천문도는 이름을 맨 위에 적었다.
▲ 천상열차분야지도 태조 때 돌에 새긴 천문도는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이름을 가운데 새겼고, 숙종 때 다시 새긴 천문도는 이름을 맨 위에 적었다.
ⓒ 현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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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단기·불기'와 같은 인위적인 연대표기법은 달력과 역법이 시대에 따라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우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천황의 연호를 사용했고, 해방 이후에는 '단기'를 사용하다가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1962년부터 지금껏 '서기'를 연호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책은 이렇게 설명한다.

"왕이 바뀌거나 새로운 국가를 세우게 될 때마다 달력과 역법이 바뀌었다. 하루와 한 해의 길이를 재는 것은 과학이지만 1주일이나 한 달을 며칠로 할 것인지, 1년을 몇 달로 나눌 것인지, 연도 표기를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는 정치권력에 의해 결정되었다."(240쪽)

'시간과 달력', 오직 '왕'만이 결정할 수 있는 절대권한

민족의 위대한 성군으로 추앙받는 세종대왕은 '훈민정음'만 만든 것이 아니다. 과학기술을 발전시킨 세종대왕의 업적은 실로 눈이 부실 정도다.

'가마솥이 위로 열려 있는 모양의 해시계'인 '앙부일구(仰釜日晷)', 휴대가 용이한 '구슬이 달린 해시계'인 '현주일구(懸珠日晷)', '나침반 없이 정남향을 맞추어 시각을 알 수 있는 해시계'인 '정남일구(定南日晷)', '해와 별로 낮과 밤의 시간을 재는 시계'인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스스로 소리를 내는 물시계'인 '자격루(自擊漏)' 등이 모두 세종대왕 대에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가마솥이 위로 열려 있는 모양의 해시계' 세종 대 만든 것은 전해지지 않고, 조선 후기 것들만 남아 있다.
▲ 앙부일구 '가마솥이 위로 열려 있는 모양의 해시계' 세종 대 만든 것은 전해지지 않고, 조선 후기 것들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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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이 달린 해시계'  합천 해인사에 전해 내려오는 현주일구는 세종 대 처음 만든 것을 본떠 성종 대에 다시 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 현주일구 '구슬이 달린 해시계' 합천 해인사에 전해 내려오는 현주일구는 세종 대 처음 만든 것을 본떠 성종 대에 다시 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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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침반이 없이도 정남향을 맞추어 시각을 알 수 있는 해시계' 실물은 남아 있지 않고, 세종대왕 영릉에 복원품이 전시돼 있다.
▲ 정남일구 '나침반이 없이도 정남향을 맞추어 시각을 알 수 있는 해시계' 실물은 남아 있지 않고, 세종대왕 영릉에 복원품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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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시계들을 만든 것으로 미루어 보건데 세종대왕은 백성들의 삶을 끔찍이 돌봤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조선의 그 어떤 왕보다 투철한 '시간관념'을 가지지 않았을까 싶다. '임금과 시간'에 대한 책의 이야기를 보자.

"동양에서는 하늘의 모양을 살펴 백성들이 일할 때를 가르쳐주는 것을 임금이 해야 할 중요한 일로 여겼단다. 유교사상은 왕이 하늘에서 명령을 받아 인간 세상을 다스리는 존재라고 가르쳤거든. 하늘에 떠 있는 해와 달과 별을 관찰하고 시간과 달력을 결정하는 것은 오직 왕만이 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한이라고 생각했대.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왕들이 첨성대, 관천대 등을 설치하여 하늘의 현상을 관찰하고, 해시계나 물시계 등을 이용하여 시간을 재었단다."(190쪽)

조선시대였다면 '광우병'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로 나라가 시끌벅적한 요즘, '소'를 돌보기 위해 펴낸 조선의 <신편집성우의방(新編集成牛醫方)>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조선시대에는 '좋은 소를 알아보는 법', '소를 키우는 데 지켜야 할 금기사항', '소의 전염병 등 17가지 잡병의 증상과 처방'을 적는 등 농사와 생활에 꼭 필요했던 '소'를 힘써 관리했다. 조선시대였다면 '광우병'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조선의 과학기술>은 초가삼간과 온돌의 구조, 술 빚기·김치 담그기·장 빚기, 길이 재기, 대동여지도 읽기, 해시계와 물시계의 이해, 천상열차분야지도로 본 천문 등의 이야기들을 관련 사진·자료들을 곁들여 이해를 돕는다. 더욱이 어린 두 주인공들이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 보고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 형식으로 구성해 어린이들에게 눈높이를 맞췄다.

무더운 여름날, '온돌'이 무엇인지, '수라'가 무엇인지, '메주'가 무엇인지, '되'가 무엇인지, '대동여지도'가 무엇인지, '물시계'가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들을 데리고 조선시대로 과학기술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조상들이 초가삼간 마루에 걸터앉아 더위를 식히느라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듯이 말이다.

"조선시대 일반 백성이 살던 가장 기본적인 민가 유형은 초가삼간의 일자집이었다. '부엌+큰방+작은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방 앞에 자그마한 마루를 만들었다. 남부 지방에서는 삼간집에서 대청마루를 하나 더 추가하거나 방을 하나 더 만든 초가사간집이 발달하였다. 초가사간집은 '부엌-큰방-대청마루-작은방' 또는 '부엌-큰방-작은방-고팡(광)'으로 구성되었다."(17쪽)

'온돌'은 불을 때는 '아궁이', 따뜻한 기운을 전달하는 '고래', 연기를 바깥으로 내보내는 '굴뚝'으로 구성된다.
▲ 온돌 '온돌'은 불을 때는 '아궁이', 따뜻한 기운을 전달하는 '고래', 연기를 바깥으로 내보내는 '굴뚝'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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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조선의 과학기술>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편, 박상표 글 / 현암사 / 259쪽 / 12,000원



조선의 과학기술

박상표 지음,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엮음, 현암사(2008)


태그:#조선의 과학기술, #앙부일구, #현주일부, #천상열차분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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