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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땀이 뚝뚝 떨어지는 무더운 여름이다. 그래도 산은 달콤한 유혹처럼 자꾸 손짓을 보낸다. 나는 어느새 마창교차로 산행 알림판을 몇 번이나 훑어보면서 여름 산행으로 좋은 코스를 찾고 있었다. 마침 아름다운 소금강계곡을 품은 오대산 노인봉(老人峰, 1338m) 산행을 떠나는 산악회가 있어 눈길이 쏠렸다.

노인봉이란 산 이름도 재미있는 데다 내가 사는 마산에서 멀리 떨어진 강원도로 하루 산행을 나선다는 것부터 마음이 설렜다. 진고개를 들머리로 삼아 소금강으로 하산하는 그날 산행 시간은 6시간 정도로 잡혀 있었다.

 
▲ 진고개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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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전 7시에 마산서 출발한 우리 일행이 진고개 정상(960m) 쉼터휴게소에 도착한 시간은 낮 12시께. 예전에 비만 왔다면 질퍽거릴 정도로 땅이 질어 '진고개'라 불렀다는데, 국도 6호선이 개통된 뒤로 길이 좋아져 이제는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게다가 뜬금없이 최희준씨가 구성진 목소리로 부르던 <진고개 신사>라는 노래도 떠올라 혼자서 싱겁게 웃었다.

진고개탐방지원센터(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병내리)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됐다. 그날 날씨 때문에 적지 않게 걱정했는데 평창군에 들어서자 하얀 구름이 두둥실 떠있는 파란 하늘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 산 이름이 왜 하필 노인봉일까? 화강암 절벽과 밋밋한 봉우리가 어느 계절이든 멀리서 바라보면 백발노인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 옛날 그곳에 산삼을 캐러 갔다 선잠이 든 어떤 심마니의 꿈 이야기도 그럴 듯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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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꿈에 머리가 흰 노인이 나타나 부근 무 밭에 가서 무를 캐라 하고서 사라졌다 한다. 꿈이 하도 이상해 노인이 일러 준 곳으로 가 보니 산삼이 많이 있었다는 거다. 그 후 노인이 꿈속에 나타나 산삼이 있는 곳을 알려 주었다 하여 노인봉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다.

대체로 평탄한 산길을 1시간 10분 정도 걸어가다 보니 노인봉 정상과 소금강 분소로 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노인봉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잠자리들이 이리저리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등산모에 슬쩍 앉기도 하고, 손등에도 예쁘게 내려앉았다. 그런 잠자리가 고마워 내가 정답게 눈이라도 마주치려 하면 금세 눈치 채고 쏜살같이 날아가 버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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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소리 물고 잠자리 날아든다

장맛비에 물러터진 복숭아처럼 꼭지 잃은 말들이 썩어
는 동안 3억 년 이상 아름다운 비행 멈추지 않은 널
다려 왔는지도 모른다

교정지와 출판사와 제본소 오가는 사이 뜨거운 햇살과
내통한 듯 비틀거리던 기억이 난다 짧은 그늘 비껴 걸으
며 눈빛 붉어지고 입안엔 단내 풍겨나왔다

여름 물가에서 차례차례 껍질 벗고 오늘 아침 창가에
투명한 그물 펼치는 잠자리떼, 내 발목에도 말랑한 피가
도는 것이다

지금 난 겹눈 훔쳐 달고 검붉은 자루 속 빠져나오는 중
이다

- 함순례의 '잠자리'

 
▲ 노인봉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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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봉 정상에서 바라본 경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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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봉 정상에는 등산객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그리고 아스라이 보이는 다른 산들의 그윽한 풍경 또한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정상 부근에서 일행 몇몇과 도시락을 꺼내 먹고 소금강분소 쪽으로 내려갔다. 노인봉 정상에서 산악회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소금강분소(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까지 거리가 9.4km나 되기 때문에 소금강계곡의 수려한 경치를 좀 더 즐기려면 서둘러야 했다.

우리나라 명승 제1호, 청학동 소금강의 절경에 취하다

 
▲ 낙영폭포(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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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봉대피소를 지나 낙영폭포에 이른 시간은 오후 2시 40분께. 폭포는 여름 계곡의 화려한 꽃이라고 할까, 환호성의 절정이라고 할까. 아이러니하게도 추락하는 데도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게 바로 폭포가 아닌가. 노인봉에서 발원하는 연곡천의 지류인 청학천이 12km를 흘러내리며 폭포와 소를 이루고 기암괴석, 층암절벽 등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는 곳이 소금강계곡이다.

청학동 소금강(靑鶴洞 小金剛)은 우리나라 명승 제1호(1970년 지정)이다. '소금강'이란 이름은 율곡 이이의 <청학산기(靑鶴山記)>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본디 그곳의 이름은 청학산이었는데, 산의 빼어난 경치가 금강산의 축소판이라 하여 율곡 선생이 소금강이라 이름 지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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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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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10분 남짓 걸었을까. 거인의 옆 얼굴을 닮은 귀면암, 해와 달이 숨바꼭질하며 넘나들었다는 일월암 등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기암절벽들이 여러 가지 형상을 빚고 있는 만물상(440m)에 이르렀다. 거기서 20분 정도 더 내려가면 시원한 구룡폭포를 볼 수 있다.

해발 36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그 폭포는 상단으로부터 1폭이 시작되어 아홉 개의 폭포가 이어 떨어지면서 아홉 개의 못을 이루고 있다 하여 구룡폭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구룡폭포 앞에는 가벼운 차림으로 쉬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땀에 절어 고약한 냄새가 솔솔 나는 등산복 차림이 왠지 멋쩍게 보일 정도로 그들의 편안한 휴식 시간이 은근히 부러웠다. 그런데 내가 바라보고 있는 폭포가 아홉 개 가운데 과연 몇째인지 도시 알 수 없어 답답했다.

 
▲ 구룡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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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이 너무 길어 몸도 점점 지쳐 갔지만, 옛날 일곱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연화담(蓮花潭), 화강암 절벽이 십자형으로 깊게 갈라져 동서남북 사방에서 물이 흘러들어 폭포와 못이 형성된 십자소(十字沼) 등을 지나며 소금강분소까지 계속 걸어갔다.

여름 휴가철이라서 그런지 강릉에서 평창휴게소까지 가는데만 해도 차가 많이 밀렸다. 배낭을 메고 새벽 1시께 집에 들어가는 내 꼴이 웬 청승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마음은 즐거운 하루였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서울→경부고속도로→신갈 분기점→영동고속도로→진부 I.C→ 월정사 방면→주문진 방면(병안 삼거리)→진고개탐방지원센터

*대전→중부고속도로→호법 I.C→영동고속도로→진부 I.C→월정사 방면→주문진 방면→진고개탐방지원센터

*대구→중앙고속도로→만종 분기점→영동고속도로→진부 I.C→월정사 방면→주문진 방면→진고개탐방지원센터

*광주→호남고속도로→회덕 분기점→경부고속도로→남이 분기점→중부고속도로→호법 분기점→영동고속도로→진부 I.C→월정사 방면→주문진 방면→진고개탐방지원센터



태그:#노인봉, #소금강, #오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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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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