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극기 못 받은 임수정, 관중석 인사한 대만선수 21일 베이징 올림픽 태권도 첫 금메달을 따낸 임수정 선수는 관중석에서 건네준 태극기를 받지 못했다. ⓒ 박정호


21일 베이징 올림픽 여자태권도 57kg급 우승이 확정된 순간 임수정(22·경희대) 선수는 두 손을 머리 위로 모은 채 그 자리에 엎드렸다. 1-0. 그는 초반 열세를 딛고 아지제 탄리쿠루(22·터키)를 물리쳐 금메달을 따냈다. 5시간이 넘게 과학기술대학교 체육관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하던 관중들은 "대~한민국"을 외치며 환호했다.

베이징 올림픽 태권도 첫 금메달을 따낸 임수정 선수는 감격한 표정으로 감독과 함께 관중석으로 내려와 두 손을 들고 응원단의 성원에 답례했다. 임 선수가 관중석 앞으로 가까이 다가오자, "임수정! 임수정!"을 연호하던 관중들이 작은 태극기 두 개를 그를 향해 던졌다.

관중석에서 받은 태극기 빼앗긴 임수정

 21일 베이징 올림픽 여자태권도 57kg급에서 금메달을 따낸 임수정 선수가 관중석에서 던져준 태극기를 받기 전에 자원봉사자가 낚아챘다.

21일 베이징 올림픽 여자태권도 57kg급에서 금메달을 따낸 임수정 선수가 관중석에서 던져준 태극기를 받기 전에 자원봉사자가 낚아챘다. ⓒ 박정호


 21일 베이징 올림픽 여자태권도 57kg급에서 우승한 임수정 선수에게 관중들이 던져준 태극기가 자원봉사자 의자 아래 놓여있다.

21일 베이징 올림픽 여자태권도 57kg급에서 우승한 임수정 선수에게 관중들이 던져준 태극기가 자원봉사자 의자 아래 놓여있다. ⓒ 박정호


하지만 임수정 선수는 태극기를 받을 수 없었다. 임 선수보다 앞서 경기장 안에서 질서유지를 담당하던 자원봉사자가 태극기를 낚아챘기 때문이다. 지난달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BOCOG)가 발표한 '올림픽 경기장 관람 규칙'의 "경기장 내 물건 투척 금지 행위"를 적용한 것. 자원봉사자는 등 뒤로 태극기를 숨겼고 검은 양복을 입은 남성 관계자는 손짓을 하며 임 선수를 경기장 안쪽으로 안내했다.

임수정 선수가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며 감독과 함께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동안 태극기를 들고 있던 자원봉사자는 태극기를 임 선수에게 건네주지도, 관중에게 돌려주지도 않았다. 태극기는 시상식이 끝날 때까지 자원봉사자가 앉아 있는 의자 아래에 놓여져 있었다.

 21일 베이징 올림픽 남자태권도 68kg급에서 금메달을 따낸 손태진 선수는 감독이 준비한 태극기를 들고 경기장을 돌았다.

21일 베이징 올림픽 남자태권도 68kg급에서 금메달을 따낸 손태진 선수는 감독이 준비한 태극기를 들고 경기장을 돌았다. ⓒ 박정호


남자 68kg급 결승에서 종료 2초전 결승점을 올리며 마크 로페즈(26·미국)를 3:2로 물리쳐 금메달을 목에 건 손태진(20·삼성에스원)선수도 관중석에서 준 태극기를 들지 못했다.

극적인 승리를 거둔 손 선수는 감독과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기쁨을 나눈 뒤, 관중석으로 다가가 열광적인 응원을 펼친 관중을 향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번에도 환호성을 지르던 관중석에서 손 선수를 위한 태극기 몇개가 떨어졌지만, 손 선수가 가까이 가기도 전에 자원봉사자들이 모두 태극기를 주워버렸다. 결국 손 선수는 관중이 건네준 태극기 대신 감독이 준비한 태극기를 머리 위로 휘날리며 경기장을 한 바퀴 돌았다.

동메달 딴 대만 선수는 관중석 인사

 21일 베이징 올림픽 남자태권도 68kg급에서 동메달을 따낸 대만의 성유치 선수는 결승전이 끝나기도 전에 관중석에 올라와 인사했다.

21일 베이징 올림픽 남자태권도 68kg급에서 동메달을 따낸 대만의 성유치 선수는 결승전이 끝나기도 전에 관중석에 올라와 인사했다. ⓒ 박정호


두 번의 애국가가 경기장에 울려퍼진 뒤 만난 관계자들은 경기장 질서유지와 안전을 위해 국기 반입 등을 금지했다고 밝혔다. 관중이 물건을 던지는 행위나 선수가 국기를 흔드는 행위 모두 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최측의 기준은 남자 대만 선수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남자 68kg급 경기에서 동메달을 따낸 성유치 선수는 손태진 선수가 나선 결승전이 끝나기도 전에 감독과 함께 관중석에 올라와 관중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인사했지만, 아무도 막지 않았다.

베이징 시민들과 대만 원정 응원단이 손을 내밀며 환호하는 동안 다른 관중은 경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순조로운 경기진행을 방해하고 다른 사람의 관람을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올림픽 경기장 관람 규칙'이 무용지물이 된 순간이다.

경기 질서와 안전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제지했어야 하는 행동이었지만, 관중석에 배치된 자원봉사자나 관계자 누구도 막지 않았다. 관중들이 건넨 국기는 막으면서 관중석에 올라간 선수는 그냥 두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아 보였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SK텔레콤 T로밍이 공동 후원하는 '2008 베이징올림픽 특별취재팀' 기사입니다.
베이징올림픽 태권도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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