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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부흥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중국에 눈길을 보낸 지 꽤 되었지요. '중국어 몰입교육'을 하겠다는 학원이 있을 정도로 중국이 갖는 힘이 커지고 있어요. 중국문화에 관심이 부쩍 커지면서 유명 작가들을 중심으로 중국 소설들이 수입되고 있지요. 그 가운데 눈에 띄는 책 하나를 소개해요.

 

장님 아버지와 귀머거리 아들, 벙어리 아내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언어 없는 생활>(2008. 은행나무)은 잔혹한 현실을 묵묵하게 그려낸 중국 소설이에요. 세 가족이 이루는 생활은 얼마나 답답할까요?

 

그 순간 왕라오빙은 눈에 따가운 이물감과 쓰라린 통증을 느꼈고, 곧이어 눈앞에 시커먼 장막이 드리워졌다.

“사람 살려! 자콴! 살려줘! 아이구, 나 죽네!”

왕라오빙의 신음소리가 잦아들 때마다 한쪽 편에서는 왕자콴의 풀 베는 소리가 장단을 맞추듯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 책에서

 

아버지가 벌에 쏘여 소리를 질러도 듣지 못하는 아들은 신음소리에 맞춰 풀을 베는 상황은 알싸한 슬픔을 주지요. 이러한 장애인들의 일상을 그리면서 소통과 관계에 대해 물음을 던지네요.

 

왕라이빙은 자신과 왕자콴, 차이위전이 마치 한 사람으로 합체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날 밤 침대 곁에서 나눴던 대화는 절대 떨쳐버릴 수 없는 기억으로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가 질문하면 차이위전이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가로저었고, 왕자콴이 옆에서 동작을 말로 묘사하며 의사소통하였다.

‘우리는 이제 한사람이나 다름없어. 서로 욕하고 때리면 결국 스스로에게 매질을 하는 거고, 서로 어루만져 주면 결국 스스로를 위안하는 거야.’ - 책에서

 

비장애인들의 편견과 몰이해 속에 그들은 비록 신체의 일부가 불편하지만 서로 도우며 살아가지요. 지은이는 거리를 두고 이야기를 풀어서 장애인이 겪는 고독과 소외감에 감정 이입시키지 않게 하며 냉정하고 이기적인 세태에 눈을 돌리게 하네요.

 

마지막에 왕자콴과 차이위전의 ‘정상’ 아들인 왕셩리는 학교에서 배운 노래를 부르다가 자신의 가족을 조롱하는 노래라는 할아버지의 꾸지람에 세상을 향한 창을 닫게 되어요. 세상의 소외와 차별에 맞서지 못하고 안으로만 삭이는 거죠. 소통이 되지 않는 고통에 시달리는 그들의 생활을 보여주며 ‘소통부재인 현실’을 빗대지요.

 

지은이 둥시(東西)는 중국에서 물건, 음식, 추상적인 어떤 것, 욕설 등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 않은, 가장 흔하면서도 일상 대화에서 많이 쓰이는 단어에요. 그가 이런 뜻을 지닌 필명을 쓰는 이유는 불분명하게 널리 쓰이는 말이니만큼 역으로 많은 함의를 지닐 수 있기 때문이지요. 평범해서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상황과 현상들에 눈길을 돌리고 글로 쓰고 싶은 작가의 의중을 느낄 수 있지요.

 

제1회 노신문화상을 수상한 언어 없는 생활을 비롯하여 4편의 소설이 실린 이 소설집은 중국의 농촌 현실과 비참한 과거를 담았지요. 다른 작품들도 절름발이, 게으름쟁이, 살인자 같은 인물들을 등장시켜 사람 사이의 소통과 행복에 대해서 날카롭게 꼬집어요. 현대 중국 작가들이 어떠한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엿볼 수 있는 작품이네요.


태그:#언어없는 생활, #노신, #루쉰, #중국소설, #둥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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