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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잘 나가는 용언 ‘카더라’가 자신의 성공을 자축하기 위해 용언들을 집으로 초대해 만찬을 베풉니다. 내 놓으라 하는 많은 용언들이 ‘카더라’의 성공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용언들 가운데서도 성깔 있기로 소문난 ‘확실히’와 ‘틀렸어’가 ‘카더라’를 안고 가장 크게 기뻐해 주었습니다. 용언들이 많이 모이자 ‘카더라’가 한 말씀합니다.

 

“참으로 감개무량합니다. 나한테 이런 영광이 올 줄은 생각도 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남들보다 빠르게 적극 활용하면서 이런 영광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의 영광은 여기 있는 ‘확실히’와 ‘틀렸어’ 두 형님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습니다. 나의 부족한 면을 이 두 용언이 신뢰감을 줄 수 있도록 채워 줬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언젠가는 용언 가운데 나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 될 수 있는 날이 있을 거라 기대하며 맘껏 드시고 즐기시길 바랍니다.”

 

‘확실히’가 기립박수를 치자 다른 용언들이 눈치를 보며 일어나 박수를 칩니다. 잔치가 무르 익을 무렵 ‘그럴 줄 알았어’가 분위기를 다잡으며 마이크를 잡습니다. 먼저 ‘카더라’에게 근거 없는 말들을 단시간 내에 회자될 수 있도록 하는 비결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재미있잖아.”

 

‘카더라’의 명쾌한 말에 ‘그럴 줄 알았어’가 촌철살인 같은 한마디라며 ‘카더라’를 치켜 세웁니다. 그리고 큰 도움을 준 ‘확실히’와 ‘틀렸어’에게 무슨 근거로 ‘카더라’를 그렇게 밀어 줬냐고 물었습니다.

 

“내 직감이지. ‘틀렸어’가 다른 불필요한 지적들을 단호하게 차단해 줬고. 맞지?

‘틀렸어’가 ‘확실히’의 손을 잡고 우정을 과시합니다. ‘그럴 줄 알았어’가 세 용언의 성공을 마치 예견한 것처럼 치켜세워 줍니다.

 

한껏 고조된 분위기 속에 한켠에서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던 용언들 가운데 소심하기로 소문난 ‘그럴지도 몰라’가 술기운을 빌려 불만을 토로합니다.

 

“근거도 없이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건 너무 무책임해. 우리 언어들의 수치라고.”

“수치? 우리말들의 고유 기능이 뭔지 알아? 우린 말들을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 해야 된다고. 그럴려면 나 같은 말이 많이 활동해야 돼. 알지도 못하면서.”

‘카더라’가 콧방귀를 뀝니다.

 

함께 있던 ‘내 생각은’이 조심스럽게 끼어듭니다.

“내가 대화에 들어가면 그런 근거 없는 말은 좀 자제될 것 같은데.”

 

“그러니까 너희들은 발전이 없는 거야. 너희들은 너무 약해. 그렇게 이야기하면 그냥 묻혀 버려. 사람들은 자극적이고 단번에 기억되는 말을 좋아한다고. 말도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고 자꾸 돌아야 가치가 있단 말이야.”

 

‘카더라’가 ‘내 생각은’을 한심한 눈을 바라봅니다.

“대화가 뭐야? 상대방을 설득하고 내 편으로 만드는 게 대화야. 그럴려면 우리처럼 듣는 사람한테 확신을 줘야지. 그래야 먹힌다고.”

‘확실히’가 ‘틀렸어’를 보고 동의를 구하자 ‘틀렸어’가 맞장구를 칩니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아. 당장 급한 건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을 내편으로 만드는 게 급선무라고. 우리가 안 나서면 될 일도 안 돼. 그렇지?”

 

‘틀렸어’의 이야기에 ‘카더라’와 ‘확실히’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라는 듯 고개를 끄떡입니다.

“너희들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올 수도 있는 중요한 용언이야.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얘들아 제발 좀 정신차려!”

‘그럴지도 몰라‘가 술이 좀 올랐는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세 용언에게 진심어린 충고를 합니다.

 

“뭐? 얘들아? 완전히 술 취했군. 감히 우리한테. 하긴 너 스스로도 우리의 힘을 인정하는 구나. 우리가 양반이라면 너희들은 천민정도 되지. 하하하! 맨날 신세타령이나 하구 쯧쯧쯧”

‘확실히’가 고개를 빳빳히 들고 대들려면 대들어 보란 자세입니다.

 

“양반하고 천민은 좀 심했다. 그래도 아직 우리를 즐겨 쓰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럴지도 몰라’가 가냘프게 반항합니다.

“쳇! 너희들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세상 살기 더 힘들어 질 거다. 그렇게 나약해서야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자기 말을 들어줘. 그냥 짧고 굵게 가는 거지.”

 

“우리도 너희들처럼 그렇게 말 할 수도 있어. 그렇지만 상대방를 배려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뿐이라고.”

‘내 생각은’이 화가 난 듯 자리를 박차고 나갑니다. ‘카더라’가 가소롭다는 표정입니다.

 

“저 봐! 왜 자기가 말해놓고 스트레스 받아. 저것도 자기 의견이 통하지 않으니까 그런 거라고. 우리처럼 확신을 갖고 이야기하면 적어도 본인은 스트레스 안 받지. 다른 사람이야 열 받든 말든 그 건 모르겠고. 남 걱정을 자기가 왜 해?”

 

‘틀렸어’와 ‘확실히’가 ‘카더라’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서로 히죽거립니다.

‘그럴지도 몰라’가 ‘내 생각은’이 떠난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그럴 줄 알았어’가 ‘내 생각은’이 나갈 줄 알았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쳐다보며 서둘러 마이크를 들고 오늘의 주인공인 ‘카더라’에게 다가갑니다. ‘카더라’가 마련한 만찬의 밤이 깊어 갑니다.

덧붙이는 글 | 힘 있는 말과 힘 없는 말에 따라 효과도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태그:#동화, #성인, #용언, #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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