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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와 칠면초가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이다.
 갈대와 칠면초가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이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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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골에 가을바람이 분다. 갈대 잎이 사각사각 부딪히며 쓸쓸한 노래를 부른다. 오래전 소금을 만들었던 시흥 소래 염전이 폐쇄되면서 40여 동의 소금창고가 남아 있었다. 작품을 담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진작가들로서는, 바닷물과 따가운 햇살과 씨름하며 천일염을 만들었을 그들의 질펀한 삶을 상상해보면서 짠내가 물씬 풍기는 땀방울의 흔적을 찾아 담고자 무던히도 애를 썼던 곳이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소금창고는 그들이 흘렸을 땀의 흔적만큼 애환이 녹아 있기에 사진작가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곳이다. 2년여 이곳을 찾아와 염전의 사계를 담았던 나는 어느 날 사진을 찍기 위해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 폐 염전의 소금창고가 사라져버리고 바람만 휑하니 지나가는 넓은 갯골을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 짠한 마음과 함께 허전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었다.

뜨거운 햇살과 바다의 짠 냄새와 씨름 하면서도 가장을 기다리는 가족들에게 수고로움에 대한 녹록치 않은 보상으로 의식주를 해결해줄 수 있다는 뿌듯함이 있었을 테다. 힘든 하루일과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주막을 들려 막걸리 한 사발로 하루의 피로를 풀었을 그들의 삶도 생각해보면서 자연과 하나 되는 마음으로 작품을 담았던 곳인데.

휑한 벌판에서 멍하니 바라보다 돌아섰을 때는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그곳에서 희로애락을 함께 했을 그들의 역사가 사라졌다는 것에 대한 서운함이 앞섰다. 틈만 나면 찾았던 곳이기에 그곳이 생각나 카메라를 둘러매고 갯골을 찾았다. 붉은 물결이 바람에 파도친다. 한 해 동안 일곱 번 옷을 갈아입는다는 칠면초가 붉게 물들어 갯골의 부는 바람에 넘실넘실 춤을 추며 오랜만에 찾아온 나에게 미소를 보낸다.

RC동호회 회원들이 착지한 모형 헬기를 바라보며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다.
 RC동호회 회원들이 착지한 모형 헬기를 바라보며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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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가 바람에 한들거린다.
 갈대가 바람에 한들거린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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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산에는 온통 울긋불긋 나뭇잎들이 빨강, 노랑, 형형색색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입고 사람들을 유혹하기 때문에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지만 이곳 갯골에는 사람들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붉은 칠면초가 예쁘게 가을 단장을 하고 붉게 타고 있는데 누구 하나 바라보지 않아 쓸쓸한 가을을 보내고 있다. 한때는 소금창고가 있었던 이곳에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아와 갈대와 붉게 물든 칠면초, 소금창고를 배경으로 작품을 담곤 했었는데 소금창고를 철거하고 나니 이곳을 찾았던 사람들도 떠났다. 생명이 숨 쉬는 갯골의 가을은 그래서 쓸쓸하다.

시간만 허락하면 찾아왔던 이곳을 오랜만에 걸어본다. 보드라운 개흙 사이로 갯가에서 자라는 다양한 염생 식물들이 꽃을 피우고 있다. 소금밭이었던 드넓은 터에는 새로운 갈대가 묵은 갈대를 보내며 갈대꽃을 피워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다.

바닷물이 지나가는 갯골 사이로 농게들이 쉴새없이 들락거린다. 인기척에 놀란 농게가 어찌나 빠른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카메라에 담기 위해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지만  구멍을 뚫어 집을 만들어 놓은 곳으로 들어간 농게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산란을 위해서인지 높이 쌓아 놓은 숭숭 뚫린 높은 담장만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나를 무색하게 만든다.

4km가 넘는 둑길에는 자전거동호회 회원들이 줄을 지어 지나가곤 했었는데 이제는 쓸쓸한 정적만이 감돈다. 농게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신다던 할머니의 모습도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 생명이 숨 쉬는 갯골에는 자연만이 순리에 맞춰 계절의 변화를 알리고 있다. 한 시간 정도를 걷다 갯골을 돌아 나오는데 입구에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반갑기도 하고 요란스럽게 소리를 내며 하늘을 날고 있는 헬기가 신기하기도 하여 다가가 구경하며 대화를 나눈다. 자주 찾아온다는 RC(Radio Control)헬기 동호회 회원들이다. RC헬기는 무선 리모컨으로 조절을 하기 때문에 상당한 주의를 요하는 취미생활이다. 때문에 위험 요소가 없는 넓은 공간을 이용해야 하므로 이곳을 자주 찾는다고 한다.

묘기를 부리며 아슬아슬하게 하늘을 날고 있는 모형헬기가 갯골의 쓸쓸함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
 묘기를 부리며 아슬아슬하게 하늘을 날고 있는 모형헬기가 갯골의 쓸쓸함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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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작은 헬기를 보면서 종류는 다르지만 취미생활을 하는  나는 궁금하여 조종하는 방법과 연습하는 과정, 장비 가격 등을 물어보자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예전에는 장비가 비싸 취미 생활을 꺼려했는데 이제는 많이 보편화되어 저렴한 가격으로도 스릴을 느끼며 취미생활을 할 수 있다고 부천 중동에서 온 김진욱(38)씨는 말한다.

취미 생활을 시작한 지는 1년 정도 되었단다. 함께 온 동호회 회원은 한 달에 5~6회 정도 이곳을 찾아와 그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리고 돌아가 열심히 일을 한다고 말한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주 3~4회 정도를 연습했다고 말한다.

특수 제작한 커다란 연을 날리는 사람도 간간이 이곳을 찾는다. 말을 타는 사람들도 지나간다. 이제는 이곳이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해가고 있어 조금은 덜 쓸쓸하게 보인다. 인위적인 모든 것이 변해 가지만 자연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여 순응하며 기다린다.

문화재로서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었던 소금창고가 사라진 후 발길을 끊었던 시흥 소래 폐 염전, 이제는 다양한 취미 생활로 찾아오는 이들을 넓게 펼쳐져 있는 갈대와 붉게 타는 칠면초가 반갑게 맞이한다.

문명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개발을 우선시 하는 풍토가 자연을 해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을 한번쯤은 생각해봤으면 하는 바람이 앞선다. 저무는 가을을 만끽하며 가족과 연인, 친구 갈대. 칠면초와 함께 작품사진도 찍고 추억을 만들고 싶다면 광활하게 펼쳐진 소래 염전이 있었던 곳 시흥 갯골을 찾아오는 센스를 발휘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태그:#시흥, #소래, #갯골, #칠면초,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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