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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사 가는 길

 

 

비로사는 풍기읍 삼가리에 있다. 그러므로 순흥에서 풍기 읍내로 진입한 다음 동양대학교를 지나 바로 우회전해야 한다. 이 길은 금선정 계곡을 따라 삼가 탐방지원센터로 이어진다. 삼가 탐방지원센터를 지나면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왼쪽으로 가면 당골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가면 비로사가 나온다.

 

그런데 우리는 길을 잘못 들어 당골 쪽으로 가고 말았다. 결국 막다른 길에 이르러서야 그 길이 아님을 알고 되돌아와 비로사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비로사는 그 삼거리에서도 북쪽으로 2㎞는 떨어져 있다. 평상시에는 이 길을 걸어가야 하는데 한겨울이라 차를 타고 바로 비로사까지 오를 수 있었다.

 

비로사 일주문 앞에 도착하니 길이 두 갈래로 나 있다. 똑바로 가거나 왼쪽 일주문으로 오르면 비로사 경내로 들어갈 수 있고, 오른쪽으로 다리를 건너면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으로 가게 되어 있다. 비로사에서 비로봉까지 1시간 40분이면 오를 수 있어 소백산 정상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코스이다. 우리는 산행이 목적이 아니고 답사가 목적이라 왼쪽의 일주문으로 올라간다.

 

일주문, 당간지주, 진공대사 보법탑비

 

 

일주문은 최근에 새로 만들어져 문화재적 가치는 없다. 화강석으로 다리를 세우고 그 위에 기둥을 얹었다. 화려한 단청 때문인지 날렵한 느낌이 든다. 일주문을 지나 왼쪽으로 약간 올라가면 당간지주가 보인다. 이 당간지주는 경북 유형문화재 제7호로 공식 명칭이 영주 삼가동 석조 당간지주이다.

 

 

서로 마주보는 두 기둥의 안쪽 면 위와 가운데에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해 네모난 홈을 팠다. 바깥 면은 아랫부분과 윗부분의 일부에 면을 깎아 요철을 만들었다. 그리고 앞뒷면은 가운데를 위에서 아래로 좁고 길게 두 줄을 파내 바깥 둘레가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기둥사이에는 당간의 받침돌이 남아 있는데, 그 윗면에 당간을 꽂아두던 구멍이 뚫려 있다. 규모나 장식기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당간지주가 비로사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재인 셈이다.

 

당간지주에서 다시 언덕을 올라가면 부도와 여러 가지 부재들이 정돈되지 않은 채 널려있다. 안타까운 모습이다. 이들을 복원하기 위해 공사를 하는 건지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다.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게 부도이다. 8각의 하대석에 복련이 양각되어 있다. 하대석 위에 중대석 같은 것을 받쳤는데 제대로 맞는 것 같지 않다. 그리고 그 위에 옥개석이 올려져있는데 훼손이 심한 편이다.

 

제짝들이 아닌 게 분명하고 훼손도 심해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찾기는 어렵다. 이 부도 앞에는 광배로 보이는 두 개의 돌이 세워져 있다. 가장자리에 양각된 불꽃무늬와 화불이 아주 선명하다. 광배의 절반 정도가 깨져서 그렇지 조각이 지니는 예술성은 아주 뛰어난 편이다. 깨지지 않은 곳에서 세 기의 화불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부도와 광배 옆에는 이 절의 역사를 기록으로 전해주는 진공대사 보법탑비가 있다. 그런데 비신이 깨지고 보존상태가 나빠 육안으로 읽기가 쉽지 않다. 비신에 비해 귀부와 이수의 상태는 좋은 편이다. 거북과 용무늬가 선명하다. 그런데 이들 조각의 예술성이 뛰어난 편은 아니다.

 

진공대사(眞空大師: 855-937)는 신라말 고려초를 살았던 선종계열의 스님이다. 그는 소백산사(비로사 ?)를 중수했을 뿐 아니라 마지막 7-8년 동안을 이곳 비로사에서 주석하다가 입적한 것으로 되어 있다. 비문에 따르면 그는 경주(계림) 출신으로 가야산으로 들어가 선융화상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도의선사의 자취가 서린 진전사를 찾는 등 여러 곳을 다니며 선수행을 한다. 그는 왕의 부름을 받아 경주와 개경 등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산사를 나가 왕에게 설법하는 일을 조계종지에 어긋나는 것으로 부끄러워했던 것 같다.

 

진공대사비는 그가 죽은 지 2년 후인 939년 왕명에 의해 세워졌다. 최언위가 글을 짓고 이환추가 글씨를 쓰고 최환규가 글씨를 새겼다. 비석에서 특이한 점은 명문(銘文) 외에 마지막 부분에 음기(陰記)로 유계(遺誡)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유계는 진공대사가 열반에 임하여 유훈(遺訓)으로 남긴 가르침이다. 

 

진공대사가 유훈으로 남긴 말씀

 

대사는 먼저 가을 단풍이 맑은 시내에 떨어지는 것처럼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린다. 그리고는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할 것을 부탁한다. 상하가 화합하고 삼가며 예의와 질서를 지킬 것을 강조한다. 대사는 또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수행에 전념할 것을 후배 승려들에게 당부한다.

 

“남북지중(南北之中)에서 이 소백산(小白山)에 주석(住錫)한 7~8년 동안 십방(十方)의 납자(衲子)가 본광(本光)을 찾고 본색(本色)을 탐구하면서 어언 여러 해를 지나게 되었다. 분(分)을 따라 정진하여 때를 쫓고 세상을 수순하되 특별한 궤칙(軌則)은 두지 말고, 평범한 진리를 따르도록 하라. 또 방탕하거나 안일하지 말 것이며, 동량(棟梁)이 되려는 원력 또한 잊지 마라. 옳지 않은 일은 불구덩이를 피하듯 처음부터 행하지 말라.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간에 항상 조심하여 여법(如法)하게 수행토록 하라.”

 

마지막 부분에서 대사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애통해하지 말라고 부탁한다. 비록 이승을 떠나지만 내세의 부처님 전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진공대사가 남긴 유훈은 상당히 인간적이다. 비문에 보면 그가 도의선사의 맥을 이었지만 어떤 산문에 속했는지, 또 어떤 사상을 지녔는지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않다. 그는 도(道)를 깨치기 위해 노력하였고 또 덕을 실천하였다는 점에서 유교적인 색채도 상당히 지닌 것으로 여겨진다.  

 

새로 지어진 적광전 안의 금칠한 돌부처

 

진공대사 보법탑비를 보고 나서 계단을 통해 한 단 위로 올라가면 적광전에 이를 수 있다. 적광전은 이 절의 중심 법당으로 최근에 새로 지어졌다. 법당 앞에는 3층으로 보이는 탑이 있는데 탑재들을 이상하게 올려놓아 요즘 쓰는 말로 엽기적(grotesque)이다. 그러나 낱낱의 부재에 새겨진 조각은 미학적으로 높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적광전 안으로 들어간다. 이곳에는 이 절에서 가장 유명한 석조 아미타불 좌상과 비로자나불 좌상(보물 996호)이 나란히 모셔져 있다. 그런데 이들 두 부처님은 결가부좌한 것을 제외하고는 여러 가지 면에서 상당히 다르다. 수인은 말할 것도 없고 얼굴과 머리, 옷 등에서도 뚜렷이 구분된다.

 

아미타불 좌상은 높이가 1.13m이다. 얼굴 표정이 엄숙하고 나발과 육계가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옷은 왼쪽 어깨만을 감싼 우견편단이다. 손은 가볍게 주먹을 쥔 상태에서 손바닥을 위로 하고 양 손의 엄지손가락을 맞대고 있다. 엄지 뿐만 아니라 검지도 맞댄 형태로 아미타인의 상품상생인으로 보인다.

 

비로자나불 좌상은 높이가 1.17m이다. 작고 동그란 입과 짧은 인중으로 부처님이 상당히 인간적으로 보인다. 양 어깨를 감싼 옷이 자연스런 주름을 이루며 흘러내려 아주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수인은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싼 일반적인 형태이다. 이 부처님은 나발에 육계를 갖추었는데 중간에 계주가 약간 드러난다.

 

두 불상은 선의 특징, 몸의 자세 등으로 볼 때 9세기 후반의 석불로 보인다. 그리고 아미타불과 비로자나불이 나란히 있다는 점에서 통일신라 화엄불교의 특징을 보여준다. 이들 부처님은 8각 연화대석 위에 놓여 있으나 광배는 없다. 이들 부처님의 광배는 앞에 언급한 부도와 진공대사 보법탑비 옆에 깨진 채로 버려진 그 광배라는 생각이 든다. 이들 부처님의 개금을 벗기고 그 광배를 갖다 맞춰보면 알 수 있을 텐데 아쉽기 이를 데 없다.

 

비로사는 지금 불사가 한창이다. 법당들이 화려한 자태로 세워지고 올라가고 있다. 그런데 이 절을 천년 이상 지켜온 문화유산들은 제대로 수습이 되지 않은 채 홀대받고 있다. 저렇게 중요한 광배도 팽개쳐져 있고, 부도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탑은 한마디로 무식의 극치다. 절에서 중요한 것은 역사와 전통, 법과 법맥, 문화와 문화유산이다. 요즘 절들이 너무 외형에만 치중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이들 두 분 부처님을 보고 다시 한 계단을 더 올라가면 산신각에 이를 수 있다. 산신각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비로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우리가 올라오면서 본 당우들이 층층이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고 건너편으로는 소백산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법당 앞으로 흘러간다. 비로봉에서 불어내리는 한겨울의 찬바람도 비로사 앞을 스쳐 지나간다. 

 

덧붙이는 글 |   


태그:#비로사, #당간지주, #진공대사 보법탑비, #아미타불좌상, #비로자나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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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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