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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산 자락의 작은 금강산
 개화산 자락의 작은 금강산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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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초청으로 오르게 된 강서구에 있는 나지막한 개화산

"특별한 약속 없으면 내일 저녁이나 같이 먹게 우리 동네 놀러와?"

하루 전 날 밤 강서구 방화동에 사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매주 등산을 함께하는 친구인데 등산을 못하게 된 것이 몹시 섭섭했던가 보았다. 모처럼 친구부부의 초청인데 다른 약속이 있다한들 거절할 수 있겠는가.

"이번 주엔 등산을 못했으니까 우선 우리 동네 뒷산이라도 산책을 좀 하고 저녁을 먹는 게 어때?"

친구부부는 만나자 마자 대뜸 뒷산 산책부터 하자고 한다. 4월 11일 주말 오후 4시쯤, 지하철 5호선을 타고 방화역에 내리니 친구부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뒷동산 산책을 작정하고 나왔는지 운동화에 간편한 옷차림이다.

이심전심(以心傳心) 마음이 통했을까. 우리부부도 다행히 비슷한 복장에 가벼운 등산을 하기에는 문제가 없는 신발을 신고 있었다. 선뜻 그들을 따라 나섰다. 넓은 길을 따라 그들과 함께 잠깐 걷자 산자락 공원길이 나타났다.

특이한 모양의 쌍무덤
 특이한 모양의 쌍무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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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또 다시 바꿔 꾸며놓았네, 지방자치제 하면서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 동네마다 공원은 잘 꾸며 놓더구먼."

"그건 그려, 민선 단체장들이 표를 의식해서 시민들의 눈에 잘 보이는 공원 가꾸는 일에는 대단한 열성을 기울이는 것 같아."

친구부부는 가끔 들르는 공원길이 달라졌다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다. 정말 그랬다, 요즘 자치단체들이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이 마을 공원사업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우리들만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친구도 공연스레 공원길을 바꾸며 예산을 낭비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산길에서 만난 호화분묘와 특이한 모양의 무덤

나지막한 산길로 들어서자 호화분묘가 나타난다. 요즘 공사를 벌인 듯 잔디가 아직 자리 잡지 않은 무덤은 어느 문중의 조상 묘인 듯 묘지 둘레엔 철조망 울타리까지 세워놓고 거대한 봉분과 석물들이 대단했다.

길가엔 이제 갓 피어난 진달래꽃들이 싱그러운 모습이다. 산 능선을 타고 조금 더 오르자 저 앞으로 한강이 내려다보인다. 건너편에 바라보이는 아담한 둥근 산은 행주산성일 것이다. 방향을 왼편으로 돌려 조금 더 높은 산으로 방향을 잡았다.

개화산 약사사
 개화산 약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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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앞산이 개화산인데 저 산 낮아보여도 괜찮은 산이야, 절도 세 개나 있고 저 산자락에는 작은 금강산도 있거든."

"이 낮은 산에 작은 금강산이 있다고?"

"뭐 대단할 건 없고, 그냥 멋진 절벽이 하나 있는데 동네 사람들이 작은 금강산이라고 불러, 제법 멋있거든."

은근히 기대가 된다. 김포공항이나 강화, 김포를 오가는 길에 바라보이는 개화산은 나지막한 뒷동산이어서 그저 그런 모습이려니 했었다. 그런데 산 속에 작은 금강산이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산길에는 산책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주로 아주머니들과 나이든 사람들이었지만 가끔씩 젊은 연인들과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말 오후 시간이어서 그럴 것이다. 도중 쉼터에서 잠깐 쉬었다가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어머머! 저 무덤 좀 봐요? 모양이 별난 모습이네, 어때요? 매우 특이하잖아요?"

함께 걷던 여성들이 호호호 웃음보를 터뜨리면서 가리킨 무덤은 정말 모양이 매우 특이한 모습이었다. 정상으로 가는 길가에 있는 무덤은 봉분이 두 개인 쌍분이었다. 그런데 그 두 개의 무덤 사이로 두둑한 둔덕을 길쭉하게 만들어 놓은 모습이 여간 특이한 모양이 아니었던 것이다. 웃음을 짓게 하는 죽은 사람의 무덤이라니, 그건 무덤의 주인공, 그의 몫이 아니었다. 바라보는 자의 삶의 자세와 시각의 문제였다.

약사사 범종각과 삼성각
 약사사 범종각과 삼성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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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을 지나자 포장도로가 나타났다. 산속에 웬 포장도로일까 하고 따라 걷다보니 상당히 웅장한 절집이 나타난다. 약사사였다. 넓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선 요사와 삼성각, 그리고 범종각을 거느린 대웅전이 기울어진 석양빛을 등에 지고 어두운 모습이다.

2개의 유형문화재를 간직한 약사사와 개화산의 유래

약사사는 창건연대는 분명하지 않지만 조선 초기에 세워진 사찰로 추정된다. 사찰에는 서울시 유형문화재 39호인 3층 석탑과 40호인 석불이 있었다. 마당에는 승용차 몇 대가 세워져 있었지만 조용한 풍경이었다.

골짜기를 따라 걸어 정상에 오르자 시야가 시원하다. 해발 132미터인 정상은 제법 넓은 공터였다. 주변에는 폐타이어와 모래자루로 쌓은 참호와 방어진지가 만들어져 있었다. 조금 떨어진 봉우리에는 군부대도 바라보인다.

개화산은 비록 나지막한 산이지만 동북쪽으로는 가까이 한강이 흐르고 남쪽과 서쪽으로는 평지가 펼쳐져 있는 가운데 솟아 있는 산이어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김포공항이 바로 아래 도로 건너편이어서 공항을 지키는 역할도 맡고 있을 것이다.

작은 금강 절벽 위 소나무 그늘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아주머니들
 작은 금강 절벽 위 소나무 그늘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아주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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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매우 좋다. 서쪽편으로는 들 건너 인천 계양산이 솟아 있고 김포 들녘과 강화까지 펼쳐진 시야가 시원하다. 한강 건너 멀리 북한산과 남산도 바라보인다. 산 아래쪽으로는 김포공항과 개화동 방화동이 지척이다.

개화산은 신라시대 때는 주룡이라는 도인이 살았다고 해서 주룡산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 도인이 죽은 후 그 자리에 이상하게 생긴 꽃 한 송이가 피어나 그 후부터 꽃이 피어난 산이라는 이름의 개화산(開花山)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산길은 군부대가 있는 봉우리를 북쪽으로 안고 도는 길이었다. 산길을 돌아 내려가자 길가에 이정표 대신 시 한 수씩 쓰여 있는 송판이 나타난다. 인두로 지져 그린 그림이 그려진 송판 두 개에는 멋진 시 두 편이 산책길에 나선 사람들의 시선을 끈적끈적 붙잡고 늘어진다.

절벽 바위틈에서 꽃피운 진달래 한 그루
 절벽 바위틈에서 꽃피운 진달래 한 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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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에서 만난 두 편의 멋진 시

화장을 하고 치장을 하고
착한 마음 훌륭한 행동으로
사람은 누구나 꽃이고져 하지

개화동은 꽃피는 마을
주민 모두가 꽃으로 왔으니
백화만개 무릉도원이
예가 아니고 또 어디랴

개화동은 해와 달의 정령이
꽃으로 나타난 이상향
늘 빛과 향이 가득한 고장.

김종상의 시 '개화동' 모두

이 시는 순전히 산 아래 마을인 개화동을 자랑하고 노래한 시다.

김종상의 시 개화동
 김종상의 시 개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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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에 가을드니
모두가 불꽃이라
우물 속에 숨은 반월
두레박에 길어 올려
그대 술잔에
고이 따 받쳐놓자
별들도 덩달아
술잔 속에 속삭이네.

국향 실은 바람소리
새색시 옷고름 푸는 소리
창가에 매달려
저리도 밤을 새며 보채대는데
아서라, 그 술잔
내 어이 비우리오.

김성렬의 시 '추색' 이다.

계절이 가을이 아닌 봄이어서 그렇긴 하지만 참으로 멋진 시다. 시를 쓴 시인들은 내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낯선 길에서 만난 시 한 수가 이리도 맛있을 수가 있나.

낮고 작은 산 속에 숨겨진 멋진 절경과 휘청거리는 삶

봉우리를 돌아 조금 올라가자 눈앞에 믿기지 않는 절경이 나타났다. 갑자기 깎아지른 절벽이 나타난 것이다. 절벽 바위 사이에는 진달래꽃이 피어 있고 절벽 위에 서있는 소나무들도 우람했다.

김성렬의 시 추색
 김성렬의 시 추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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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절벽이 바로 작은 금강산이야. 어때, 멋있지?"

정말 멋진 풍경이었다. 이 작고 나지막한 산자락에 이만한 절벽이 숨어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더욱 놀라웠다. 절벽 위 소나무 그늘 아래엔 아주머니들 몇이 둘러 앉아 멋진 풍경에 취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절벽 위에 올라서니 다리가 후들후들 발밑이 간질거린다. 삶은 이렇게 나약하고, 가볍고 절박한 것인가. 이만한 높이에서도 정신을 가누기가 어렵고 휘청거리다니. 살아온 세월의 무게 때문일까? 앞으로 살아가며 건너야 할 질곡의 깊이 때문일까?

"이제 그만 내려가지, 저 능선만 넘으면 바로 방화동이야."

절벽 건너 바라보이는 공항방향 시가지가 연무 속에 아스라하다. 그리 깊지도 않은 절벽과 골짜기가 시야까지 멀리 내몰고 있었다. 급경사를 내려서자 다시 오르막길이다. 오르막 산길을 오르는 내 다리가 오늘 따라 팍팍하다.

겨우 132미터 산에서 다리가 팍팍하다니, 요즘의 내 삶이 왜 이리 무거워졌단 말인가. 삶이 너무 무겁거든 산에다 내려놓고, 삶이 너무 가볍거든 산자락 하나 짊어질 일이다. 그런데 이리 무겁기만 하다니, 이 낮은 산자락 어느 곳에 무엇을 내려놓고 내려가야 한단 말인가?

톡 쏘는 홍어탕
 톡 쏘는 홍어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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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은 홍탁으로 정했어, 어때 괜찮겠지?"

능선을 넘어 내려서니 방화동 마을길이다. 큰길을 건너자 전에도 몇 번 들렀던 홍어요리 전문집이다. 듬직한 아주머니와 조금 왜소하고 약해보이던 아저씨가 운영하는 값싸고 맛있는, 톡 쏘는 홍어탕을 끓여주는 집

"오랜만에 오셨네요?"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준다. 그런데 아저씨가 보이지 않는다. 아저씨는 어디 가셨느냐고 물으니 아주머니의 얼굴이 금방 어두워지며 이제 못 나올 거라고 한다. 전에 다녀간 것이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나이든 사람에게 1년은 결코 보장된 세월이 아니었던가보다. 그 맛있던 홍어탕이 이날은 왠지 전과 달랐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개화산, #작은 금강산, #이승철, #홍어탕, #산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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