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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자문 미래기획위원회가 올 여름방학부터 밤 10시 이후 학원교습을 금지하겠다 하고 관련 조처로 일선 학교의 방과 후 프로그램 강화 등을 내놓는다 해서, 부모들의 등골 휘는 게 보이긴 보이는 걸까, 했는데, 재검토란다. 어차피 미봉책에 불과한 것이긴 했지만, 그 호들갑을 보니 역시나, 싶다.

사실 그런 개선은 미봉에 불과하다. 이는 지금까지 시도되었던 교육 관련 제도 및 환경 개선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더 힘든 입시지옥으로 내몰려 왔고 부모들은 자식 키우기 무서워 출산을 꺼리고 있는 상황임을 볼 때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간의 수없는 개선에도 불구하고 교육 문제가 공전(空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을 보지 못했기에, 혹은 외면(?)했기에 문제는 반복되는가.

문제의 본령이 무엇인지 직시하려면, "교육 관련 제도 및 환경 변화를 되돌리는 축"이 무엇인가를 보아야 한다. 그 축의 변화를 근본으로 삼아야만 수 없는 개선에도 불구하고 항상 원상태로 회귀하고 마는 문제를 근원에서 차단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축은 무엇일까? 공교육의 부실인가? 사교육 시장의 과열인가?

현 정부는 (사교육 문제와 관련하여) 공교육 붕괴를 문제의 축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공교육 정상화를 우리 교육 문제 해결의 열쇠인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정부 논리는 이런 것이다.

(1) 사교육 문제는 공교육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2) 공교육을 개선하면 사교육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1에 의해)
(3) 그러므로 공교육 개선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1과 2에 의해)

예컨대 사교육비 중 영어 사교육이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크니, 영어 몰입교육을 통한 영어 공교육 강화를 통해 영어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식이다. 모두에 언급한 최근 조치(휴먼뉴딜 관련)에서도 사교육 시장을 옭죄는 동시에 공교육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함께 제시하는 이유는 이러한 사정에 기인한다.

요컨대 정부는 공교육 문제를 축으로 보고 사교육 문제는 그 축을 공전하는 파생적 문제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사실 이러한 조치들로 공교육이 강화되고 사교육비가 줄어들것이라고 보는 것은 현실에 대한 무지(無知)나 무시(無視)에 기인한다. 전자라면 차라리 낫다고 하겠다. 국민들의 질책과 채근으로 달라질 가능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후자라면? 현실을 무시하는 이러한 조처들로 숨기는 것이 있다는 의념(疑念)을 가져야 할 것!).

지난 수십 년 간의 값 비싼 교훈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조치는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는 '公'교육과 '私'교육이 반대말('公'과 '私'가 서로 반대이듯)이기 때문에 생기는 언어적 효과에 기인할 것이다. 공교육이 좋아지면 그 반대인 사교육은 없어지지 않겠나, 하는 것. 그러나 '전제' 자체가 틀렸다. 공교육 문제는 문제의 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축은 무엇일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학서열화'와 '대학입시제도'이다. 교육과 관련된 모든 제도 개선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원점으로 되돌리거나 악화시키는 기축(基軸/機軸)은 대학서열화이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동원되는 대학입시제도인 것이다.

따라서 대학서열화 문제와 입시제도 자체를 바꾸지 않는 이상 문제는 늘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는 대학서열화와 입시제도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공교육 정상화나 사교육 문제와 관련된 제도/환경 개선이 실효성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대학입시제도가 교육을 통한 계층 재생산의 핵심 통로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주지하는 것처럼 사실 공교육 강화 운운은 정부가 대표하는 기득권의 알리바이인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은 일단 공교육 정상화가 사교육 문제 해결의 열쇠라는 인식의 허구를 드러내는 것이므로 더 이상 상론하지 않는다).

물론 공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여러 조처들, 기존 교육 제도의 수혜자와 타 계층 간의 갈등 조정, 대학의 수월성을 제고(提高)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 등, 전방위적 대책이 강구되어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문제의 축은 대학서열화와 대학입시제도이다. 이 문제를 중심으로 다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만 실효성 있는 제도 및 환경 개선의 결과가 도출될 것이다. 거꾸로 교육의 어떤 영역과 관련된 어떠한 조치라도, 대학서열화와 입시제도 변화를 중심으로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저 변죽만 울리고 말 것이다. 교육 문제에 있어 대학서열화와 대학입시제도는 그 자체를 제외한 모든 제도 및 환경 변화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블랙홀이기 때문이다.


태그:#교육, #대학 서열화, #입시 제도, #공교육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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