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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옛날 한 남자
큰 암곰에게 몸이 붙들리어
어느덧 애기까지 얻게 된다.
허나 남자는 강을 건너버리고
하늘이 무너져버린 암곰
자식과 함께 강물에 몸을 던진다.

백제의 옛 도읍인 공주 곰마루에 전해지는 전설의 내용이다. 곰마루는 고미마루라 불리기도 하는데, 곰이 아기와 함께 강에 몸을 던지고 나서 금강의 배가 자주 뒤집히는 일이 발생하자 사당을 지어 곰을 위로해주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서울대 조현설 교수는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에서 러시아나 몽골의 동북쪽에 사는 에벤키족의 곰 신화와 곰나루 전설의 곰 이야기가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한편, 에벤키족의 곰 신화가 곰나루 전설과 다른 점은 자살하지 않고 곰이 자식을 찢어 남자 쪽으로 던진 아기는 에벤키 인으로 남은 쪽의 아기는 곰으로 남았다는 것이다. 단군신화에서 곰은 모신적인 존재로 등장하지만 실제 단군 남산사당에 곰은 모셔지지 않았다. 조 교수에 따르면 단군신화에서 곰은 대리모 역할 이상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에벤키족 신화에서는 곰이 시조모로서 토템적 역할을 한다.

우리민족을 '곰의 무리'라는 뜻으로 고마무리로 부르거나 우리말의 '고맙다'의 어근 '고마'도 곰신, 존경을 의미한다고 볼 때 곰과 우리 민족은 밀접한 관계가 아닐 수 없다. 일본의 아이누족이 곰을 숭배하고 일본어로 곰이 '구마', 神이 '가미'인 점, 시베리아 등 대륙의 북동부의 곰 신화 등을 볼 때 동아시아 공동체를 형성하는데 곰 신화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는가 생각해 본다.

곰은 한자로 熊(웅)이다. 能(능)과 灬(화 火와 같음)의 조합이다. 能(능)은 곰의 원래 글자라는 설, 물속에 사는 곤충이라는 설 등이 있다. 위 아래로 있는 匕(비)는 앞과 뒷다리임은 확실하다. 본디 글자(그림 참조)에서는 몸체가 있었지만 지금은 생략되었다. 厶가 머리 부분으로 볼 수 있고, 月(육달월)은 龍(룡)에서처럼 입 같기도 하고 짐승이므로 肉(고기 육)을 덧붙였을 수도 있다. 그래서 원래 곰을 의미한 能이 '능하다, 능력'의 의미로 쓰이자 火(화)를 더해 熊(웅)을 만들어 곰을 의미한다는 설이 대세이다. 곰이 호랑이와 달리 20일을 능히 참고 결국 인간이 된 것이므로 '능하다'는 의미로 썼다고 생각하면 편하겠다.

熊(곰 웅)의 금문
 熊(곰 웅)의 금문
ⓒ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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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화)를 붙인 것은 곰을 희생제물로 써서 그렇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토템이나 신을 살해하는 관습에 대해서는 민속/인류학자인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 잘 나와 있다.

能에 心(심)을 더하면 態(모양 태)가 된다. 態度(태도) 등에 쓰이는 데 곰이 능히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적극적인 마음가짐을 態라 생각하면 되겠다.

罷(파할 파, 고달플 피)는 网(그물 망)과 能의 조합으로 그물처럼 몸을 덮고 있던 가죽을 고생 끝에 혁파(革罷)하고 인간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자이다. 혁파는 말 그대로 가죽을 찢어 벗긴다는 뜻이다.

단군 신화에서 곰이 인내한 끝에 여성이 되어 아이를 낳는다고 하는 데 신기하게 영어 표현도 비슷하다. bear는 명사로 곰이다. 동사로는 '~을 낳다'는 뜻은 물론 '~에 견디다, ~이 가능하다'는 뜻도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단군 신화에 나오는 웅녀 이야기는 우리말 뿐 아니라 일본어, 영어, 한자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인류가 생물학적 진화뿐만 아니라 정신 발달의 역사에 있어서도 통일성이 있다는 주장을 여기서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고난에 굴하지 않고 인내와 끈기로 뜻한 바를 이뤄낸 곰, 자신을 부정하고 혁파하여 새로운 생명체로 탄생하는 곰, 주변에서 질시하고 포기해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추진하는 곰을 닮고 싶다.  

얼마 전 MBC에서 '북극의 눈물'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다. 지구 온난화로 얼음이 녹아내려 북극곰이 먹이를 찾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지금 북극곰이 겪는 어려움은 그대로 인간의 고난으로 찾아올 것이다.

아주 먼 옛날 동아시아에 살았던 사람들은 이를 일찍 알았다. 곰이 인간이 되고 인간과 곰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다. 곰과 인간은 형제였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곰을 배신하고 도망쳤다. 지금 이 세상에 '인간의 배신'은 무엇을 의미할까? 무분별하게 자연을 남용하고 환경을 파괴한 인간의 배신은 지구 온난화라는 재앙을 불러들였다. 자연에 순응하고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로 겸손함을 잃지 않았던 옛 사람들의 지혜를 배워야 할 때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점식 기자는 새사연 운영위원입니다. 한자 해석은 일본의 독보적 한자학자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의 문자학에 의지한 바 큽니다.



태그:#곰, #단군신화, #온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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