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당초 신문고시 폐지안을 내려고 했는데 반발이 워낙 심해 이를 백지화했다."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 발언이 지역신문들을 어지럽게 한다. 역시 정치인이다. 그의 발언으로 2차 지면파업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런데 너무 급했다. 견강부회(牽强附會)적 성격이 짙었음을 스스로 시인한 셈이 되고 말았다.

 

당치도 않은 논리를 억지로 끌어대 몇몇 신문들 조건에 맞추려다 거센 저항에 직면하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형국에 다름 아니다. 그동안 일관되게 주장해 왔던 의도를 간과하고 넘어갈 수 있는 가벼운 상황이 아니다. 쾌재를 부르기엔 이른감이 없지 않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일관되게 보여주었던 미디어 정책의 방향성과 강한 의지에선 되레 난항이 읽혀진다. 

 

그럼에도 <부산일보>, <대전일보>, <광주일보> 등 일부 지역신문의 1일자 보도가 수상쩍다. 그동안 정부와 한나라당의 신문고시 폐지방침에 서운함과 분노를 사설과 일반기사에서 토로해왔던 신문들이다. 상반된 기사를 내보냈다. 한 쪽은 비난, 다른 한 쪽 기사는 누그러졌다. 왜? 

 

<부산>, <대전>, <광주> "한나라당 나경원의원 신문고시 존치키로 했다"

 

<대전일보>는 희소식(?)을 동종업계에 전하기 위함인지 1일자 1면을 할애했다. '한나라 신문 경품제공 금지 유지'란 제목이 눈에 띈다. 신문은 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 '신문고시 존치불구 과제 많다'는 제목의 3면 비난기사와는 대조적으로 이 기사에선 "한나라당이 30일 부당경품 제공 등을 금지한 신문법 제10조를 그대로 존치키로 했다"고 자신 있게 보도했다.

 

"한나라당은 특히 한국지방신문협회를 중심으로 신문고시 폐지 방침에 대한 비난 여론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29일 당 소속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회의를 긴급 소집, 이 같은 당론을 공식 확정했다"고 전한 이 기사는 국회 문방위 소속 한나라당 간사인 나경원 의원의 발언을 팩트로 삼았다.

 

"나 의원은 30일 한국지방신문협회 회장과 전화통화를 갖고 한나라당 문방위원들이 비공개 회의를 통해 신문고시를 존치키로 했다"고 신문은 밝혔다. 이어 "나 의원은 당초 신문고시 폐지안을 내려고 했는데 반발이 워낙 심해 이를 백지화했다고 말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기사는 또 "나 의원은 이날 본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더 이상 신문고시 폐지 문제가 거론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며 "한나라당 제6정책조정위원장인 최구식 의원도 이날 '당초 정부가 (신문고시 폐지안을) 냈으나 반대 여론이 많아 원래대로 (신문고시를) 두기로 했다"고 반겼다.

 

<부산일보>도 이날 두 번째 공동기획 '거꾸로 가는 지원'에서 정부·여당의 특정매체 눈치 보기에 급급한 상황을 사례로 들면서 비난했으나 '한나라 "신문고시 폐지 않겠다"'란 제목의 기사에선 다른 각도로 전했다.

 

"일부 거대 전국지들의 무차별적인 고가의 경품 및 무가지 제공 등 불공정 행위는 앞으로도 계속 금지된다"는 기사는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은 30일 한국지방신문협회장인 김종렬 부산일보 사장과 전화통화를 갖고 '어제(29일) 한나라당 문방위원들이 비공개 회의를 갖고 신문고시를 존치키로 했다'고 밝혔다"는 내용을 부각시켰다.

 

기사는 또 "나 의원은 김 사장에게 '당초 (신문고시) 폐지안을 내려고 했는데 반발이 워낙 심해 이를 백지화했다'며 이같이 말했다"며 "나 의원은 '더 이상 신문고시 폐지 문제가 거론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광주일보>도 이날 2면, '여, 경품 제공 금지 신문법 존치'란 제목의 기사에서 똑같은 내용을 전했다. "한나라당이 부당경품 제공 등을 금지한 신문법 제10조를 그대로 존치키로 했다"는 기사는 "한나라당은 특히 한국지방신문협회를 중심으로 신문고시 폐지 방침에 대한 비난여론이 전국으로 확산하자 지난달 29일 당 소속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회의를 긴급 소집, 이 같은 당론을 공식 확정했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이어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의 발언을 약속이나 한 듯 무게 있게 다뤘다. "지난달 30일 한나라당 문방위원들이 비공개 회의를 갖고 신문고시를 존치키로 했다"는 내용이 시선을 끈다.

 

한나라당 '백기'에도 지면파업 참여 신문사 더 늘어

 

이들 세 신문은 한나라당 관련 기사에서 "국회 문방위 간사인 나 의원과 한나라당 제6정조위원장인 최 의원이 반대하면 신문고시 폐지를 강행할 수 없다"는 논리에 무게를 뒀다. 그러나 정부의 의지가 꺾일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따라서 섣부른 결론을 내리기엔 아직 이르다. 저간의 상황을 되짚어 보면 그렇게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지난해 4월 신문고시 재검토 방침을 밝혔다가 시민사회 및 언론단체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던 공정거래위원회는 한발 더 나아가 오는 8월 23일 이후 신문고시를 폐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겠다고 최근 다시 발표하지 않았던가. 경품과 무가지를 무차별적으로 뿌려대는 재벌신문들에겐 절대적으로 유리한 정책이다. 당연히 특정신문에 대한 편애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문화체육관광부가 5월 발표한 ABC제도 개선안도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할 대목이다. 유가부수 인정 기준을 구독료의 50%(현행 80%)로 낮춰 소수 재벌신문에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됐지만 많은 지역신문들에겐 상대적으로 불리한 정책이다.

 

그래서 일까. 정부와 한나라당의 신문고시 폐지방침에 일제히 반기를 들며 공동기획 기사를 내보낸 지역신문들이 더 늘었다. '지역신문 공동기획'을 통해 정부와 한나라당에 날선 비판의 화살세례를 퍼붓기로 한 신문사들 중 첫날 <부산일보>와 <경남신문>, <매일신문>이 포문을 연 데 이어 이틀째인 1일에는 <강원도민일보>, <경인일보>, <국제신문>, <경남도민일보>, <대전일보>, <영남일보>, <전북일보> 등도 참여했다.

 

전국 주요 지역일간지 16개사가 참여키로 했다. 이들은 한국지방신문협회 및 전국지방신문협의회 소속 회원사들이다. 한국지방신문협회는 지난달 25일 경남 창원에서 열린 정기총회에서 '신문법 개정 반대' 의견을 모으고 강력 대처 방침을 정했다.

 

또 전국지방신문협의회도 26일 긴급 회장·고문단 회의를 열고 "한나라당이 끝내 몇몇 독과점 매체를 위해 대한민국 모든 지방신문의 기반을 붕괴시킬 수도 있는 길을 열어주려 한다면 국민과 함께 끝까지 강력히 대처할 것"이라고 밝힌데 이어 실천에 옮긴 것이다. 

 

 이들 지역신문은 신문고시를 주제로 한 첫 기사 외에, 각각 정부 신문지원제도의 문제점과 신문·방송 겸영의 폐해를 지적하는 두 번째, 세 번째 기사를 연이어 보도할 계획이었지만 한나라당의 태도변화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권력의 조삼모사 또는 견강부회적 성격이 짙은 정책에 대한 지역언론의 태도와 반응이 어떻게 이어질지 연구해 봄직할 대목이다. 

 

지역신문 공동대응 이틀재, 조·중·동 한목소리로 비난

 

두 번째 공동대응 기사는 조·중·동에 화살이 집중됐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그 중 <전북일보>는 '미디어법 강행, 지역신문은'이라는 제목의 첫 기사에서 "신문고시 폐지는 경품과 무가지를 뿌려대는 조·중·동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정책으로, 특정신문에 대한 편애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과 같다"며  "한나라당과 MB정부는 몇몇 독과점 매체를 위해 대한민국 모든 지역신문의 기반을 붕괴시킬 수도 있는 길을 열어주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이처럼 비난 여론이 확산되자 신문고지 폐지를 검토했던 한나라당은 지난달 29일 당 소속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회의를 긴급 소집, 신문법 제10조를 유지하기로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기사는 전하면서도 언론노조 김순기 수석부위원장의 말을 인용해 "대부분의 신문들이 찬성하고 시장질서에도 부합하는 신문고시를 폐지하는 것은 친정부신문으로 돌변한 조·중·동에 대한 보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영남일보>는 이날 '지역신문 유린하는 신문고시 폐지…'여론 독과점' 기름 붓기'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정부와 한나라당은 신문질서를 바로잡기는커녕 오히려 신문고시 폐지에 앞장서고 있다"며 "이는 정부와 한나라당이 직접 나서서 조·중·동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신문시장을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경남도민일보>도 '신문도 자본논리…지역신문 말려 죽이기'란 제목의 기사에서 미디어법 강행과 지역신문의 관계, 게다가 신문고시 폐지에 따른 지역신문들의 폐해를 공동취재단 이름으로 조목조목 지적했다. 기사는 그러나 "한나라당과 MB 정부는 몇몇 독과점 매체를 위해 대한민국 모든 지역신문의 기반을 붕괴시킬 수도 있는 길을 열어주려 한다"며 크게 걱정했다.

 

<경인일보> 또한 '정부 미디어 정책 이대로 좋은가'란 제목의 기사에서 "현 정부 들어 조·중·동의 신문고시 위반은 더욱 노골적으로 진행됐다"며 화살을 조·중·동에 겨냥했다. 기사는 이어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지난 15·16일 조·중·동 지국 90곳에 대해 신문고시 준수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89곳이 신문고시를 위반했다"며 "'조선'과 '동아'의 위반율은 100%였고, '중앙'은 단 1곳만 고시를 준수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내용을 크게 부각시켰다.

 

<강원도민일보>는 이날 '여론 독과점 심화… 지방지 고사 불 보듯'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미디어법 강행시 지역신문이 겪게 될 위기를 다각도로 진단했다. 기사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시장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기업들의 부당한 경품제공 등 불공정 행위는 모두 법의 규제를 받고 있는데도, 조·중·동은 자신들에게만 특혜를 달라고 요구하고 정부와 한나라당은 이를 강행하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지난해 11월 지역신문들이 지역신문발전지원금 삭감에 강력 반발하자 정부와 한나라당은 즉각 이를 없던 일로 했다. 이때도 견강부회적 성격이 짙은 정책은 쉽게 백기를 끄집어내는 효력을 지니고 있음을 방증해 주었다.


태그:#신문고시, #견강부회, #지역신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