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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딸이 책을 사왔다. 잘 나가는 작가의 책이다. 인터넷조회 회수가 1100만이라는 숫자 때문만이 아니다. 그 작가는 평소에 내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작가였고 <고등어>라는 책도 재미있게 보기도 했었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법이 다양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방법 중의 하나는 해보지 않은 것들을 하나씩 하는 것과, 못 듣는 대신 부지런히 눈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한 두 가지 방법을 오랫동안 계속하다 보니 부작용도 있다. 해보지 않은 것들을 실행하면서 내게 좋은 것은 평생 업으로 삼아 하고 있지만, 대부분 그냥 맛보기로 그치거나 관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본 것의 80% 이상은 망각의 늪속에 묻혀버린다. 그 정도가 심하다 보니 비디오샾에서 이미 본 영화테잎을 가지고 카운터에 내었다가, 컴퓨터에 이미 본 것이라고 나와서 무안당하기도 한다. 그리고 너무 많이 잡다한 것을 보다 보니 눈이 주인을 잘못 만나 한창 고생이다. 눈이 마음의 창이라는데 나는 마음의 창이 아닌 삶의 대문이 되어 문턱이 닳아가는 셈이다.

아무튼 최근의 <천년의 금서>와 <엄마의 바다>라는 신간을 하루 낮 밤에 유익하게 보았고 그래서 <도가니>라는 책도 그렇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반도 채 보지 못하고 책장을 덮고 더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 중간에 덮고 기약없이 나중에 보기로 한 것이다.

왜냐면 그 책을 갖고 다니는 나를 보고 누군가가 같은 청각장애유형과 폭력, 또는 가르치는 일을 연계해서 선입관을 가졌던 것이다.  내가 청각장애인이기에 청각장애관련 책을 보는 것인가보다 하고 착각해서 이야기 한 것이다. 그리고 흥미가 반감이 된 것은 내가 너무 잘 아는 세계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사람들은 선입관을 참 잘 가진다. 빈한한 집의 아들이 성공을 하면 "집이 가난해서 남다른 성취욕이 컸을 것!" 이라고 여기고, 사회문제를 일으키면 "환경이 안 좋아서..." 부잣집 아들이 성공을 하면 "부모를 잘 만나 좋은 학교를..."이라고 여긴다. 반대로 제대로 살지 못하면 "있는 부모 밑에서 고생을 안 해봐서.."라고 한다.

이러한 선입관은 빈부 뿐만 아니라 장애인에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잘되면 장애가 원인이고, 못되면 그것도 장애와  연관이 된다.

'아는 만큼 느낀다'는 말처럼 우리들은 우리가 경험한 것과 눈 앞에 일어나는 현실이 맞아 떨어질 때 비로소 이해를 하거나 아니면 '세상은 요지경'이란 말처럼 막연한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과 눈 앞에 일어나는 현실과 연관될 때는 오해를 하고 사는 것 같다.

나도 어처구니 없는 선입관을 갖고 그 책을 만났다. 단순하게 제목이 <도가니>라고 해서 불혹이 넘어서야 비로소 "안 먹어 본 것들도 먹어야 좋은 작품을 할 수 있다"는 스승의 강권에 먹어본 '도가니탕'을 연상하고 음식과 관련되었던 것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도가니>라는 책은 그 도가니탕이란 음식과 아무연관이 없었다.

"진실을 결코 개들에게 던져 줄 수 없습니다."라는 책을 포장한 홍보문안에 쓰여진 것처럼
어느 청각장애인의 성폭력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는, 거짓과 폭력의 도가니 속에서 쏘아올린 용기와 희망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길을 잃어도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암시가 구석구석에 절절히 온 힘을 다하여 깔려 있다.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온 힘을 다하는 사람이야기 '인권'을 다룬 세상의 화제작이라는 이 책은 다른 여늬 책처럼 바쁜 틈을 내어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시간여유가 많은 주말에 좀 넉넉한 마음의 여백을 두고 천천히 나머지 책장을 넘겨야 할 것 같다. 그리하여 본 것의 80%는 잊어 버리는 내 망각의 창고가 아닌  내 마음의 화제작으로 오래 오래 남겨야 하겠다.


태그:#도가니, #선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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