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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안은별 / 해피리포터, 사진_국시모]

 

산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 2009년 3월 기준, 우리나라에서 한 달에 한 번 이상 산에 오르는 사람은 1,560만 명이다. 전체 등산인구 중 2006 ~ 2008년 사이에 등산을 시작한 사람이 314만 명이라고 하니, 연간 100만 명씩 증가한 셈이다. 가히 폭발적인 증가다.

 

등산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산은 설악산(30%), 지리산(22%), 북한산(8%), 한라산(5%)순이다. 모두 국립공원이다. 특히 2007년은 '국립공원 열풍 원년'으로, 2006년보다 1,000만 명이나 많은 2,647만 명이 국립공원을 다녀갔다. 입장료를 폐지했기 때문이다.

  

국립공원, 관광지 아니에요

 

이용객이 늘어난 만큼 훼손도 심각해졌다.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비좁은 등산로로 진입하고, 공원 내 곳곳에서 삼겹살 굽는 냄새가 진동하기도 한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이하 국시모)' 오은숙 운영팀장은 "아직도 우리나라엔 국립공원을 단순한 관광지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설명한다.보존되어야 할 가치가 있기 때문에 나라에서 보호 구역으로 지정했다는 사실은 간과되기 일쑤다.

 

이러한 등산객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국시모는 북한산, 도봉산, 지리산 국립공원에서 꾸준히 현장밀착형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캠페인은 계절별로 테마를 달리한다. 새들의 번식기인 4월에는 <야호!소리 치지 마세요>, 식물이 풍성해지는 5월엔 <산나물이 아닙니다. 국립공원의 식물은 생태계입니다>, 열매가 무르익는 가을엔 <가을열매는 야생동물의 먹이입니다>가 캠페인의 주제가 된다. 캠페인은 그렇게 산의 주인,야생동식물들의 생체 리듬을 따라간다.

 

 

    

 

전문가 집단에서 시민모임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국립공원=관광지'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국립공원을 지정할 때부터 국가에서 상품성에 중점을 뒀기 때문이다.

 

1993년, 정부는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유치하겠다며 덕유산 국립공원 내에 스키장과 리조트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국시모는 이에 반대하며 생긴 단체다. 타당성 평가 중 '이대로는 안 된다'고 느낀 교수,언론인,산악인 7명이 뜻을 모았고, 이후 간간히 정책 토론회를 열어 명맥을 유지해 갔다.

 

국시모가 시민모임으로써의 포석을 연 것은 2001년부터다. '시민과 함께 하지 않으면 지속할 수 없다'는 내부의 고민이 태동한 것이다. 회원을 모으고, 소식지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현재 회원수는 천 오십 명에 이른다. "100% 시민의  회비로만 운영되는 생태적 시스템이지요" 오은숙 운영팀장은 말한다.

 

 

개발에 맞서는 힘겨운 싸움

 

최근 활동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묻자 "사실, 최근엔 저희가 많이  힘듭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일상적인  활동만으로도 할 일이 많은데, 지금 정부는 말도 안 되는 걸 하려고 하죠"

 

국립공원 내 케이블카 설립 추진이 대표적이다. 환경부는 지난 5월 국립공원 내 설립 가능한 케이블카의 총 길이를 기존 2㎞에서 5㎞로 늘릴 수 있도록 자연공원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닙니다. 현행법도 케이블카를 허용하고 있는데, 자연보호지정구역에까지 철탑을 꽂겠다는 건 안 된다는 거죠. 케이블카가 경제성이 큰 것도 아니에요. 지역경제 발전을 주장하지만, 오히려 속전속결 식 등산을 부추겨 사람이 산을 금방 떠나게 하죠."

 

개발에 대한 규제가 완화될수록 국시모가 할 일은 많아진다. 2008년 30여 개 환경단체와 연합해 '국립•도립•군립공원 안 관광용 케이블카 반대 전국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고, 지리산 천왕봉에서 케이블카 반대 1인 시위를 벌였다. 이런 노력에 2009년 6월 10,672명의 뜻이 모여 '케이블카 없는 지리산 1만인 선언'이 나올 수 있었다.

 

정부의 일방적인 반 생태 흐름에도, 국시모는 들풀처럼 억셌다. 7년간 북한산국립공원 관통도로 반대운동의 성과로 향후 '국립공원 내에는 스키장과 골프장이 들어서지 못한다'는 자연공원법 개정을 이뤄냈고, 1킬로미터 이상의 도로를 낼 경우 국립공원위원회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법규도 만들었다.

 

또한 오대산 국립공원을 관통하는 지방도 446호선을 폐지시킨 것도 바로 국시모다. 국시모가 공론화시키기 전, 이 지방도는 다니던 차도 없이 환경부의 관심 밖에 있었다.

 

국립공원, 우리 아이들에게도 보여줘야지요

 

"아이들이 제 일을 자랑스러워 하는 게 가장 뿌듯해요. 아이들이 캠페인에 오기도 하고, 아이 친구들이 자원봉사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오 운영팀장은 '반대'가 일상이 된 힘든 일들이지만, 다음 세대를 생각하면 힘이 난다고 밝은 얼굴로 말한다.

 

국시모 상임대표 유정칠 교수는 직접 그림책, 조류도감을 쓴다. 아이들도 오색딱다구리를, 변산바람꽃을 알고 자랄 권리가 있다. 그에게 있어 시민단체 대표 자리는 생태학자로서의 사회 책임과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국립공원을 물려주기 위한 길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국시모의 자원봉사활동모임 '물자리'는 매주 수요일 북한산국립공원에 모여 진관내동 습지를 모니터링한다. '할머니가 되어도 물자리를 계속하자'고 뜻을 모은 이들은, 인근 초등학교 공부방 아이들을 대상으로 생태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습지는 물자리 엄마들이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보물이기 때문이다.

 

 

사진가 이지누는 국립공원 관통도로를 '문명의 보톡스'라 말했다. 보톡스를 맞으면 지금 당장은 젊어 보일 수 있지만, 미래는 보장하지 못한다.

 

국시모의 운동은 보톡스 맞은 조형물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해 줄 수 있는 약속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행복발전소(www.makehappy.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해피리포터'는 전국의 다양한 비영리단체들을 직접 방문취재해, 시민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는 희망제작소의 시민기자단입니다.  


태그:#국시모, #해피리포트, #해피시니어, #행복발전소, #희망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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